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화선> 촬영지, 하동 새미골도요지
영화 <취화선> 촬영지, 하동 새미골도요지
by 순광교차로 2007.06.22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장승업이오!
늙은 장승업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가마 곁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있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 절을 하듯 엎드려 숨을 죽인다. 그대로 한줌 재로 사그라져 혼으로 피어오른다. 죽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그림의 일부가 되려 했던 조선의 천재화가 장승업의 예술혼을 그린 영화 <취화선>.
늙은 장승업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가마 곁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있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 절을 하듯 엎드려 숨을 죽인다. 그대로 한줌 재로 사그라져 혼으로 피어오른다. 죽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그림의 일부가 되려 했던 조선의 천재화가 장승업의 예술혼을 그린 영화 <취화선>.
영화의 마지막은 늙어 쇠약해진 그가 불가마 속으로 조용히 사그라지는 장면. 죽어서도 이름 모를 도공의 작품 속에 살고 싶어했던, 스스로 그림의 일부가 되려 했던 장승업의 마지막을 무섭게도, 처절하게도 잘 보여줬다는 평을 받은 장면이다. 이 장면의 촬영지가 바로 하동 진교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다.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내던 가마터를 말한다.
하동 진교면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는 16ㆍ17세기 분청,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으로 전통 막사발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또한 일본 국보 찻잔인 ‘이도다완(井戶茶碗)’ 생산지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도요지로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웅천 도요지와 함께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도공을 납치해 생산한 ‘이도다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기 때문. 도요지 한켠에는 일본으로 붙들려 간 이름 없는 도공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 24호로 지정된 이곳에는 총 4개의 가마터가 남아 있는데 이중 1기는 통일신라시대 것이고 나머지 3개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조선 시대 것이다. 이곳 가마터에서는 대접, 접시, 병, 항아리, 잔 등 다양한 그릇 파편이 발견되고 있어 이곳이 주로 생활 그릇을 만들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하동 진교면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는 16ㆍ17세기 분청,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으로 전통 막사발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또한 일본 국보 찻잔인 ‘이도다완(井戶茶碗)’ 생산지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도요지로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웅천 도요지와 함께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도공을 납치해 생산한 ‘이도다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기 때문. 도요지 한켠에는 일본으로 붙들려 간 이름 없는 도공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 24호로 지정된 이곳에는 총 4개의 가마터가 남아 있는데 이중 1기는 통일신라시대 것이고 나머지 3개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조선 시대 것이다. 이곳 가마터에서는 대접, 접시, 병, 항아리, 잔 등 다양한 그릇 파편이 발견되고 있어 이곳이 주로 생활 그릇을 만들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사진설명 : 마을 입구, 물 위를 빼곡하게 채운 널따란 연잎.]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라는 푯말을 보고 찾아간 이곳은 푯말이 아니라면 한참을 헤맸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할 만큼 평범하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취화선>을 촬영했다 크게 광고해도 되련만 그저 시골 마을답게 주변에 거스르지 않고 조용하다. 차를 두고 걷는다. 왼편으로 눈에 띄는 초록의 연잎이 보인다. 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너른 잎을 활짝 펼치고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라는 푯말을 보고 찾아간 이곳은 푯말이 아니라면 한참을 헤맸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할 만큼 평범하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취화선>을 촬영했다 크게 광고해도 되련만 그저 시골 마을답게 주변에 거스르지 않고 조용하다. 차를 두고 걷는다. 왼편으로 눈에 띄는 초록의 연잎이 보인다. 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너른 잎을 활짝 펼치고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사진설명 : 가마터. 새미골 도요지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도공을 납치해 생산한 ‘이도다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시기가 일러 연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조금 더 걷자 ‘새미골 도요지’라는 문패를 단 편안한 초가집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마지막을 촬영한 가마가 있는 곳이다. 삐걱.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그리도 좋아하던 달항아리에 그림을 그리던 그림방이 보인다. 낡은 문창살, 색 바랜 창호지, 군불에 누렇게 변한 장판.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시기가 일러 연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조금 더 걷자 ‘새미골 도요지’라는 문패를 단 편안한 초가집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마지막을 촬영한 가마가 있는 곳이다. 삐걱.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그리도 좋아하던 달항아리에 그림을 그리던 그림방이 보인다. 낡은 문창살, 색 바랜 창호지, 군불에 누렇게 변한 장판.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사진설명 : 달항아리에 그림을 그리던 장승업의 방 앞 풍경. ]
<취화선>의 흐름을 갖고 발길을 옮긴다.
통유리로 꾸며진 차 마시는 공간을 지나자 장승업이 생을 다한 가마가 보인다. 영화 속에서처럼 말끔한 모습이 아닌 바로 엊그제까지 도자기를 구웠던, 그래서 재와 나무 부스러기들이 아무렇게나 놓인 편안한 모습의 가마다.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가마 속에서 생을 마감한 장승업의 마지막이 눈에 선하다.
네모난 틀 안에서 갇혀 살아야 했던 조선시대. 술과 여자, 영감. 그림을 위해 기성적 가치를 훌훌 털고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던, 그렇게 살려고 했던 천재화가 장승업. 한줌 재로 사그라진 그 가마 곁에 앉아 그를 떠올린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icross.co.kr]
<취화선>의 흐름을 갖고 발길을 옮긴다.
통유리로 꾸며진 차 마시는 공간을 지나자 장승업이 생을 다한 가마가 보인다. 영화 속에서처럼 말끔한 모습이 아닌 바로 엊그제까지 도자기를 구웠던, 그래서 재와 나무 부스러기들이 아무렇게나 놓인 편안한 모습의 가마다.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가마 속에서 생을 마감한 장승업의 마지막이 눈에 선하다.
네모난 틀 안에서 갇혀 살아야 했던 조선시대. 술과 여자, 영감. 그림을 위해 기성적 가치를 훌훌 털고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던, 그렇게 살려고 했던 천재화가 장승업. 한줌 재로 사그라진 그 가마 곁에 앉아 그를 떠올린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icro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