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눈 오는 날 오른 ‘광주 무등산’

눈 오는 날 오른 ‘광주 무등산’

by 운영자 2009.01.16

새하얀 솜이불 덮으셨네

지난 주말, 하늘나라에선 선녀님들의 격렬한 베개 싸움이 있었습니다. 격렬한 베개 싸움에 베개가 뜯기고 파르르 새하얀 솜털이 사방으로 날립니다. 솜털은 바람을 따라 낮고 낮은 땅위까지 그득 채웁니다.

새해, 괜시리 분주해지는 마음을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어찌 알고 ‘잰걸음 재촉하지 마라’ 눈을 내려 주셨을까요.

아이들 주먹만한 눈송이가 쉼 없이 내립니다. 평소라면 방안에서 텔레비전과 귤, 만화책과 함께 보낼 주말이지만 눈 오는 날은 방안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새하얀 눈 세상을 굽어보자 마음먹습니다. ‘띵’ 엘리베이터 타고 옥상에 올라서도 내려다볼 수 있지만 그게 어디 산에서 보는 풍경과 비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무조건 무등산 행입니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내복을 꺼내 입고 일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 했던 방수 기능 짱짱한 등산 바지를 입습니다. ‘눈밭에 궁글러도 안 얼어죽겠다’ 소리를 듣던 두툼한 파카도 챙겨 입습니다.

커피를 끓이고, 귤도 몇 개 담습니다. 귀마개에 모자, 장갑까지 이제 등산화를 신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젠을 챙기면 ‘준비 끝’입니다.

미끄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 나뭇가지가지마다 내려앉은 눈꽃 맞을 생각에 설렘이 더 큽니다. 새 시간을 맞느라 바빴던 마음을 산길을 걸으며, 눈을 맞으며 차분히 정리하렵니다.

‘와!’ 탄성이 절로 터지는
눈 덮인 무등산 등산기

머리 위 어깨 위 콧등 위로 사뿐히 내려앉은 눈송이가 정신을 퍼뜩 나게 한다. 숨을 깊게 들이쉰다. 코를 통해 폐 깊숙이 들어오는 겨울 공기가 상쾌하다.

‘아’ 기분 좋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눈길 운전 걱정도 접어둘 겸 차를 두고 버스를 탄다. 버스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겨울산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 누구나 기꺼이 품어 안아주는 산
광주 무등산은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산. 광주와 화순군, 담양군 경계에 있는 산은 높이 1187m로 산세가 웅장하다.

‘무등산’은 고려 태조 때 ‘고려사 지리지’에 처음 등장한다. 무등산은 이제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기꺼이 품어 안아주는 산’으로 그 해석이 진화했다. 그 이름 덕인지 무등산은 결코 낮지 않은 산인데도, 완만한 등산로가 지천에 깔려 있어 남녀노소 쉽게 탈 수 있는 ‘어머니의 품 같은 산’이다.

무등산은 역사와 문학의 산실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무등산을 ‘무정산(無情山)’으로 부르도록 하는 ‘어명을 내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성계는 전국의 명산에서 ‘왕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고, 왕이 된 후에는 자신이 죽인 ‘고려 말 명신의 원혼을 달래 달라’는 제사를 올렸으나 무등산 신령만이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사진설명 : 새로 정비된 입석대 등산로 위에 누군가 귀여운 눈사람을 만들어뒀다.]

무등산 오르기는 주로 2개 방향에서 시작된다.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되고, 곳곳에 샘물이 솟아올라 쉽게 목을 축일 수 있다는 것이 무등산 등산의 매력이다.

무등산 최대 볼거리는 정상 부근에 자리한 입석대. 깎아 세워놓은 듯한 돌기둥이 천연기념물(제465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한동안 출입을 통제했던 입석대와 서석대가 지난해 12월 개방돼 그 아름다운 절경을 다시 볼 수 있다.

∥ 원효사~늦재~장불재~증심사
원효사 쪽에서는 늦재에 올라 중봉이나, 장불재까지 간 후 증심사 쪽으로 내려와도 좋다. 장불재에서 다시 무등산 뒤쪽 규봉암을 돌아 원효사 쪽으로 되돌아오는 길이 있다.

종주 코스로 증심사~송풍정(당산나무)~중머리재~용추 3거리~장불재(입석대·서석대)~규봉암~신선대 3거리~꼬막재~원효사 주차장 구간 15㎞ 거리다.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이 코스는 담양과 화순의 드넓은 들판이 산행을 한층 넉넉하게 한다.

∥ 증심사~바람재~토끼등~중머리재~입석대
도심에서 4㎞ 거리인 동구 운림동 증심사 주차장과 무등산 서북쪽 북구 금곡동 원효사 계곡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해발 500m 지점에 있는 원효사 주차장까지는 버스로 20분 거리.

증심사 쪽 길이 가장 인기있는 코스다. 초보자는 출발지점인 증심교 3거리에서 바람재, 너덜겅약수터, 토끼등, 중머리재까지 올라 좌우로 삼각형을 그리며 다시 되돌아오는 길이 편하다.

허나 산행시간은 총 5~6시간이 소요되니 결코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초보자에 미끄러운 길에 겁이 많아 이 길을 택한다. 바지런한 등산객들이 이미 길게 줄을 맞춰 산을 오른다.

처음 시리던 손과 발은 어느새 따뜻해지고 숨이 가빠온다. 오르는 중간중간 길옆으로 슬쩍 빠져 눈 덮인 산을 올려다보고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평소 눈으로 ‘여긴 어디고 저건 뭐’하며 대강 가늠이 가늠했을 동네들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태초의 세상이 이랬을까 싶다. 숨이 가빠질수록, 다리가 팍팍해질수록 등허리에 땀이 촉촉이 만져질수록 설경의 절정은 더해간다.
[사진설명 : 사진작가 김세권의 ‘서석대의 겨울’ ]

무등산의 진면목은 입석대와 서석대. 천연기념물인 돌기둥을 보호하기 위한 전망대설치와 등산로 정비 등의 이유로 출입을 금했던 이곳은 지난해 12월부터 개방한 덕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다.

입석대에 오른다. 10~20m 높이, 6각형 모양새의 돌기둥 십여개가 각각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병풍 같은 돌기둥으로 눈이 소복히 쌓였다. ‘와!’ 탄성이 터진다. 여기저기 흩어진 등산객들도 절경 앞에서는 모두 한마음이 된다.

“오메! 오길 잘했네, 잘했어” “야호!” 한마음으로 입을 모은다.

땀도 식힐 겸 가방 무게도 줄일 겸 가방 안에서 커피와 귤을 꺼내 나눈다.

넉넉하게 챙겨가길 잘했다. 산의 넉넉함 탓인지 등산객들의 마음도 넉넉해져 모르는 이들에게 스스럼없이 초코바를 건네고 육포를 나눈다. 나누며 더해지는 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길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서둘렀지만 겨울 산에서의 시간은 더 빠르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에 비해 시간이 훨씬 빠르지만 미끄러워 마음만 바쁘고 걸음은 느리다.
“오메, 그렇게 발끝만 쳐다보고 가믄 더 위험해. 멀리 보랑께.”

답답한 내 걸음에 어르신이 훈수한다.
그렇다. 멀리 보는 것, 산을 내려오는 것만이 아니라 삶을 진득하게 이끌어가는 데도 꼭 필요한 마음가짐 아니던가.

두려움을 접고 눈을 들어 멀리 나무를 본다. 발은 아직도 눈길을 더듬고 있지만 마음은 느긋하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