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대원사
보성 대원사
by 운영자 2008.11.21
“모두모두 행복해져라, 얍!”
반장과 부반장처럼 세상의 일들에는 ‘주(主)’와 ‘부(副)’가 있게 마련이다. 보성 천봉산 자락의 대원사는 그동안 내게 ‘부’였다. 한마디로 으뜸이 아닌 버금이었다는 말이다.
대원사로 접어드는 벚꽃길이 내겐 ‘주’이고 ‘으뜸’이었다. 벚꽃 터널은 해마다 몇 번씩 들러 환한 기운 맞으면서도 대원사는 그냥 지나쳤던 때도 있었다.
늦가을, 다시 찾은 대원사는 벚꽃 길 마냥 내게 ‘주’가 되었다.
같은 곳인데도 계절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심지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성 대원사 접어드는 길이 꼭 그렇다.
이른 봄, 길가 양옆으로 벚꽃 ‘굴(窟)’이 끝없이 펼쳐진 구불구불한 길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환하게 하더니, 한여름 자잘한 초록 나뭇잎으로 싱그럽게 하더니, 늦가을 잎을 덜어내고 땅에게 거름으로 헌사한 벚나무는 쓸쓸하다. 굽이굽이 접어드는 그 길이 어찌나 황량한지, 봄에 왔던 곳이 맞는지 자꾸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대원사로 접어들면 다시 ‘별천지’가 된다.
돌방석에 넉넉하게 앉아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세상 시름마자도 다 잊고 함께 웃게 한다. 웃는 얼굴에 저절로 복 들것다. 저절로 행복해지것다.
반장과 부반장처럼 세상의 일들에는 ‘주(主)’와 ‘부(副)’가 있게 마련이다. 보성 천봉산 자락의 대원사는 그동안 내게 ‘부’였다. 한마디로 으뜸이 아닌 버금이었다는 말이다.
대원사로 접어드는 벚꽃길이 내겐 ‘주’이고 ‘으뜸’이었다. 벚꽃 터널은 해마다 몇 번씩 들러 환한 기운 맞으면서도 대원사는 그냥 지나쳤던 때도 있었다.
늦가을, 다시 찾은 대원사는 벚꽃 길 마냥 내게 ‘주’가 되었다.
같은 곳인데도 계절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심지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성 대원사 접어드는 길이 꼭 그렇다.
이른 봄, 길가 양옆으로 벚꽃 ‘굴(窟)’이 끝없이 펼쳐진 구불구불한 길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환하게 하더니, 한여름 자잘한 초록 나뭇잎으로 싱그럽게 하더니, 늦가을 잎을 덜어내고 땅에게 거름으로 헌사한 벚나무는 쓸쓸하다. 굽이굽이 접어드는 그 길이 어찌나 황량한지, 봄에 왔던 곳이 맞는지 자꾸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대원사로 접어들면 다시 ‘별천지’가 된다.
돌방석에 넉넉하게 앉아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세상 시름마자도 다 잊고 함께 웃게 한다. 웃는 얼굴에 저절로 복 들것다. 저절로 행복해지것다.
“영원히 엄마 품에서 편히 쉬렴”
자궁처럼 편안한 ‘대원사’
보성 천봉산 자락에 자리한 대원사는 백제시대의 고찰이다. 백제 무녕왕 3년(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된 이곳은 태아 영가(영혼)들의 천도를 위한 절이다.
아도화상이 이곳에 절을 세운 이력을 알면 왜 이곳이 태아 영가 천도를 위한 절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경상도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며 불법을 전하던 아도화상은 어느 날 꿈에서 봉황을 만난다.
꿈에서 봉황은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며 아도화상의 목숨을 구해준다. 봉황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 아도화상은 다음날부터 봉황을 찾아 헤매고 석 달을 헤맨 끝에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땅 모양을 찾아내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대원사 자리다.
아도화상은 이곳을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천봉산이라 이름 짓고 맑은 기운이 샘솟는 곳에 절(대원사)을 지었다. 대원사에 이르는 벚꽃 길은 어머니의 자궁 길이고, 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탯줄, 대원사 자리는 자궁을 의미한다.
보성 문덕면의 대원사는 차로 1시간 남짓 가야 다다를 수 있다. 가장 빠른 길은 광주 방면 호남고속도로를 타는 것. 송광사 나들목으로 나와 보성·벌교 방면으로 달리다, 광주·보성·화순으로 이르는 길로 접어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단풍이 흩날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어 운전이 더욱 즐겁다.
자궁처럼 편안한 ‘대원사’
보성 천봉산 자락에 자리한 대원사는 백제시대의 고찰이다. 백제 무녕왕 3년(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된 이곳은 태아 영가(영혼)들의 천도를 위한 절이다.
아도화상이 이곳에 절을 세운 이력을 알면 왜 이곳이 태아 영가 천도를 위한 절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경상도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며 불법을 전하던 아도화상은 어느 날 꿈에서 봉황을 만난다.
꿈에서 봉황은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며 아도화상의 목숨을 구해준다. 봉황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 아도화상은 다음날부터 봉황을 찾아 헤매고 석 달을 헤맨 끝에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땅 모양을 찾아내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대원사 자리다.
아도화상은 이곳을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천봉산이라 이름 짓고 맑은 기운이 샘솟는 곳에 절(대원사)을 지었다. 대원사에 이르는 벚꽃 길은 어머니의 자궁 길이고, 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탯줄, 대원사 자리는 자궁을 의미한다.
보성 문덕면의 대원사는 차로 1시간 남짓 가야 다다를 수 있다. 가장 빠른 길은 광주 방면 호남고속도로를 타는 것. 송광사 나들목으로 나와 보성·벌교 방면으로 달리다, 광주·보성·화순으로 이르는 길로 접어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단풍이 흩날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어 운전이 더욱 즐겁다.
[사진설명 : 절 입구 동자지승. 태아 영혼들의 천도를 위한 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 아가들아, 편안하렴
대원사는 다른 절들과 다르다. 아기자기하고 친절하다. 아마도 ‘아가’들을 위한 절이라 그런 모양이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절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돌무지. 그 위에 오롯 앉아있는 빨간 모자를 쓴 동자지장은 대원사가 태아 영가(영혼)들의 천도를 위한 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극락전 오른편으로 늘어선 동자상들과 그 가운데 우뚝 선 태안지장보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저승의 어머니. 때문에 대부분의 보살이 머리에 화관 등을 쓰고 있는 것과 달리 지장보살은 스님처럼 민머리이다.
태안지장보살은 그 중에서도 태아의 영혼을 고통과 원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비의 어머니이다. 부모와의 인연은 맺어졌지만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영혼인 태아령을 감싸안아주는 ‘어머니’인 셈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이들이 모래밭에서 탑을 쌓는다. 부처님의 공덕을 빌려 삼도의 강을 건너려고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며 탑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탑이 완성될 무렵이면 저승 도깨비들이 탑을 부숴버려 어린 영혼들은 울다가 지쳐 잠이 든다. 그때 지장보살이 나타나 어린 영혼들을 감싸 안는다.
∥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대원사도 그 말을 그렇게 실현하고 있다.
절 입구에서 연지문(蓮池門)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면 연못가 나뭇가지에 보통 염주의 몇 배나 큰 염주가 걸려 있고 또 그만큼이나 큰 목탁이 함께 걸려 있다. 이것들은 바로 지극 정성으로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원사는 염불선 수련도량이다. 염불선이란 통일신라시대 원효가 널리 퍼뜨린 것으로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과 달리 어려운 교리나 경전을 모르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지극정성으로 외면 성불할 수 있다는 수행법이다.
무지한 나도 간절히 빌어본다. ‘나무아비타불’
∥ 아가들아, 편안하렴
대원사는 다른 절들과 다르다. 아기자기하고 친절하다. 아마도 ‘아가’들을 위한 절이라 그런 모양이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절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돌무지. 그 위에 오롯 앉아있는 빨간 모자를 쓴 동자지장은 대원사가 태아 영가(영혼)들의 천도를 위한 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극락전 오른편으로 늘어선 동자상들과 그 가운데 우뚝 선 태안지장보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저승의 어머니. 때문에 대부분의 보살이 머리에 화관 등을 쓰고 있는 것과 달리 지장보살은 스님처럼 민머리이다.
태안지장보살은 그 중에서도 태아의 영혼을 고통과 원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비의 어머니이다. 부모와의 인연은 맺어졌지만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영혼인 태아령을 감싸안아주는 ‘어머니’인 셈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이들이 모래밭에서 탑을 쌓는다. 부처님의 공덕을 빌려 삼도의 강을 건너려고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며 탑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탑이 완성될 무렵이면 저승 도깨비들이 탑을 부숴버려 어린 영혼들은 울다가 지쳐 잠이 든다. 그때 지장보살이 나타나 어린 영혼들을 감싸 안는다.
∥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대원사도 그 말을 그렇게 실현하고 있다.
절 입구에서 연지문(蓮池門)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면 연못가 나뭇가지에 보통 염주의 몇 배나 큰 염주가 걸려 있고 또 그만큼이나 큰 목탁이 함께 걸려 있다. 이것들은 바로 지극 정성으로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원사는 염불선 수련도량이다. 염불선이란 통일신라시대 원효가 널리 퍼뜨린 것으로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과 달리 어려운 교리나 경전을 모르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지극정성으로 외면 성불할 수 있다는 수행법이다.
무지한 나도 간절히 빌어본다. ‘나무아비타불’
[사진설명 : 극락전 앞 빨간 모자를 쓴 동자승과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태안지장보살.]
∥ 행복해져라, 얍!
염주와 목탁을 지나 더 오르면 푸근한 자태의 스님도 만날 수 있다. ‘포대화상’이다. 포대화상은 중국 명나라 때 스님으로, 어깨에 포대자루를 매고 다녀 붙여진 이름이다.
그 포대는 마치 요술램프 같았는데, 포대화상이 다니면서 눈에 띄는 사람에게 떡이든 고기든 돈이든 달라고 해 얻은 것을 포대에 담고 다닌다. 그러다 배고픈 사람 만나면 포대에서 먹을 것을 꺼내주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주었다고 한다.
“나에게 한 자루의 포대가 있는데 닫으면 바늘 하나 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가 함께 하네.”
나눔과 베품을 아는 포대화상이 남긴 말이다.
후덕한 웃음이 재미난 포대화상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포대화상 참배법. 포대화상의 배꼽을 만지면서 아랫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며 만지면서 껄껄 웃으면 세상 시름이 다 날아가고 복이 깃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포대화상의 배꼽 주변이 유난히 검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간절한 손길인 것. 포대화상의 웃음을 따라 함께 웃으면 세 가지 복이 생긴다고 한다. 무병, 장수, 부귀이다.
또 다른 참배법으로는 포대화상의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책갈피나 책상 앞에 놓고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있다. 복 받을 요량으로 크게 웃는다. 웃었더니 정말 복이 뭉텅 올 것만 같다.
[글·사진 : 순천광양 교차로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 행복해져라, 얍!
염주와 목탁을 지나 더 오르면 푸근한 자태의 스님도 만날 수 있다. ‘포대화상’이다. 포대화상은 중국 명나라 때 스님으로, 어깨에 포대자루를 매고 다녀 붙여진 이름이다.
그 포대는 마치 요술램프 같았는데, 포대화상이 다니면서 눈에 띄는 사람에게 떡이든 고기든 돈이든 달라고 해 얻은 것을 포대에 담고 다닌다. 그러다 배고픈 사람 만나면 포대에서 먹을 것을 꺼내주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주었다고 한다.
“나에게 한 자루의 포대가 있는데 닫으면 바늘 하나 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가 함께 하네.”
나눔과 베품을 아는 포대화상이 남긴 말이다.
후덕한 웃음이 재미난 포대화상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포대화상 참배법. 포대화상의 배꼽을 만지면서 아랫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며 만지면서 껄껄 웃으면 세상 시름이 다 날아가고 복이 깃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포대화상의 배꼽 주변이 유난히 검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간절한 손길인 것. 포대화상의 웃음을 따라 함께 웃으면 세 가지 복이 생긴다고 한다. 무병, 장수, 부귀이다.
또 다른 참배법으로는 포대화상의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책갈피나 책상 앞에 놓고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있다. 복 받을 요량으로 크게 웃는다. 웃었더니 정말 복이 뭉텅 올 것만 같다.
[글·사진 : 순천광양 교차로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