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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문학의 향기를 따라 걷다

군산, 문학의 향기를 따라 걷다

by 순광교차로 2007.09.07

금강 하구 채만식문학관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의 ‘탁류’는 이렇게 시작된다. 채만식 문학관은 소설 대목처럼 금강이 끝나면서 황해와 만나는 그 곳에 서있다.

가을이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깊어 가리라. 풍요롭고 또 쓸쓸한 가을이 짙어 가리라. 이 가을과 찰떡궁합은 단연 책이다. 시이다. 문학이다.

전라북도 군산을 대표하는 문인은 채만식(蔡萬植·1902∼1950). 그의 고향이 군산이고 대표작인 소설 ‘탁류’의 무대 역시 군산이다.

하여 가을과 군산을 조합하면 채만식이라는 답이 나온다. 가을, 진한 소설의 향기를 품은 채만식 문학관으로 향한다.

[ 사진설명 : ‘탁류’ ‘치숙’ ‘레디메이드 인생’ 등 일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쓴 채만식. 저 중절모와 코트는 그를 ‘블란서 신사’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 ]
군산이 배경이 된 소설 ‘탁류’는 항구도시 군산에 살고 있는 ‘초봉’이라는 여인의 비극적 삶을 통해 일제 식민시대의 어둡고 혼탁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초봉은 군에서 일하던 아버지 정주사가 미두(米豆, 현물 없이 쌀을 팔고 사는 일. 실제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쌀의 시세를 이용하여 약속으로만 거래하는 일종의 투기 행위)에 미쳐 가세가 기울어지자 약국에서 일을 한다.

약국 주인 박재호는 예쁘장한 초봉을 서울로 유인하려다 실패하고, 부모의 권유로 초봉은 호색가인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한다.

그러나 꼽추인 장형보의 흉계로 남편을 잃고 무작정 서울로 가던 초봉은 약국 주인 박재호의 유혹으로 그의 첩이 된다.

얼마 후 초봉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다. 이때 장형보가 나타나 자기의 아이라면서 아이와 함께 초봉을 데려간다.

결국 초봉은 장형보를 맷돌로 눌러죽이고 자수를 결심한다. 가난, 싸움, 투기, 간통, 흉계, 횡령, 탐욕, 추행, 살인 등으로 짓밟힌 여인 초봉을 통해 ‘탁류’는 파란만장한 우리 민족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 사진설명 : 월명공원의 채만식 동상. ]
[ 사진설명 : 문학관에서 바라본 금강하구. 비 오기 직전 먹구름이 껴 흐린 하늘 풍경과 금강, ‘탁류’ 속 초봉의 삶과 닮은 풍경이다. ]

금강 하구둑에 있는 채만식 문학관. 한적하고 툭 트인 곳에 자리한 채만식문학관은 ‘탁류’ 속 초봉의 아버지인 정주사가 살던 콩나물고개를 상징하는 ‘둔뱀이 오솔길’, 호남평야에서 거둬들인 쌀을 실어오는 기찻길 등 소설 속 시대를 떠올릴 수 있는 미두, 백릉, 청류, 문학 광장이 조성돼 있다.

총 2층으로 꾸며진 채만식문학관은 소설가 채만식의 삶과 문학, 군산의 옛 모습 등을 볼 수 있도록 전시실과 자료실을 마련해뒀다.
[ 사진설명 : 채만식의 육필원고. ]

문학관을 막 들어서면 중절모를 쓴 채만식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반긴다. ‘블란서 백작’이라는 별명을 얻게 한 차림이다. 전시실에는 채만식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구성한 영상물과 채만식이 썼던 육필 원고, 글이 안 써질 때마다 담배 대신 피웠다는 향로, 마지막까지 소설을 쓴 채만식의 좁고 깔끔한 방이 있다.

하지만 문학관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다른 곳에 있다. 2층 복도에 난 창으로 바라보이는 금강의 풍경이다. 비 오기 직전 먹구름이 껴 흐린 하늘 풍경과 금강, ‘탁류’ 속 초봉의 삶과 닮은 풍경이다.

채만식의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채만식문학관 말고도 임피면의 소설가 채만식의 묘와 생가 터를 알리는 비석을 꼽을 수 있다. 잘 보존되지 못하고 묻혀버린 것이 조금 안타깝다. 또 월명공원 내에는 채만식을 기리는 동상과 문학비가 세워졌다.

군산의 대표시인 고은도 빠질 수 없다. 고은 시인 역시 군산이 고향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초반부의 무대도 군산이다. ‘아리랑’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군산·김제의 곡창지대를 배경으로 일제의 수탈과 강제징용, 소작쟁의, 독립운동 등 식민지 백성의 한과 눈물, 몸서리치는 삶을 그리고 있다.
[ 사진설명 : 금강 철새 조망대. 늦가을 이곳을 찾으면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고방오리 등 오리류와 기러기, 뿔논병아리 등을 만날 수 있다. ]

채민식 문학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금강 하구의 철새를 볼 수 있는 철새전망대가 있다. 군산의 금강하구둑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강폭이 넓고 갯벌이 발달돼 있어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늦가을 이곳을 찾으면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고방오리 등 오리류와 기러기, 뿔논병아리 등을 만날 수 있다.

[ 글·사진 최명희 기자 cmh@icros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