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땅보다 더 넓은 바다가 눈앞에, 땅 끝 마을 해남

땅보다 더 넓은 바다가 눈앞에, 땅 끝 마을 해남

by 운영자 2006.02.17

■ 말갛게 씻은 마음으로, 해남 땅 끝보성, 장흥, 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향한다.
간단한 여행 자료를 얻기 위해 들른 해남군청은 관광객의 방문이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이것저것 해남의 관광 자료를 보여주며 필요한 것은 가져가라 설명한다.
친절한 웃음에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해남읍에서 현산면 초호 삼거리까지 13번 국도를 타고 가다 다시 77번 국도를 타고 10여분 쯤 더 달리면 구불구불 곡예길과 가파른 경사길이 이어진다. 땅 끝과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타고 온 차를 주차장에 두고 땅끝전망대로 향한다. 가파른 길을 천천히 오르며 바다를 바라본다. 느긋하게 백사장을 거니는 것과 달리 가뿐 숨을 쉬며 바라보는 바다는 더 간절하다. 더 시원하다.

10여분 쯤 오르자 횃불 모양의 땅끝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 보는 바다,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바다가 더 많은 여운을 준다. “와!” 소리가 나오지는 않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바다, 그곳에서 더 나은 내일을 다짐한다.

■ 흐린 겨울 하늘빛과 어우러져 묵화 같은 절, 미황사

땅끝을 찾아가는 길, 왼편으로 ‘달마산, 미황사’ 표지판이 나온다.
구불구불 한적한 시골길, 갈아엎어 놓은 논에는 볏단이 쌓여 있고, 길섶의 마른 갈대 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풍경. 비가 온 탓인지 인적마저 드물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달마산은 병풍을 두른 듯 미황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따라 걸으니 동백 숲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혹여 동백꽃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아직 접어둬야 한다.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그 안에 자리한 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제 947호로 자연미가 돋보이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절의 이름은 소가 울 때 그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를 썼고, 의조화상의 꿈에 나타나 절 지을 곳을 알려준 금인의 황홀한 빛을 상징하여 ‘황(黃)’자를 취해 미황사라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미황사 대웅전엔 단청(丹靑)이 없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수수함과 단정함이 한껏 묻어나온다.

응진전과 명부전 안에 모셔진 보살, 나한, 동자, 신장상 등 조각상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뭐니뭐니해도 미황사에서는 부도밭을 봐야 한다.

■ 푸른 비가 내리는 녹우당

해남읍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20여분만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녹우당.
이곳은 있는 해남윤씨의 종가(宗家)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시인인 고산 윤선도와 그의 증손이며 선비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가 이 집안 출신이다.

500여 년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고택의 입구를 건실히 지키고 있다.
녹우당집 뒤 산자락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아’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산은 42세 때 봉림대군(후에 효종)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는데, 효종이 즉위하면서 고산을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 주었다.

후에 고산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수원 집을 뜯어다 사랑채를 지었는데, 예전에는 그 사랑채만을 녹우당이라고 하였다. 사랑채의 처마는 그 권세와 기상을 담은 것처럼 솟아있다.

건물들을 휘 둘러보고는 고산유물전시관으로 간다.
전시관에는 이 집의 유물 4천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 윤선도와 그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와 관련된 것들로 그 중에는,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 해남 윤씨 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윤고산수적관계문서(보물 제482호) 등도 포함되어 있다.

취재 : 최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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