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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by 운영자 2009.12.30

고 전 노무현 대통령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오늘은 2009년 12월 30일. 2009년 끝에 다다랐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게 마련이다. 그때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일들도 지나고 보면 마음의 키를 또 한뼘 키운 자양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귀한 모양이다.

하지만 도저히 아름다울 수 없는 추억이 있으니, 바로 죽음이다. 마음자리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잘 된 일이다’ ‘운명이다’ 하며 위로를 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2009년 나는 그리고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2명의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 모두 큰 충격이지만 그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라 더욱 안타깝다.

누구는 ‘2009년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민주주의의 큰 별이 한꺼번에 사라진 해로 기록될 것이다’이다 하고 또 누구는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어 그런 것이다’ 한다.

허나 죽음 앞에서 평소 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의 생각들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무슨 까닭이든 죽음을 선택한 것은 옳지 않고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깊다. 세밑,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숨결이 여전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꿈과 희망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2009년이 저물고 있다. 어느 해나 그렇듯 2009년 또한 곧 역사 속의 시간이 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올 한 해 많은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모두를 가장 놀라게 했던 죽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이제 영영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됐지만 꿈과 신념은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살아있는 우리들을 일깨울 터이다.

노 전 대통령은 측근과 가족의 금품수수로 검찰 수사를 받다 5월 23일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몸을 던졌다.

급작스런 노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들은 슬픔을 넘어 충격과 분노가 봇물처럼 터졌다. 전국 곳곳의 분향소에는 조문행렬이 이어졌으며, 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의 봉화마을을 찾아 슬픔을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7개월이 지난 12월 26일, 잔뜩 흐리고 바람까지 맵찬 날씨에도 불구하고 봉하마을을 찾는 발길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봉하마을 입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캐릭터가 밝은 얼굴로 안내한다. 표지판을 보고 있으니 7개월 전의 일은 마치 없었던 일 같다.

경호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주차를 한 뒤 눈으로 마을을 죽 훑는다. ‘대통령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것을 몰랐더라면 그저 지나쳤을 평범한 시골 풍경이다. 농한기를 맞은 마을은 조용하고, 눈앞에 펼쳐진 논과 밭은 색을 낮췄고, 산과 들의 나무들도 잎을 털어낸 채 차분하기만 하다.

가장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한 곳으로 향한다. 초가지붕의 황토 흙집 여느 시골집과 같다. 생가 안방에는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진이 걸렸다.

앳된 모습으로 권양숙 여사와 결혼식을 올리는 사진, 인권 변호사 시절의 모습 등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단, 방안에 들어갈 수는 없다. 대신 생가에는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하며 노 전 대통령의 생애, 권양숙 여사와의 일화 등을 들려준다.

생가 뒤에는 노 대통령을 먼저 보낸 권양숙 여사가 여적 살고 있는 사저가 있다. 사저 뒤로는 멀리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졌던 부엉이바위가 둘러졌다.
생가 옆으로는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책이며 사진, 달력, 컵 등을 파는 쉼터가 있다. 쉼터 앞에는 노란 우체통이 있는데,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노란 우체통이 아닐까 싶다.
쉼터를 나와 봉화산을 오른다. 멀리 부엉이 바위가 보인다. 산을 오르는 길 오른편으로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다. 지금은 묘역 재공사 중이라 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간이 묘역에도 그를 기리는 이들이 찾아와 흔적을 남기고 간다. 그 길로 죽 오르면 봉화산이다.
해발 140미터 나지막한 산은 오르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가파르다. 숨가쁘게 오르다 왼편으로 보이는 첫 번째 커다란 바위가 부엉이 바위다. 사람들의 모방 자살을 막기 위해 노란 줄을 쳐 부엉이 바위 끝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

부엉이 바위에 올라 내려다본다. 넓은 봉하 들녘이 펼쳐진다. 이곳에 서서 수많은 것을 다짐하고 또 지웠을 그의 모습이 스친다. 내년 봄이면 그가 공들였던 논에 오리가 살고 벼가 자랄 터이다. 그는 갔지만 그의 꿈은 자라고 있다.
부엉이 바위를 지나 더 오르면 봉화산 마애불과 정토사가 나온다. 정토사는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모셔져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는 죽어서도 꿈을 남겼다. 희망을 남기고 그 희망을 이뤄가기 위한 과제를 남겼다. 그 이후로 계속, 꾸준히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는 이유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