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화순 운주사 꿈나들이

화순 운주사 꿈나들이

by 운영자 2008.11.28

아직 끝나지 않은 ‘꿈’


내일과 모레만 지나면 달력은 마지막장에 이른다. 30여일이 지나면 새날이 온다. 그대, 꿈은 어디쯤 왔는가. 12월쯤에 와 있지 않더라도, 10월쯤에만 이르렀어도 그 꿈은 성공이리라.

그러나 11달 전 꾼 꿈이 아직 한 발자국도 못 나갔으면 또 어떠리. 우리의 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포기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르다. 설사 끝까지 ‘미완(未完)’으로 남을지라도 우리는 꿈을 꿔야 한다. 그래, 꾸기라도 해야 한다.

화순의 운주사는 꿈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비록 그 숨결은 낮게 잦아들었지만 끊긴 것이 아니다. 그들의 꿈은 천불 천탑으로 여실히 증명된다.

운주사는 세상에 딱 하나뿐인 절이다. 천불 천탑이라 불리는 불상과 불탑이 여기저기 셀 수 없이 많은 곳. 누웠거나 어떤 것은 머리가 없거나 어떤 것은 코가 없거나 정형화된 불상의 모습을 완전히 뒤엎은 절.

언제 어떻게 왜 부처들이 이 깊은 산골짝에 들어왔는지, 누가 불탑은 세웠는지, 지금껏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산사. 운주사를 찾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맘때 쯤, 수능시험을 끝내고 학교에서 단체로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렸다.

내리면서 녹아가는 눈 탓에 땅은 질퍽거렸지만 운주사의 ‘꿈’처럼 나도 대학에 대한 황홀한 ‘꿈’을 꾸고 있을 때였다.

10여년 만에 찾은 운주사의 느낌은 그대로였다. 편안함.

운주사에 들어서니 부처들이 먼저 반긴다. 머리며 코언저리에 첫눈을 얹은 불상들이 삐뚤빼뚤 못나서 더 정이 가는 모습으로 한데에서 그렇게 편히 손을 반긴다.

화려하거나 무섭도록 위엄 있거나 하지 않아 더 좋다. 여느 마을의 중생들을 모델로 만든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운주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석탑들도 편하기 그지없다.
[사진설명 : 운주사 와불. 꿈을 꾸자. 와불이 눈을 뜨고 일어나리라.]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님이 누워있다. 조상 대대로 사람들은 “이 천번째 와불님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

현재 운주사에 남아 있는 석탑은 12기, 돌부처는 70여기.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옛날에는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느 것도 없다. 때문의 마음대로 꿈을 꾸고 상상을 해도 된다. 소설가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숙종 때 의적 장길산이 민중들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했던 ‘혁명의 땅’으로 묘사했고 임영조 시인은 ‘운주사 와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창건 기록이 확실치 않은 운주사의 전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도선국사의 전설. 도선국사는 우리 땅을 바다를 향해 나가는 배의 형국으로 보았다.
[사진설명 : 운주사 9층 석탑]

운주사 자리는 한반도의 배꼽이자 배의 중심에 해당한다는 것. 기가 허한 이 자리에 천불천탑을 세우면 국운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 국사는 도력을 부려 하룻밤에 1000기의 석탑과 1000기의 석불을 세우기로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닭이 우는 통에 한쌍의 불상은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그리고 꿈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났다.

서쪽 산 능성, 두 분 부처님이 지그시 눈을 감고 새 세상을 기다리는 곳으로 향한다.
[사진설명 : ‘이무롭기’ 그지없는 불상]

“그게 어떻게 꿈이야. 움직이질 않는데. 그건 별이지, 하늘에 떠있는. 가질 수도 없는 시도조차 못 하는 쳐다만 봐야 하는 별. 뭔가 해야 할 것 아니야. 조금이라도 부딪히고 애를 쓰고,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의 대사 한 도막이 귓전을 울린다. 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 꿈을 꾸고 있으므로.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