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남해 ‘바람흔적미술관’

남해 ‘바람흔적미술관’

by 운영자 2008.08.08

‘땡, 땡’ ‘사삭사삭’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삶을 깨닫게 될까.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밥 딜런 ‘바람만이 아는 대답’ 가운데서-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나뭇잎이 부딪히는 ‘사삭사삭’ 소리로, 여고생 어깨 위 찰랑대던 머리칼 날리는 모습으로, 저 멀리서 날아든 등꽃 향으로…. 바람은 이렇듯 살금살금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다.

경남 남해의 ‘바람흔적미술관’. 이곳은 이름처럼 바람의 흔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땡, 땡’ 바람개비 돌며 내는 청아한 소리로, 맨발로 걷는 잔디밭 위 발 아래 슬며시 느껴지는 상쾌함으로, 저 멀리 호수 물결의 일렁임으로….

‘바람흔적미술관’은 이 계절에 찾아 나서기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마음까지 통과하기에.
[ 사진설명 :무심히 놓인 돌계단 따라 내려가면 가장 먼저 ‘땡, 땡’ 청아한 종소리와 만나게 된다. 사진 속 바람개비가 돌며 내는 편안한 소리다. 바람흔적미술관에서 첫 번째로 바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바람개비 ]

울창한 바람에 갇히고 나무에 갇히다
남해 ‘바람흔적미술관·편백휴양림’

지치고 그래서 질린 이 여름. 울창한 나무숲에 바람과 함께 갇힌다고 생각해보자.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가.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고 천국이고 파라다이스 아니겠는가.

경상남도 남해에는 그런 무릉도원이 존재한다. 바람에 갇히고 울울창창한 나무에 갇힐 수 있는, 그래서 여름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곳, 더불어 세상의 힘겨움마저 잠시 내려둘 수 있는 곳, 편백휴양림과 바람흔적미술관이다.

남해는 유명한 관광지답게 이정표를 잘 표시해 둬, 어느 곳이나 여행자들이 길을 헤맬 염려가 없다. 편백림과 바람흔적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은 남해읍 외곽도로에서 삼동·상주 방면으로 30여분쯤 달리다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한창 휴가철이라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오가는 차들이 많으니 운전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편백림과 미술관 가는 길은 깊은 시골 마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운전이 미숙하다면 능숙한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편이 훨씬 낫다.
자연이 만든 듯 꾸밈없이
바람흔적미술관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나뉘어 있다. 자칫 눈에 띄는 위만 보고 왔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 풍경을 놓치게 될 테니 조심해야 한다.

먼저 눈에 더 잘 띄는 도로 위쪽 미술관으로 향한다. 양 옆으로 작가들의 조형물이 전시돼 있는 소담스런 돌길을 따라 오르면 보이는 유리로 된 건축물이 ‘바람흔적미술관’이다.

관람객이 직접 불을 켜고 관람을 한 뒤 다시 불을 끄고 나가야 하는 ‘셀프’ 미술관인 이곳은 때문에 관람료도 없다. 하지만 관람하는 이 스스로 음식물은 갖고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며, 작품들을 촬영하는 일도 없다.

아마도 모든 것을 다 아는 ‘바람의 흔적’을 등 뒤에서 느끼기 때문이 아닐는지. 어쩌면 예의와 양심의 흔적을 느끼는지도!

도로를 건너 돌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가면 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소리가 먼저 반긴다. 마치 풍경소리인 듯 청아한 ‘땡, 땡’ 소리는 스무 개 남짓의 바람개비들이 바람을 받아 돌면서 내는 소리.

그 소리가 어찌나 맑은지 한참을 귓가에서 맴돈다. 미술관 둘레로 깔아놓은 잔디밭을 맨발로 걸으면 미술관 안의 작품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에 입이 벌어진다.

발아래 느껴지는 잔디의 푹신함과 저 건너편 산과 호수, 바람개비, 바람의 조화는 자연의 미술관이다. 맨발로 잔디밭에 서서 가만 눈을 감는다. 나도 자연이 만든 미술관의 한 작품이 된다.
울창한 편백나무숲 속 삼림욕
바람흔적미술관을 지나 10여분 정도만 더 달리면 만날 수 있는 편백자연휴양림. 울창한 편백나무숲과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한여름 불볕더위를 가시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오른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통나무로 예쁘게 지어진 휴양림 내 숙소가 보인다. 푸른 편백나무와 황토빛의 통나무집이 동화 속 같다. 와글와글 아이들 소리도 들린다.

소리를 향해 따라가니 수영장에 아이들이 한가득이다. 준비해 온 튜브며 공으로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소리며 몸동작이 커져만 간다.

길을 따라 죽 오르면 몇 채의 휴양림 내 펜션이 자리하고, 숲이 안은 듯 넓은 잔디밭도 있다. 아빠 따라 공차기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지만, 한여름 더위에 땡볕을 그대로 맞아야 하는 잔디밭은 그리 인기 없다.
전망대까지 올라 편백나무숲을 내려다 볼 수도 있는데, 차로는 오를 수 없다. 정해진 산책로를 따라 1시간 30분 가량 걸어 올라야 한눈에 편백나무숲을 담을 수 있다.

햇살이 뚫기 힘들 만큼 빽빽하게 자란 편백나무들은 하늘에 닿을 듯한 기세로 곧게 자라나 숲을 이루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촘촘한 나무들은 아래서 올려다보면 그 옛날 여인네들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처럼 검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 숲이 만들어내는 풋풋한 향기가 몸 안으로 퍼져, 맑은 기운으로 몸속에 차오른다. 편백나무가 내뿜는 청신한 피톤치드 속에 가만 눈을 감는다.

[ 글·사진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