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은물결, 금물결 일렁이는 억새숲 따라~

은물결, 금물결 일렁이는 억새숲 따라~

by 운영자 2005.10.21

을빛은 단풍의 화려함과 억새의 은은함으로 나뉠 것이다. 가을을 그저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의 계절로만 생각했다면 오산. 억새꽃이 만발해 빛을 부서뜨리는 때가 바로 이맘때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은빛 축제가 열리는 가을 억새산은 은빛이라고만 말하기가 무색하다. 쨍한 햇볕 아래서는 결 고운 은빛을, 은은한 석양 아래서는 황홀한 금빛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억새의 일렁임이 마음까지 일렁이게 하는 장흥 천관산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무던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산이다. 정상을 완전히 뒤덮어버린 억새도, 사람의 눈을 한순간에 매료시켜 버리는 크고 작은 바위들도 모두 숨죽이며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스스로 발품 팔아 산 안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에게는 산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깊이를 보여준다.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은 천관산은 등산로의 대부분이 능선과 능선을 타고 오르는 완만한 길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산을 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천관산을 그저 그런 야산에 비교하면 안 된다.
해발 723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수많은 기암괴석과 봉우리들이 곳곳에 턱하니 버티고 있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능가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기바위, 사자바위, 종봉, 천주봉, 관음봉, 선재봉, 대세봉, 석선봉, 돛대봉, 갈대봉, 독성암, 아육탑, 환희대, 아홉 개의 봉우리가 모여 만든 구룡봉. 모든 봉우리들이 여느 산에서 흔히 대할 수 없는 기이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과 닮았다 하여 이름도 천관산(天冠山)이라 불리는 곳이다.

‘봄 천관산은 진달래, 가을 천관산은 억새’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르는 길 어디를 둘러봐도 억새는 보이지 않는다.
억새를 만난 것은 천관산 정상을 눈앞에 두었을 때다.
그 눈부신 억새 군락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한순간에 던져준다고 하면 될까?억새들이 일제히 바람의 결을 타고 일렁인다.

영화 의 대숲소리처럼 ‘솨~ 솨~’ 조용히 흔들리는 억새소리는 일상이 주는 갑갑함으로부터, 세상의 무거운 근심들로부터 잠시 자유롭게 한다.

구룡봉에서 연대봉까지 완만한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억새는 자기들끼리 몸을 붙들고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천관산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어디 억새뿐일까마는 지금 천관산에서는 억새가 유난히 빛을 발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억새는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그 모습이 물결 같다. 끝없이 펼쳐진 억새의 물결.

이 가을 천관산의 억새가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가 있다.
억새가 가을 천관산의 색깔을 구분짓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빛이 깊어질수록 저 억새들은 천관산을 천관산이게 하는 수많은 바위와 닮아갈 것이다.
하얀 억새꽃을 피워낸 다음에는 잎의 풋풋한 초록을 버리고 선 채로 말라갈 것이다. 마르면서 바위와 같은 진한 갈색으로 몸을 물들이며 스스로 깊어질 것이다.

천관산 산행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또 하나 있다. 수많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도해의 풍경이 그것. 물고기 비늘처럼 윤기를 내며 반짝이는 푸른 바다가 하늘과 이어진 듯 넓게 펼쳐진다. 그 위에 점점이 박힌 크고 작은 섬들은 먹구름 같다.

가을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 뒤로 늦은 오후의 가을볕이 스민다. 볕에는 가을의 억새와 다도해의 내음과 사람들의 자유가 그득하다.

▶교통 : 장흥에서 관산행 직행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35분이다.
관산읍에서 천관산 등산로 입구까지는 도보로 30분 거리다. 택시를 이용하거나 군내버스를 타고 방촌에서 내리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청암대학 사거리에서 벌교, 보성 방향으로 나가 장흥읍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관산읍 이정표가 나온다. 관산읍으로 들어가지 않고 5km 더 직진하면 방촌마을이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천관산 등산로 입구인 장천재가 나온다.

취재 : 최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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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하면 이곳도 빼놓을 수 없다!

♣ 밀양 사자평고원

우리나라 억새 군락으로는 가장 넓다.
재약산(1,189m) 수미봉부터 사자봉 일대의 해발 800m 되는 고원 지대의 140만평에 억새 장관이 펼쳐진다. 고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알프스에 견줄만하다고 해서 붙은 영남 알프스의 한 부분으로 가을이면 전국에서 억새 순례객이 몰려드는 곳이다.

사자평으로 오르는 길은 밀양에서 표충사로 곧바로 이어지는 길, 쌍폭포를 지나 고사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첫번째 길은 시간을 20~30분 단축시킬 수 있지만 고개가 가파르다. 쌍폭포로 돌아가는 길은 완만한 편. 제법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표충사길을 권한다.

표충사에서 홍룡폭포, 고사리 마을을 지나면 정상으로 향하는 억새밭이 시작된다.
억새밭 너머로 멀리 영남 알프스의 우람한 산세가 한층 볼거리를 더한다. 표충사에서 폭포로 이어지는 길가의 옥류동천 주변에는 단풍도 반겨준다.

밀양시 문화체육과 (055)359-5646

♣ 정선 민둥산

정선군 남면의 민둥산(1,118m)은 이름처럼 나무가 없는 민머리 산이다.
산의 머리가 벗겨진 이유는 나물 때문. 나물 많은 정선 중 특히 이곳에서 산나물이 많이 났기 때문에 매년 한 번씩 불을 질렀다고 한다.

1950~60년대 땔깜으로 나무를 베어다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설도 유력하다. 하여튼 둥그스름한 산 능선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 20여만 평 가량은 이맘때면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민둥산 억새 산행 기점은 해발 800m 고지의 발구덕 마을. 산행은 증산역에서 멀지 않은 증산초등학교 옆에서 시작된다. 산 옆구리의 능전마을에서 출발하면 발구덕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길이 좁아 사람이 많이 몰리는 억새철에는 오도 가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되려 산 아래서 걸어 올라가는 편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증산초등학교에서 민둥산 정상을 거쳐 지억산(1,157m) 능선을 타고 동면의 화암약수까지 이어진 등산로는 약 15km로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세도 넉넉하고 길도 뚜렷하다.

정선군 관광문화과 (033)560-2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