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비극의 역사 간직한 ‘순창 회문산’
6ㆍ25 비극의 역사 간직한 ‘순창 회문산’
by 순광교차로 2007.06.25
“다시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일은 없어야지”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있는 넋들은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에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신비로운 것이로다//(중략)//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 구상 <적군 묘지 앞에서>
연한 연둣빛에서 짙푸른 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6월의 회문산은 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초록 잎사귀와 뜨거운 태양 빛으로 눈이 부셔 눈물이 날 정도다. 게다가 회문산 곳곳 서린 비극의 역사도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순창 회문산 은 전라도에도 이런 산이 있나 싶게 첩첩산중이다. 전라도에 강원도 한 귀퉁이를 잘라다 옮겨 놓은 듯싶게 빽빽하게 나무가 우거진 회문산은 그 때문에 세상에서 내쳐지고 밀려난 사람들을 묵묵히 받아주었다.
전란시 중요책무를 담당했던 전략지였던 회문산은 조선조에는 반상의 구별이 또렷했던 나라를 바꾸고자 했던 의적들이, 한말에는 일제의 횡포에 항거한 의병들이, 일제 말기에는 무장항일투사들이 그리고 광복 후부터 6·25 동란까지는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대가 사령부를 두고 활동했던 ‘저항의 산’ ‘피의 산’ ‘피난의 산’이었다.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에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신비로운 것이로다//(중략)//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 구상 <적군 묘지 앞에서>
연한 연둣빛에서 짙푸른 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6월의 회문산은 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초록 잎사귀와 뜨거운 태양 빛으로 눈이 부셔 눈물이 날 정도다. 게다가 회문산 곳곳 서린 비극의 역사도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순창 회문산 은 전라도에도 이런 산이 있나 싶게 첩첩산중이다. 전라도에 강원도 한 귀퉁이를 잘라다 옮겨 놓은 듯싶게 빽빽하게 나무가 우거진 회문산은 그 때문에 세상에서 내쳐지고 밀려난 사람들을 묵묵히 받아주었다.
전란시 중요책무를 담당했던 전략지였던 회문산은 조선조에는 반상의 구별이 또렷했던 나라를 바꾸고자 했던 의적들이, 한말에는 일제의 횡포에 항거한 의병들이, 일제 말기에는 무장항일투사들이 그리고 광복 후부터 6·25 동란까지는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대가 사령부를 두고 활동했던 ‘저항의 산’ ‘피의 산’ ‘피난의 산’이었다.
[사진설명 : 빨치산과 국군이 대치하고, 양민들이 두려움에 떨던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회문산은 산 곳곳에 6·25의 상흔이 서려있다.
특히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 분위기가 높아가고 있던 지난 2000년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비목공원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상징하는 태극 모양의 평화탑, 양민희생자 위령탑, 시련과 해원, 소망과 시색 등을 상징하는 5개의 테마 숲, 한민족의 시련을 나타내는 40m 길이의 찔레꽃으로 된 시련의 터널, 전사한 전우의 묘비를 대신했던 비목, 양민과 국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시비 등이 조성되어 있다.
또 회문산 중턱에는 6·25 당시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를 재현한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가 복원돼 당시 인민군의 생활상과 전투상황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어야지. 생김새도 똑같고, 똑같은 말을 하고, 뿌리가 같은 사람들끼리 총을 겨눠서야 쓰것어ㆍ 지금이 대체 몇 년째여. 식구들은 같이 살아야 식구지.”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회문산은 산 곳곳에 6·25의 상흔이 서려있다.
특히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 분위기가 높아가고 있던 지난 2000년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비목공원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상징하는 태극 모양의 평화탑, 양민희생자 위령탑, 시련과 해원, 소망과 시색 등을 상징하는 5개의 테마 숲, 한민족의 시련을 나타내는 40m 길이의 찔레꽃으로 된 시련의 터널, 전사한 전우의 묘비를 대신했던 비목, 양민과 국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시비 등이 조성되어 있다.
또 회문산 중턱에는 6·25 당시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를 재현한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가 복원돼 당시 인민군의 생활상과 전투상황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어야지. 생김새도 똑같고, 똑같은 말을 하고, 뿌리가 같은 사람들끼리 총을 겨눠서야 쓰것어ㆍ 지금이 대체 몇 년째여. 식구들은 같이 살아야 식구지.”
[사진설명 : 총칼 한번 잡아보지 못했던 평범한 이들이 군복을 입고 군인이 됐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다.]
손자와 함께 왔다는 한 할아버지는 다시는 그런 비극은 없어야한다 하시며 입을 굳게 다문다.
비목공원을 둘러보며 전쟁을 경험한 적도,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의 만화영화, 컴퓨터 게임에서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아이들에게 이곳을 보여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쟁이, 싸움이, 죽음이 얼마나 처절하고 안쓰러운지 느끼게 해준다면 좋겠다 싶다.
우리 역사 속에서 ‘피의 산’으로 기억된 회문산은 마지막 6·25까지 끝끝내 나라를 두 동강 내고 만 ‘비극의 산’, 숱한 양민과 빨치산, 국군의 죽음으로 ‘죽음의 산’으로 기억되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비극을 또렷이 기억해 그때의 실수를 다시는 범하지 않는 것,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icross.co.kr]
손자와 함께 왔다는 한 할아버지는 다시는 그런 비극은 없어야한다 하시며 입을 굳게 다문다.
비목공원을 둘러보며 전쟁을 경험한 적도,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의 만화영화, 컴퓨터 게임에서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아이들에게 이곳을 보여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쟁이, 싸움이, 죽음이 얼마나 처절하고 안쓰러운지 느끼게 해준다면 좋겠다 싶다.
우리 역사 속에서 ‘피의 산’으로 기억된 회문산은 마지막 6·25까지 끝끝내 나라를 두 동강 내고 만 ‘비극의 산’, 숱한 양민과 빨치산, 국군의 죽음으로 ‘죽음의 산’으로 기억되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비극을 또렷이 기억해 그때의 실수를 다시는 범하지 않는 것,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icro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