너른 벌과 바위 벽, 물길의 고장 ‘화순’
너른 벌과 바위 벽, 물길의 고장 ‘화순’
by 운영자 2005.10.07
세상에 물들지 않겠다, 물염정(勿染亭)태고의 신비 간직한 단애절벽의 비경, 화순 물염적벽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발갛고 노란 단풍이 이곳 화순에도 찾아왔다.
화순 동복호에 위치한 물염정을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행복한 길이다. 배암처럼 구불구불 늘어진 길은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가야 한다.
그래서 이 길은 한가로움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천혜의 드라이브 길인 것이다. 길가로 핀 구절초가 함초롬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꽃들과 해찰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순천에서 주암IC를 나와 화순 방면 2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동복우체국 사거리를 지나 남면 구암 삼거리에서 동복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가다보면 묘치 고개에 이르는데 이 고개 초입에서 23번 군도가 오른편으로 나 있다. 화순온천이나 이서방면이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 도로를 타고 가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동복호반 도로가 곧바로 이어진다.
화순에서도 북쪽인 이곳 동복, 이서, 북면은 산이 많은 지역이다.
이 지역은 들이 많은 능주 방면과는 다른 풍경을 선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사는 모양도 다르다.
동복호반을 끼고 한참을 가다보면 담양 남면 땅이 나온다.
그래도 놀라지 말고 지방도 887호선을 타고 오른편으로 꺾어서 가다보면 다시 화순 이서 땅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4호 화순군도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우회전 하여 500여 미터 가다보면 좌편 절벽 위로 정자가 하나 보인다. 물염정이다.
물염정은 조선 명종대에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한 정자로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勿染)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동안 사람이 찾지 않은 듯 고즈넉한 가을의 물염정은 속세와 단절된 기분마저 든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발갛고 노란 단풍이 이곳 화순에도 찾아왔다.
화순 동복호에 위치한 물염정을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행복한 길이다. 배암처럼 구불구불 늘어진 길은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가야 한다.
그래서 이 길은 한가로움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천혜의 드라이브 길인 것이다. 길가로 핀 구절초가 함초롬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꽃들과 해찰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순천에서 주암IC를 나와 화순 방면 2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동복우체국 사거리를 지나 남면 구암 삼거리에서 동복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가다보면 묘치 고개에 이르는데 이 고개 초입에서 23번 군도가 오른편으로 나 있다. 화순온천이나 이서방면이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 도로를 타고 가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동복호반 도로가 곧바로 이어진다.
화순에서도 북쪽인 이곳 동복, 이서, 북면은 산이 많은 지역이다.
이 지역은 들이 많은 능주 방면과는 다른 풍경을 선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사는 모양도 다르다.
동복호반을 끼고 한참을 가다보면 담양 남면 땅이 나온다.
그래도 놀라지 말고 지방도 887호선을 타고 오른편으로 꺾어서 가다보면 다시 화순 이서 땅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4호 화순군도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우회전 하여 500여 미터 가다보면 좌편 절벽 위로 정자가 하나 보인다. 물염정이다.
물염정은 조선 명종대에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한 정자로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勿染)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동안 사람이 찾지 않은 듯 고즈넉한 가을의 물염정은 속세와 단절된 기분마저 든다.
물염정에 서 멀리 적벽을 바라본다.
평야지대로만 알려진 이곳에 중국 양자강의 적벽과 견줄만한 비경의 절벽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유유히 흐르는 물과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비경 앞에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의 경치에 방랑시인 김삿갓도 감탄하고 즐겨 찾았으며, 훗날 방랑을 멈추고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화순 동복댐에는 이곳 말고도 노루목 적벽(화순적벽)과 보산리적벽, 창랑리 적벽 등 3곳의 적벽이 더 있는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쌍봉사
다시 길을 돌아 보성 복내와 인접한 쌍봉사로 접어든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부도를 손꼽으라 하면 대개 구례 연곡사 부도와 이곳 화순의 쌍봉사 부도를 손꼽는다.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 가는 길엔 빈 들녘이 이어지고 띄엄띄엄 마을들이 이어진다.
나무도 들녘도 제 가진 열매들을 모두 털어내고 비워냈다.
들녘이 계속 이어질 것 같던 길 끝에 쌍봉사는 있다.
절속으로, 산속으로 ‘드는’ 맛은 없지만 들녘 가까이 평지에 자리해 있으니 왠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다.
해탈문 돌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다.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에 3층 목탑 모양. 이게 무슨 대웅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보기 드물게 목조탑 형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목조건축물.
지장전과 선방 사이에 나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철감선사부도와 부도비가 나란히 있다.
오르는 길엔 대나무가 울창하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은 산하와 들녘에 가운데서 만난 푸른빛이 반갑고 귀하다. 차나무도 많다. 쌍봉사는 선맥뿐 아니라 차맥이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차밭과 대숲 지나 있는 철감선사 부도탑(국보 제57호)은 그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이미 널리 이름나있다.
부도는 팔각 원당형이다.
지붕돌 추녀는 조금 깨지고 상해있지만 이끼가 낀 기와골이나 정교한 수막새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실제의 규모보다 훨씬 크고 장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은 것 속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구현된 정교한 세계.
철감선사가 입적한 868년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9세기말에 부도와 같이 세워진 것으로 짐작되는 부도비(보물 제170호)는 이제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거북모양 비석받침돌)와 이수(용틀임모양 비석 윗돌)만 남아있다.
철감선사 부도비가 이름난 것은 무엇보다 거북의 앞쪽 오른발 때문이다.
왼발은 땅을 힘 있게 그러쥐고 있고 오른발은 지금 막 앞을 향해 내딛는 중이다.
네 발을 모두 땅에 붙이지 않고 그중 한발을 치켜 올려 만든 옛 장인의 마음으로 인해 이 거북은 늘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내딛는 이 한발로 인해 영원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굳건하게 딛고 쉼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사노라면 험한 일 궂은 일 왜 없겠냐마는 그것들 앞에서 무너지거나 그치지 말고 네 갈 길을 지성으로 열심히 가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또 하나, 쌍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누구에게나 베풀어 주는 공양(밥) 한 끼다. 조미료나 육류를 쓰지 않고, 자체 생산한 채소류 위주라 맛도 정갈하지만 공양주의 솜씨가 워낙 좋아 밥 한 그릇 비우고 숟가락을 놓기엔 어딘가 미진하다.
다행히 끼니때에 맞춰 절을 방문했다면 정중하게 한 끼를 부탁해 볼 일이다. 물론, 하룻밤을 유한 후 새벽 4시경에 듣는 ‘도량석’ 소리나 고즈넉한 시간에 듣는 풍경소리, 저녁 예불 전의 ‘범종 소리’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고운 말을 안으며 나서는 절 집, 털어내고 비워내 허전한 이 가을에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취재 : 최명희 기자
평야지대로만 알려진 이곳에 중국 양자강의 적벽과 견줄만한 비경의 절벽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유유히 흐르는 물과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비경 앞에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의 경치에 방랑시인 김삿갓도 감탄하고 즐겨 찾았으며, 훗날 방랑을 멈추고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화순 동복댐에는 이곳 말고도 노루목 적벽(화순적벽)과 보산리적벽, 창랑리 적벽 등 3곳의 적벽이 더 있는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쌍봉사
다시 길을 돌아 보성 복내와 인접한 쌍봉사로 접어든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부도를 손꼽으라 하면 대개 구례 연곡사 부도와 이곳 화순의 쌍봉사 부도를 손꼽는다.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 가는 길엔 빈 들녘이 이어지고 띄엄띄엄 마을들이 이어진다.
나무도 들녘도 제 가진 열매들을 모두 털어내고 비워냈다.
들녘이 계속 이어질 것 같던 길 끝에 쌍봉사는 있다.
절속으로, 산속으로 ‘드는’ 맛은 없지만 들녘 가까이 평지에 자리해 있으니 왠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다.
해탈문 돌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다.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에 3층 목탑 모양. 이게 무슨 대웅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보기 드물게 목조탑 형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목조건축물.
지장전과 선방 사이에 나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철감선사부도와 부도비가 나란히 있다.
오르는 길엔 대나무가 울창하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은 산하와 들녘에 가운데서 만난 푸른빛이 반갑고 귀하다. 차나무도 많다. 쌍봉사는 선맥뿐 아니라 차맥이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차밭과 대숲 지나 있는 철감선사 부도탑(국보 제57호)은 그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이미 널리 이름나있다.
부도는 팔각 원당형이다.
지붕돌 추녀는 조금 깨지고 상해있지만 이끼가 낀 기와골이나 정교한 수막새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실제의 규모보다 훨씬 크고 장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은 것 속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구현된 정교한 세계.
철감선사가 입적한 868년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9세기말에 부도와 같이 세워진 것으로 짐작되는 부도비(보물 제170호)는 이제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거북모양 비석받침돌)와 이수(용틀임모양 비석 윗돌)만 남아있다.
철감선사 부도비가 이름난 것은 무엇보다 거북의 앞쪽 오른발 때문이다.
왼발은 땅을 힘 있게 그러쥐고 있고 오른발은 지금 막 앞을 향해 내딛는 중이다.
네 발을 모두 땅에 붙이지 않고 그중 한발을 치켜 올려 만든 옛 장인의 마음으로 인해 이 거북은 늘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내딛는 이 한발로 인해 영원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굳건하게 딛고 쉼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사노라면 험한 일 궂은 일 왜 없겠냐마는 그것들 앞에서 무너지거나 그치지 말고 네 갈 길을 지성으로 열심히 가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또 하나, 쌍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누구에게나 베풀어 주는 공양(밥) 한 끼다. 조미료나 육류를 쓰지 않고, 자체 생산한 채소류 위주라 맛도 정갈하지만 공양주의 솜씨가 워낙 좋아 밥 한 그릇 비우고 숟가락을 놓기엔 어딘가 미진하다.
다행히 끼니때에 맞춰 절을 방문했다면 정중하게 한 끼를 부탁해 볼 일이다. 물론, 하룻밤을 유한 후 새벽 4시경에 듣는 ‘도량석’ 소리나 고즈넉한 시간에 듣는 풍경소리, 저녁 예불 전의 ‘범종 소리’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고운 말을 안으며 나서는 절 집, 털어내고 비워내 허전한 이 가을에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취재 : 최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