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사람’과 ‘삶’과 가까이, 남원 실상사

‘사람’과 ‘삶’과 가까이, 남원 실상사

by 운영자 2005.11.25

즈넉해야만 절집이고 수행도량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상사는 말해준다. 떠나온 현실을 잊고 잠시의 평온을 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 몸담고 살면서도 잊거나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맞닥뜨리게 한다.

들녘에 자리잡은 남원 산내면의 실상사.

산 속에 들지 않고 들판에, 이웃한 집들 속에 놓인 이 절은 이미 ‘세상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시대와 사회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절의 모습이 거기 있다.

실상사는 여느 절처럼 딱딱하지 않다. 아기자기 재미있다.
실상사 앞에 세워진 ‘풀꽃상’, 텃밭 앞에 ‘생태뒷간’ 등. 뒷간 설명판의 ‘좀 냄새는 납니다’란 구절을 보면 냄새에 인상 찌푸리기 전에 웃음부터 난다.

실상사는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똥오줌을 싸면 볏짚이나 겨와 섞어 그대로 삭혀 거름으로 만들어내는 곳, 뒷간.

겉만 깨끗하고 멀쩡할 뿐 사실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도시의 화장실과 다르게 겉으로야 냄새 나고 구멍 아래로 우리가 배설해놓은 것들이 다 내려다보이지만 생명순환의 원리를 충실히 지켜내고 있는 변소이다.

다시 쌀로 채소로 흙으로 돌아가는 똥. 똥이 단지 ‘더러운 것’ ‘흘려보내야 할 것’으로 치부되지 않고 똥으로서의 제 대접을 받는 곳이다.
실상사의 중심되는 건물은 보광전이다.
앞마당에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본보기가 됐다는 삼층석탑이 좌우 나란히 서 있고 그 가운데 석등이 있다.

보광전 건물은 세월 그대로 자신을 다 내어맡기고 늙어온 쭈그렁 할머니 같다.
단청도 없이 나무결 그대로 기름기도 흐르지 않고 윤택하지도 않다.

보광전 옆 바위위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쌓아올린 작은 돌탑들이 있다.
작지만 그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아름답고 크게 느껴진다.
그 작은 돌탑에 욕심을 얹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소박한 기원들이 깃들었을 터.

약사전은 문살이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장엄한 한세상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에 '너무 홀리지 마소'라는 듯 그 문은 군림하는 구경거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문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약사전 문뿐만 아니다. 불사다 뭐다 해서 요란한 요즘 절들과 달리 절에 거의 손길을 대지 않았다.
이곳의 관심이 공연한 집치레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열려있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상사 들어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석장승들. 무섭다기보다는 익살스럽고 장난기를 애써 숨기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실상사엔 보물이 많다.
석등, 부도, 삼층석탑,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증각대사 응료탑, 약사전의 철조여래좌상 등등….

그러나 그중 귀한 것은 수많은 보물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귀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그저 이용가치로만 값이 매겨지고 훼손돼왔던 우리네 땅과 산과 강과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 애쓰는 마음이 아닐까 하고 실상사를 나오며 생각해보았다.

▶ 찾아가는 길 :
서순천IC에서 동광주IC를 거쳐 남원 방향 88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간다.
인월을 거쳐 뱀사골 쪽으로 7km 정도 달리다 보면 산내면 소재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뱀사골 입구와 달궁골이 나오고, 왼쪽 길로 곧장 가면 마천 쪽인데, 마천 쪽으로 2km쯤 가면 실상사다.

취재 : 최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