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영암목장·왕인박사유적지
영암 영암목장·왕인박사유적지
by 운영자 2008.10.17
역사 공부도 하고, 마음도 쉬고
억새를 볼 작정을 했다면 굳이 영암을 택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억새는 몇 배의 감동을 선사한다. 영암목장의 초록 들판은 아래로 깔리고 햇살에 더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는 하늘 위로 깔린다.
저 멀리 안개 너머로 보이는 월출산, 나주 금성산도 마치 신선 세계에 온 듯 아스라하다. 가벼운 몸 탓에 가는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는 하지만 함께라서 강하다. 이리저리 일렁이면서도 바람에 일부러 몸을 거스르지 않기에 더 강건하다.
# 고생 끝 만난 별천지, 영암목장
영암까지의 길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순천 청암대학에서 고흥, 장흥 방면으로 가다 영암으로 들어서 다시 광주 방면으로 가다보면 영암읍을 바로 지나 금정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참을 가다보면 여운재 고개를 만나는데 고개를 넘어 조금만 가면 약수터가 나온다. 그 좁다란 약수터길을 쭉 따라가면 그곳이 영암목장이다.
하지만 미숙한 운전자에게는 이곳을 권하지 않는다. 가파르고 좁다르고 양옆으로 풀이 우거진 목장길은 평평하고 너른 아스팔트에 익숙한 자동차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사고를 부를지도 모른다.
길은 짐작보다 더 좋지 않다. 애초에 차를 위한 길이 아니었기에 길은 심하게 울퉁불퉁하고 해발 500여 미터에 자리한 이곳은 때문에 아주 비탈지다. 하지만 굽어 내려보는 발아래 풍경은 시원하다. 소는 없지만 푸르게 펼쳐진 초원은 드넓다.
고개를 들면 억새가 또 드넓다. 더 눈을 멀리 두면 첩첩이 펼쳐진 산등성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생 끝의 낙이라 했던가. 영암목장이 꼭 그렇다. 어렵사리 찾은 이곳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억새를 볼 작정을 했다면 굳이 영암을 택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억새는 몇 배의 감동을 선사한다. 영암목장의 초록 들판은 아래로 깔리고 햇살에 더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는 하늘 위로 깔린다.
저 멀리 안개 너머로 보이는 월출산, 나주 금성산도 마치 신선 세계에 온 듯 아스라하다. 가벼운 몸 탓에 가는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는 하지만 함께라서 강하다. 이리저리 일렁이면서도 바람에 일부러 몸을 거스르지 않기에 더 강건하다.
# 고생 끝 만난 별천지, 영암목장
영암까지의 길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순천 청암대학에서 고흥, 장흥 방면으로 가다 영암으로 들어서 다시 광주 방면으로 가다보면 영암읍을 바로 지나 금정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참을 가다보면 여운재 고개를 만나는데 고개를 넘어 조금만 가면 약수터가 나온다. 그 좁다란 약수터길을 쭉 따라가면 그곳이 영암목장이다.
하지만 미숙한 운전자에게는 이곳을 권하지 않는다. 가파르고 좁다르고 양옆으로 풀이 우거진 목장길은 평평하고 너른 아스팔트에 익숙한 자동차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사고를 부를지도 모른다.
길은 짐작보다 더 좋지 않다. 애초에 차를 위한 길이 아니었기에 길은 심하게 울퉁불퉁하고 해발 500여 미터에 자리한 이곳은 때문에 아주 비탈지다. 하지만 굽어 내려보는 발아래 풍경은 시원하다. 소는 없지만 푸르게 펼쳐진 초원은 드넓다.
고개를 들면 억새가 또 드넓다. 더 눈을 멀리 두면 첩첩이 펼쳐진 산등성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생 끝의 낙이라 했던가. 영암목장이 꼭 그렇다. 어렵사리 찾은 이곳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사진설명 : 왕인박사가 도공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석상으로 만들어뒀다. 그가 일본으로 건너가기까지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놀며 공부하며, 왕인박사유적지
영암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실 ‘왕인 박사’다. 왕인 박사는 백제시대 1600여년 전,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된 인물로 도공과 석공 등 기술자도 데리고 가면서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연 시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나라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영암에는 왕인 박사에 대한 전설이 남아, 유적지를 조성해뒀다. 유적지 부근은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일찍이 바닷길이 열렸던 곳으로, 청동기 철기 문화가 이곳으로 유입됐다고 전한다. 또한 고대 중국과 일본의 교역로로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 국제적인 문화가 싹텄던 곳 이기도 하다.
이곳은 영암 목장과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했다. 영암목장에서 목포 방면으로 819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이정표가 잘 나와 있다.
1987년 조성된 왕인박사유적지는 단순한 유적지라기보다 공원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왕인박사의 행적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관뿐만 아니라 왕인 박사가 태어난 생가터, 박사가 공부하던 문산재, 문산재에서 기슭을 타고 조금 더 오르면 왕인이 책을 쌓아 두고 공부했다는 책굴이나온다.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만한 입구에 네댓 평 정도의 평평한 자연 동굴이다. 책굴 앞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이 있는데, 왕인 박사를 추모해 새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탄생지에서 계곡 쪽으로 더 들어가면 성천이라 불리는 조그만 샘물이 있는데 여자들이 이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처럼 뛰어난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 이 내려온다.
# 놀며 공부하며, 왕인박사유적지
영암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실 ‘왕인 박사’다. 왕인 박사는 백제시대 1600여년 전,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된 인물로 도공과 석공 등 기술자도 데리고 가면서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연 시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나라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영암에는 왕인 박사에 대한 전설이 남아, 유적지를 조성해뒀다. 유적지 부근은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일찍이 바닷길이 열렸던 곳으로, 청동기 철기 문화가 이곳으로 유입됐다고 전한다. 또한 고대 중국과 일본의 교역로로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 국제적인 문화가 싹텄던 곳 이기도 하다.
이곳은 영암 목장과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했다. 영암목장에서 목포 방면으로 819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이정표가 잘 나와 있다.
1987년 조성된 왕인박사유적지는 단순한 유적지라기보다 공원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왕인박사의 행적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관뿐만 아니라 왕인 박사가 태어난 생가터, 박사가 공부하던 문산재, 문산재에서 기슭을 타고 조금 더 오르면 왕인이 책을 쌓아 두고 공부했다는 책굴이나온다.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만한 입구에 네댓 평 정도의 평평한 자연 동굴이다. 책굴 앞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이 있는데, 왕인 박사를 추모해 새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탄생지에서 계곡 쪽으로 더 들어가면 성천이라 불리는 조그만 샘물이 있는데 여자들이 이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처럼 뛰어난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 이 내려온다.
[사진설명 : 도기문화센터 앞에 위치한 상대포. 이곳이 백제의 국제 항구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처럼 공부할 것 말고도 유적지는 마치 공원처럼 나무와 잔디, 쉴 의자가 곳곳에 놓였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낮잠을 청해도 좋겠다. 왕인 박사 사당 맞은편 호수에는 잉어들이 떼지 어 놀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이처럼 공부할 것 말고도 유적지는 마치 공원처럼 나무와 잔디, 쉴 의자가 곳곳에 놓였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낮잠을 청해도 좋겠다. 왕인 박사 사당 맞은편 호수에는 잉어들이 떼지 어 놀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사진설명 : 도기문화센터 내 도기 만드는 곳. 가지런히 팬 장작을 직접 지펴 도기를 굽는다.]
유적지 맞은편 도기문화센터에 위피한 상대포는 이곳이 백제의 국제항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도기문화센터와 구림전통마을 등도 볼거리가 많다. 특히 마을 곳곳이 낮은 기와 담장을 하고 있어 인상에 남는다.
[글·사진 :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유적지 맞은편 도기문화센터에 위피한 상대포는 이곳이 백제의 국제항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도기문화센터와 구림전통마을 등도 볼거리가 많다. 특히 마을 곳곳이 낮은 기와 담장을 하고 있어 인상에 남는다.
[글·사진 :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