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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 진주성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 진주성

by 운영자 2006.02.03

순천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촉석루가 있는 진주로 향한다.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기를 1시간 여. 겨울 햇살에 섬진강 푸른 물빛이 눈부시다.
여행은 목적이 아닌 과정. 푸르름을 잃은 산과 나무는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듯하다.

서진주IC를 빠져나와 이정표를 따라 진주성에 이르자 매운 겨울바람에도 진주성을 찾은 관광객 무리가 보인다. 철옹성 같은 진주성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금빛을 내는 잔디와 나무, 성 안을 빙 두르고 있는 정갈한 성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벽을 따라 촉석루로 향한다.
성벽 너머 남강은 흐르기를 아예 멈추어버렸나. 잔 물살 하나 일지 않는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에는 논개의 구국혼처럼 촉석루가 우뚝 솟아나 있다.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촉석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에 팔작지붕의 와가이다.

촉석루는 처음 진주성을 쌓을 때 동서남북에 만든 누대 네 채 중 남쪽에 세운 ‘남장대’였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던 주장(主將)의 지휘소가 있었다 하여 ‘주장대’(主將臺) 라고 부르기도 하고, 향시(鄕試)를 치르는 고시장 역할을 했다 하여 ‘장원루’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촉석루는 진주성의 옛 이름인 진주읍성과 촉석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촉석루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에 의해 모조리 파괴되고 만다.

그러한 것을 임진왜란이 끝난 뒤 광해군 10년, 서기 16○○○에 병사(兵使) 남이흥(南以興)이 재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에도 촉석루는 무려 여덟 번의 중수와 보수를 거친다.
끝없는 외세에 시달렸던 우리나라의 서러운 역사처럼 말이다.

지금의 촉석루도 옛날 그 모습이 아니다.
해방 뒤 국보 제276호로까지 지정되어 있었던 촉석루는 한국전쟁 때 또 한번 축대만 남긴 채 모조리 불타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일행들이 바라보는 촉석루는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중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된 누각이다.
촉석루 오른 편에는 남강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층층이 놓여있다.
그 돌계단을 따라 동굴처럼 생긴 성벽을 빠져나오면 연초록빛 물결이 잠든 남강변에 작은 바위가 하나 섬처럼 떠 있다.

저 바위가 바로 논개가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장을 껴안은 채 강물에 뛰어들었다는 의암바위이다.

이 바위는 원래 ‘위암’이라고 불렀는데, 논개의 충절을 기려 이름을 ‘의암(義巖)’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의암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돌계단을 올라오면 촉석루 서편에 ‘지수문’(指水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사당이 하나 나온다. 이 사당이 바로 논개의 영(靈)을 받들어 모시는 의기사다.

의기사는 영조 16년, 서기 1739년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의기사 또한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야만 했다.
의기사의 나즈막한 담벼락 옆에는 검은 대나무, 즉 오죽(烏竹)이 논개의 혼백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촉석루를 나와 한참을 오른편으로 걸으면 국립진주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임진왜란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임진왜란과 관련한 각종 문학과 서화, 총포, 갑옷 등이 잘 전시되어 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지 중 하나.
진주성을 대강 둘러본 다음 공북문으로 나와 왼편으로 10여분을 걸으면 서울 인사동에 버금가는 골동품거리가 나온다.

각종 고문서와 서화, 도자기, 석물뿐만 아니라 옛날 시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절구, 장독, 물레방아 등도 만날 수 있다. 찬찬히 구경하며 걷는 재미는 추위도 잊게 한다.

취재 : 최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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