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팔경 오미 중 하나 ‘월봉서원’
광주의 팔경 오미 중 하나 ‘월봉서원’
by 운영자 2007.03.16
절제된 은은함과 운치가 숨 쉬는 곳
광주 임곡동 광곡마을 빙월당서 기대승을 만나다
광주의 팔경 오미 중 한 곳이라 하여 찾아간 월봉서원.
팔경 오미라 해서 광주시민들은 월봉서원을 대부분 알겠다 싶었는데, 웬걸? 단 한사람도 월봉서원과 그 위치에 대해 아는 이 없었다. 하여 물어물어 시청 홈페이지에서 본 주소를 보고 광산동 452번지를 찾아 헤맸다.
헌데 광산동이 어디메요?
20년을 광주에 살았던 한 시민도 광산동은 처음 들어본다고 길 찾아 헤매는 심정도 모른 채 너털웃음 지어 보인다.
월봉서원 위치는 분명 광주광역시청 홈페이지에 보면 광산구 광산동 452번지로 명시되어 있다. 헌데 위에서처럼 애써 2시간을 헤맨 끝에 찾아간 그곳은 광산동이 아닌 장성 가는 방면 임곡동 광곡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막상 네비게이션만 믿고 갔다가 2시간 동안 광주바닥을 뱅뱅 도는 낭패를 맛보았지만, 다행이 찾아간 월봉서원은 겨울의 끝자락의 긴 솜이불의 먼저를 툴툴 털어내고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내린 눈 덕분에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은은함과 조용함의 운치는 실로 대단했다. 광주광역시에 팔경 오미 중 하나로 지정할 만 했다 싶을 정도로 절제됨 속의 서원 정경에 흠뻑 빠져본다. 그리고서 광주시민들도 대략 난감 표정 짓을 정도로 잘 모르고 있었던 월봉서원을 찾은 기쁨을 만끽해 본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원 터 마루에 앉아 시 한수, 책 한권 벗 삼아 유유자적해도 좋으련만. 세상 시름 무에 그리 많이 달고 살기에 팔경 오미 중에 한 곳 을 이제야 찾았을까.” 기쁨 마음에 순간 아쉬움도 표해본다.
산위에서 내려다본 월봉서원의 경관은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간드러지게 늘어져 있는 처마, 그 사이로 군데군데 들어 서 있는 여각들. 지극히 절제된 그야말로 겸손함의 표현일지다.
경내도 조용하고 호젓해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약간 무섭고 음산할 정도.
때문에 고봉 기대승이 빙월당에서 금방이라도 호령하고 나온다면 놀래 소스라칠 지경이다.
사람으로 친다면 아주 깔끔하면서도 냉철하고 자기 관리 잘하며 두말없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렵게 찾은 월봉서원의 냉철하면서도 조용하고 호젓한 운치는 실로 대단했다.
월봉서원의 유래
월봉서원은 당초 고봉을 추모하기 위한 곳으로써 강당 빙월당은 소나무 경관이 아름다운 백우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빙월당은 고봉 기대승을 주벽으로 박상, 박순, 김장생, 김집 등 조선시대의 학자와 명신 들을 배향한 월봉서원의 강당 이름이다.
월봉서원은 고봉 사후 7년만인 1578년에 지금의 신룡동인 낙암에 세웠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게 되자 지금의 산월동인 동천으로 옮겨 건립했다. 1655년에는 <월봉>이란 서원명이 임금으로부터 사액되었고 사우와 동서재, 강당이 갖춰졌다.
이때 월봉서원이란 액호는 이산뢰가 썼고, 나머지 편액은 송준길이 썼다. 이 현판들은 현재 장판각에 보존되고 있다. 그 뒤 월봉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훼철됐다가 1941년 현재의 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지었다.
이어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의 건립에 착수 1981년 모두 준공을 보았다.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월설월(氷月設月)>이라는 뜻이다.
[글·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조규봉 기자 / iopeed@naver.com]
월봉서원은 당초 고봉을 추모하기 위한 곳으로써 강당 빙월당은 소나무 경관이 아름다운 백우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빙월당은 고봉 기대승을 주벽으로 박상, 박순, 김장생, 김집 등 조선시대의 학자와 명신 들을 배향한 월봉서원의 강당 이름이다.
월봉서원은 고봉 사후 7년만인 1578년에 지금의 신룡동인 낙암에 세웠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게 되자 지금의 산월동인 동천으로 옮겨 건립했다. 1655년에는 <월봉>이란 서원명이 임금으로부터 사액되었고 사우와 동서재, 강당이 갖춰졌다.
이때 월봉서원이란 액호는 이산뢰가 썼고, 나머지 편액은 송준길이 썼다. 이 현판들은 현재 장판각에 보존되고 있다. 그 뒤 월봉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훼철됐다가 1941년 현재의 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지었다.
이어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의 건립에 착수 1981년 모두 준공을 보았다.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월설월(氷月設月)>이라는 뜻이다.
[글·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조규봉 기자 / iopee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