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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국화 나들이

고창 국화 나들이

by 운영자 2008.10.31

슬프도록 아름다운 국화꽃
봄꽃과 가을꽃은 다르다. 모양이나 색, 향과 관계없이 봄꽃은 마냥 반갑지만 가을꽃은 왠지 서운하고 쓸쓸하다. 가을 저 끄트머리에서 피는 국화는 더욱 그렇다. 고운 빛깔로, 향기로운 내음으로 감추고 있지만,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핀 국화는 어쩔 수 없이 서럽다.

<살아온 날보다 /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 귀밑에 아직 솜털 보송보송하거나 / 인생을 살아도 헛 살아버린 / 마음에 낀 비계 덜어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 / 꽃이라도 다 같은 꽃은 아니다 / 눈부신 젊음 지나 / 한참을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꽃 / 국화는 드러나는 꽃이 아니라 / 숨어 있는 꽃이다 / 느끼는 꽃이 아니라 생각하는 꽃이다 / 꺾고 싶은 꽃이 아니라 그저 / 가만히 바라보는 꽃이다> - 김재진 ‘국화 앞에서’ 중에서

전라북도 고창은 지금 국화꽃이 지천이다. 30만평을 가득 메운 국화꽃은 물론이고, 안현 돋음볕마을 담벼락에도, 미당 서정주의 시 속에서도 국화꽃이 피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국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허나, 한번만이라도 예쁘고 향기로운 국화꽃의 이면을 봐 주시라. 세상의 꽃들 다 사라질 때까지 호올로 외로이 피어나는 것을. 그래서 더 눈물겹게 아름다움을!
[사진설명 : 고창국화축제장 야외 국화꽃. 가는 곳마다 국화가 흐드러진다.]
‘저 먼 시간의 그리움’
땅 위에서 담벼락에서 시에서 만나는 국화꽃
고창에서 만날 수 있는 국화꽃은 꼭 땅 위를 한정하지 않는다. 작은 마을 담벼락에서도, 시인의 시 속에서도, 벌·나비 입대롱에서도, 젊음 뒤안길 지나온 누이의 얼굴에서도 국화꽃을 만날 수 있다. 가을을 그득 채우는 국화 만나러 고창으로 떠난다.

# 끝 간 데 없는 국화 행렬, 고창국화축제장
고창 가는 길은 담양-고창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시간도 훨씬 단축되고 편해졌다. 순천·광양에서 2시간 이내면 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도 한산하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서울 방면으로 가다, 오른편 고창-담양고속도로를 탄다.

그 뒤 고창 방면으로 곧장 가지 말고 서울 방면 장성분기점 백양사나들목으로 나가면 고창국화축제장에 훨씬 가깝게 다다를 수 있다. 다만 나들목에서 국화축제장까지 가는 길이 구불구불 산길이니 운전에 유의할 것.

‘세계 최대 30만평 300억 송이 하늘 열린 고창국화’란 주제로 내달 23일까지 열리는 고창국화축제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왼편, 노랗고 하얀 색으로 그 자태를 뽐내더니 차에서 내리자 향으로 발길을 이끈다.
[사진설명 : 국화축제장 내 전시실의 국화 작품. 한반도를 표현했다.]

고창국화축제장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나뉜다. 방장산 자락 아래 30만평 드넓은 대지에 국화를 심어 ‘꽃멀미’를 일으킬 만큼 국화를 실컷 만날 수 있는 야외와 갖가지 모양으로 국화를 장식한 작형별 품종별 국화 전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국무총리배 제18회 전국국화경진대회’가 열리는 국화전시실이 바로 그것.

국화전시실은 전국 작가들의 국가 작품 2만여 점이 전시됐다. 국화로 표현한 한반도, 나비, 사람, 소, 별 등 다양한 모양의 국화 작품이 눈길을 끈다. 다양한 종류의 국화를 만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전시실 밖에는 그야말로 ‘국화꽃 세상’이다.

눈길 가는 곳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국화꽃이 우리를 맞는다. 국화꽃 사이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은은한 국화향에 꽃멀미가 날 지경. 큰 도로를 중심으로 오른편 언덕에는 원두막을 설치해 둬, 잠시 국화꽃멀미를 가라앉힐 다리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덕에는 아직 국화가 피지 않아 아쉽다. 이곳에서는 국화꽃따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데,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국화꽃밭 주변을 도는 이색체험도 눈길을 끈다.
[사진설명 : 고창 돋음볕 마을의 또 하나의 국화꽃. 인생의 뒤안길에 선 누님의 벙그러진 얼굴은 국화꽃만큼 아름답다.]

# 국화꽃 같은 우리네 누님, 부안면 돋음볕마을
SBS ‘패밀리가 떴다’에 나와 더 유명해진 고창 부안 송현리 돋음볕 마을은 마을 담장에서 국화꽃을 만날 수 있다. 평범한 시골 마을인 이곳이 벽면 그득 국화꽃으로 채운 까닭은 ‘국화 옆에서’의 시인 미당 서정주 시 문학관과 생가가 지척에 있기 때문.

마을 하얀 담장에 그려진 노랗고 붉은 국화꽃은 평범한 시골 마을에 생기를 더한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국화는 국화꽃이 아니다. 인생의 뒤안길을 걷는, 실제 국화꽃보다 더 고운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벽면을 채운 누님들의 환한 미소는 국화꽃 활짝 핀 모습과 경줄 바가 아니다.

돋음볕 마을은 국화축제장에 30여분 거리에 있다. 축제장에서 나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선운사 나들목으로 나와, 부안 방면으로 가야 한다. 미당시문학관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면 어렵지 않다.
[사진설명 : 부안면 질마재마을의 미당시문학관. 고창 국화를 유명하게 한 첫 이유다.]

# 시에서 오롯이 피어나는 국화, 미당시문학관
사실 고창이 국화로 유명해진 까닭은 바로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 덕이다. 미당 서정주가 나고 묻힌 곳이 바로 이곳, 고창이기 때문. 돋음볕 마을에서 150미터 떨어진 질마재마을은 서정주 시인의 생가와 시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폐교된 선운분교를 활용해 꾸민 시문학관은 서정주 시인의 유품, 시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삐걱삐걱 나무 소리 나는 전시실은 그 시절 ‘국민학교’의 추억을 돌아보게 하고, 미당의 시를 더 맛깔나게 한다.

<국화가 없었다면 우리의 가을날 창가는 참으로 초라할 뻔했다. 가을에 피어나 씨앗을 맺는 국화는 그래서 열매도 만들지 않는다. 가을이면 바람은 얼마나 달콤한 방랑자인가. 국화는 흰 솜털 풀풀 날리는 씨앗을 바람에 부탁한다. 가을 서정의 극치이다.> - 식물학자 차윤정의 <꽃과 이야기하는 여자>에서 가을 서정의 극치, 국화는 고창 어디에나 피어 있다.

아니 더 나아가 인생의 뒤안길에 선 누님의 얼굴에도, 가을이 떠나감을 아쉬워하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국화꽃은 활짝 피었다. 국화향이 가득 찼다.

[글·사진 : 순천광양 교차로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