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햇살 고운 가을 날 함평 나들이

햇살 고운 가을 날 함평 나들이

by 운영자 2009.09.11

어머, 가을이 오나 봐!

<구름이 구름이 / 하늘에 폭 안기는 걸 보면 // 까치가 감나무에서 / 뱅뱅 맴도는 걸 보면 // 가을이 오나 봐 // 아무도 아무도 / 몰랐는데 말이야 // 바람이 나에게 / 속삭이더라 // 나무도 하늘도 / 짙게 물들어만 가는 // 가을이 온다고> - 장수철 ‘가을이 오나 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시인의 말처럼 파아란 하늘에 하이얀 구름이 폭 안겨 있다. 가을이, 가을이 잰걸음으로 오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가을 온다고 속삭이고, 한결 보드라워진 햇살이 가을이 온다고 재잘댄다.

햇살 고운 가을날, 훌쩍 떠난다. 함평 잠월미술관과 황토와 들꽃 세상으로. 가을 만끽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시골 마을 안 소박하고 재미난 미술관
함평 해보 ‘잠월미술관’


가을이다.
아직 한낮의 해는 여름 기운을 쨍쨍하게 내고 있지만 바람결에서 또 오후의 햇살 결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은 여유롭다. 더위가 가시는 초가을은 더욱 그렇다. 봄가을의 형형색색 현란함 대신 유독 파란 하늘만이 다가온다.

함평 해보면 산내리 잠월미술관을 향한다. 벌써 가을꽃 꽃무릇이 나란히 피어 있다. 멀리서 보면 붉은 솜뭉치 같다.

잠월미술관. 내비게이션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시골마을에 지어진 조금 좋은 건물 정도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도심 한가운데 있거나 도심을 벗어났더라도 주변 환경을 짱짱하게 정비한 곳에 있게 마련이다.

헌데 함평 해보면 산내리의 ‘잠월미술관’은 농촌 마을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주변을 ‘미술관답게’ 정비한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일하며 사는 시골 마을에 건물 하나가 전부이다.

어울리지 않게 시골마을에 웬 미술관? 사시사철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농사일에 찌든 농군들에게 여유롭게 작품 구경하러 온 사람 보며 가뜩 주눅 들게 하려고?
아니다. 이곳 잠월미술관은 겉만 번지르르한, 그래서 아무나 근접할 수 없는 미술관이 아니다. 누구든, 흙 묻은 신발 툴툴 털며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누에를 닮은 산내리 뒷자락에 자리해 누에 잠(蠶)을 넣어 잠월미술관이다. 실제 미술관이 위치한 산내리마을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한다.

산내리 마을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오른쪽에 미술관이 보인다. 따로 주차장은 없다. 미술관 앞 잔디밭 한켠에 차를 두면 된다. 하지만 차를 마을 안에 놓고 걸어와도 좋을 듯싶다. 미술관 마당이 그리 넓지 않거니와 혹 고운 잔디가 상할까 걱정도 된다.

미술관 앞마당은 초록 잔디가 깔렸다. 푸른 잔디 위에는 예쁜 우편함이 놓였다. 나무로 만든 우편함은 매끈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예쁘다.
이런 우편함이라면 자꾸자꾸 편지가 왔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우편함 위로는 물을 기르던 ‘뽐뿌’가 있다. 어린 시절 서로 ‘뽐뿌질’하겠다며 다투던 기억이 스쳐간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간다. 지금 미술관은 ‘내 황혼의 날개짓-푸른 누에의 치맛자락’ 전시가 한창이다. 복권기금으로 지원된 ‘사랑+문화 나누기’ 축제의 일환으로 ‘광주전남 미술관박물관 연합전’이 열리고 있다.

잠월미술관, 다산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아천미술관, 남포미술관, 티베트박물관, 우제길미술관, 영산미술관 등 광주·전남 지역의 8개 사립미술관들이 참여, 노인·장애인·이주민들이 함께 작가들과 협업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드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과 예술작품 등의 결과물들이 전시된다.
잠월미술관은 그 가운데 노인예술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산내리 마을어르신은 흙으로 문패를 빚고, 천을 염색해 옷을 지었다. 미술과 예술과 거리가 영영 멀 줄 알았던 산내리마을 스무 명 남짓의 어른들은 이렇게 잠월미술관과 ‘어우러진다’. 잠월미술관이 이곳에 있는 까닭이다.
‘와! 꽃천지, 나무천지네’
함평 해보 ‘황토와 들꽃 세상’

잠월미술관에서 채 5분만 더 가면 ‘황토와 들꽃 세상’에 가 닿는다. 상상해보자. ‘황토와 들꽃 세상’이 뭐하는 곳일까? 음식점? 음식점이라 상상할 수도 있겠다.

황토로 지어진 집에 먹을 수 있는 꽃으로 요리를 한 건강 음식점. 하지만 음식점이 아니다. 그럼 꽃집? 꽃집도 그럴싸하다. 황토와 들꽃이라는 낱말 자체가 꽃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헌데 꽃집도 아니다. ‘황토와 들꽃 세상’은 식물원과 펜션이 함께 있는 곳이다. 황토로 지은 펜션이 있고, 온갖 들꽃들을 볼 수 있는 식물원이 있는 곳.

길을 따라 들어간다. 입구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황토로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담장 위로 노란 호박꽃이 예쁘게 피었다. 이름처럼 입구부터 황토가 반긴다.

사위가 툭 트여 시원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자잘한 꽃부터 울창한 나무까지 지천이 전부 나무, 풀, 꽃 천지다. 경계만 없었다면 그저 시골 들녘이라 착각할 정도다.
안내한 길을 따라 걷는다. 항아리 안에 곱게 핀 연꽃이 반갑다. 허리 숙여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과 눈맞춤한다. 하나하나 아는 척하고 살피느라 걸음이 느리다.
지천의 꽃 탓인지 나비며 잠자리며 벌이 날아든다. 꽃 위에서 한참을 쉬고 먹느라 카메라를 들이대도 떠날 줄을 모른다. 덕분에 사진 몇 장을 건지는 행운을 얻었다.

식물원 곳곳에는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등 자연을 예찬한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식물원을 걸으면 그 글귀에 ‘그래, 그래. 맞아, 맞아’ 할 수 있게 된다. 발 아래 작은 꽃들이 얼마나 예쁜지, 꽃 위에서 쉬고 있는 나비의 날개가 어쩜 그리 정교한지 감탄하게 된다.
식물원 산책길을 따라 죽 올라가면 눈앞에 소나무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누가 일부러 가꾸어놓기라도 한듯 길쭉하게 자란 소나무들이 가을 햇살 아래 더 초록을 뽐낸다. 꽃들과 풀들과 나무들과 나비와 벌과 잠자리와 인사하느라 피곤하다면 평상에 쉬는 것도 좋다.

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 앉으니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편하게 앉아 올려다보는 가을 하늘도 곱다. 다시 불끈 일어나 황토집과 초가집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초가집은 옛날 살림살이 몇 가지를 가져다 놓아 구경하게 했다. 전기곤로, 갓, 물 긷는 양동이….
자연이 날라다준 먼지가 곱게 쌓인 옛것들은 또 그대로 운치 있다. 왼편의 황토집은 펜션이다. 그 위로 더 올라가면 아래서 보았던 소나무숲에 닿는다.

가을이 깊어지면 소나무숲 아래는 국화가 노랗게 필 것이다. 그때 또 와서 보자 다짐하며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살풋 나는 땀은 어느새 바람이 씻어간 모양이다. 기분이 상쾌하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