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의 애잔한 전설이 있는 절, 유마사
사랑과 우정의 애잔한 전설이 있는 절, 유마사
by 운영자 2010.07.02
유마사(維摩寺).
아마도 이곳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화순의 유마산은 골짜기에 있다. 아니다. 그 위치 때문에 아는 이가 드물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위치뿐만 아니라 절이라면 의당 갖춰야 할 ‘오래됨’이 없다.
허나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 뿐이지 유마사는 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한때 유마사는 호남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627년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한 이 절은 고려 때에는 귀정암(歸靜庵)과 금릉암(金陵庵) 등 8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
유마사가 위치한 모후산은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인 탓에 6?25 당시 빨치산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해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도 간간히 당시에 파놓은 참호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산막골에는 광복 전까지 15호 가량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6?25때 모두 소각당하고 폐촌이 됐다고 한다.
또 빨치산의 본거지라 하여 유마사의 사찰건물도 모두 불타고 말았다. 근래 들어 불사가 이루어져 호남 최초로 비구니승가대학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절의 대부분의 것이 새것이다. 으레 절이 갖춰야 할 오래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아마도 이곳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화순의 유마산은 골짜기에 있다. 아니다. 그 위치 때문에 아는 이가 드물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위치뿐만 아니라 절이라면 의당 갖춰야 할 ‘오래됨’이 없다.
허나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 뿐이지 유마사는 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한때 유마사는 호남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627년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한 이 절은 고려 때에는 귀정암(歸靜庵)과 금릉암(金陵庵) 등 8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
유마사가 위치한 모후산은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인 탓에 6?25 당시 빨치산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해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도 간간히 당시에 파놓은 참호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산막골에는 광복 전까지 15호 가량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6?25때 모두 소각당하고 폐촌이 됐다고 한다.
또 빨치산의 본거지라 하여 유마사의 사찰건물도 모두 불타고 말았다. 근래 들어 불사가 이루어져 호남 최초로 비구니승가대학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절의 대부분의 것이 새것이다. 으레 절이 갖춰야 할 오래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사진설명 : 보안이 놓은 다리, 보안교]
유마산을 찾아가는 길은 한적하다. 그곳으로 향하는 차들을 손에 꼽을 정도. 유마사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선다.
길은 한 갈래지만 과연 이곳에 절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제대로 된 표지판도 없고 관광안내소에 사람도 없다. 주차장은 있지만 차들도 없다. 사람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갈림길 앞에서 고민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왼쪽 길로 접어들면 유마사고 오른쪽 길은 모후산 생태숲으로 이어진다. 모후산 산행은 유마사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유천리 용문계곡으로 가는 길로 크게 나뉜다.
용문사 계곡은 경사가 완만해 오르기 쉬운데다 계곡 곳곳에 폭포를 이뤄 볼거리가 많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삼나무 숲을 거닐며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 권할 만한 코스다.
유마산을 찾아가는 길은 한적하다. 그곳으로 향하는 차들을 손에 꼽을 정도. 유마사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선다.
길은 한 갈래지만 과연 이곳에 절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제대로 된 표지판도 없고 관광안내소에 사람도 없다. 주차장은 있지만 차들도 없다. 사람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갈림길 앞에서 고민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왼쪽 길로 접어들면 유마사고 오른쪽 길은 모후산 생태숲으로 이어진다. 모후산 산행은 유마사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유천리 용문계곡으로 가는 길로 크게 나뉜다.
용문사 계곡은 경사가 완만해 오르기 쉬운데다 계곡 곳곳에 폭포를 이뤄 볼거리가 많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삼나무 숲을 거닐며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 권할 만한 코스다.
용문재는 유마사 계곡과 용문사 계곡이 만나는 지점으로 정상까지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는 외길이다. 상봉에 이르면 사방이 확 트여 발아래에는 아름다운 주암호와 무등산, 백아산과 더불어 조계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멀리 보성 득량만 앞 바다까지 보인다.
모후산은 풍기는 산세에서도 그렇거니와 산을 찾는 이들에게 피톤치드, 고로쇠 약수, 복삼 등을 제공해 주는 등 베풀기만 하는 우리 어머니 같은 산이다.
왼쪽 유마사 가는 길로 접어든다. 유마사라고 한문으로 쓰인 돌이 우뚝 서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왼편에 바로 보이는 것이 ‘보안교’다. 절을 창건한 보안이 놓은 다리이자 이 절의 문이다.
도톰하고 큰 바위 하나가 하천을 잇고 있다. 이 보안교에는 전설이 있다. 다리를 놓기 위해 보안은 모후산에서 바위 하나를 옮겼는데, 너무 무거웠던 탓인지 자꾸만 바위를 옮기는데 실패했다. 고심하던 보안은 치마폭에 바위를 싸고 옮겼다고 한다.
모후산은 풍기는 산세에서도 그렇거니와 산을 찾는 이들에게 피톤치드, 고로쇠 약수, 복삼 등을 제공해 주는 등 베풀기만 하는 우리 어머니 같은 산이다.
왼쪽 유마사 가는 길로 접어든다. 유마사라고 한문으로 쓰인 돌이 우뚝 서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왼편에 바로 보이는 것이 ‘보안교’다. 절을 창건한 보안이 놓은 다리이자 이 절의 문이다.
도톰하고 큰 바위 하나가 하천을 잇고 있다. 이 보안교에는 전설이 있다. 다리를 놓기 위해 보안은 모후산에서 바위 하나를 옮겼는데, 너무 무거웠던 탓인지 자꾸만 바위를 옮기는데 실패했다. 고심하던 보안은 치마폭에 바위를 싸고 옮겼다고 한다.
여느 절처럼 유마사에도 창건한 전설이 있다. 미리 말해두자면 여느 절과 달리 그 전설이 참으로 절절하다. 그 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유마사를 창건한 보안과 그녀의 아버지 유마운은 원래 중국 요동 사람이었다. 요동의 태수였던 유마운을 부와 명예를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고, 그의 딸 보안은 아버지에게 뉘우칠 것을 청한다.
딸의 말을 받아들인 유마운은 그간 쌓은 것을 모든 것을 내놓고 길을 떠나 모후산 자락에 정착한다. 그리고 그곳에 절을 짓고 법당을 지킬 스님인 ‘부전’을 들인다.
부전은 보안을 마음에 둔다. 그것을 안 보안은 부전에게 편지를 쓴다. ‘발원을 등지고 윤회(輪廻)의 강에 탐닉하는 것은 짐짓 불자의 바른 행위가 아닌 줄 아오나, 스님께서 정히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아까워 드리지 못할 것이 없사오니, 내일 저녁 열두시에 아랫마을 하천(河川)으로 나와 주십시오.’
유마사를 창건한 보안과 그녀의 아버지 유마운은 원래 중국 요동 사람이었다. 요동의 태수였던 유마운을 부와 명예를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고, 그의 딸 보안은 아버지에게 뉘우칠 것을 청한다.
딸의 말을 받아들인 유마운은 그간 쌓은 것을 모든 것을 내놓고 길을 떠나 모후산 자락에 정착한다. 그리고 그곳에 절을 짓고 법당을 지킬 스님인 ‘부전’을 들인다.
부전은 보안을 마음에 둔다. 그것을 안 보안은 부전에게 편지를 쓴다. ‘발원을 등지고 윤회(輪廻)의 강에 탐닉하는 것은 짐짓 불자의 바른 행위가 아닌 줄 아오나, 스님께서 정히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아까워 드리지 못할 것이 없사오니, 내일 저녁 열두시에 아랫마을 하천(河川)으로 나와 주십시오.’
[사진설명 : 비구니 도반. 성별은 같아도 부전과 보안 같은 좋은 도반이 될 게다.]
사랑에 달뜬 부전은 나왔고, 보안은 채 하나를 건네며 물속에 뜬 달을 건지면 ‘약속을 지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하듯 부전은 채로 달을 건져내지 못했고, 보안은 쉽게 건져냈다. 그날 이후 부전은 모든 것에 의역을 잃고 몸져 눕는다.
사랑을 치료하는 것은 사랑뿐. 보안은 아파 누워있는 부전을 찾아, 법당 안에 모셔진 탱화를 떼어 마룻바닥에 깔고 옷을 벗었다. 그러나 부전은 옷을 벗지 못했다. 사랑이 아무리 중요해도 스님이 탱화를 깔고 누울 수는 없었던 탓이다. 보안이 노하며 말한다.
“너는 만들어 놓는 그림에 불과한 부처는 무섭고, 진짜 살아있는 부처는 무섭지 않느냐?” 그리고는 백의관세음보살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
그제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부전은 열심히 참회해 결국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부전과 보안은 전생의 도반이었던 것이다. 서로 잘 되기를 끌어주는 도반.
유마사에서 오래된 것은 주변의 나무들과 부도뿐이다. 두 개의 부도가 있는데, 하나는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된 유마사해련부도(維摩寺海蓮浮屠)다.
보안의 아버지 유마운의 것으로 전해지는 이것의 상륜부는 사라지고 없다. 바로 옆에는 경헌대로사리탑(敬軒大老舍利塔)이 있다. 유마사. 절의 전설을 알고 가면 새록새록 정이 더 깊어지는 절이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
사랑에 달뜬 부전은 나왔고, 보안은 채 하나를 건네며 물속에 뜬 달을 건지면 ‘약속을 지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하듯 부전은 채로 달을 건져내지 못했고, 보안은 쉽게 건져냈다. 그날 이후 부전은 모든 것에 의역을 잃고 몸져 눕는다.
사랑을 치료하는 것은 사랑뿐. 보안은 아파 누워있는 부전을 찾아, 법당 안에 모셔진 탱화를 떼어 마룻바닥에 깔고 옷을 벗었다. 그러나 부전은 옷을 벗지 못했다. 사랑이 아무리 중요해도 스님이 탱화를 깔고 누울 수는 없었던 탓이다. 보안이 노하며 말한다.
“너는 만들어 놓는 그림에 불과한 부처는 무섭고, 진짜 살아있는 부처는 무섭지 않느냐?” 그리고는 백의관세음보살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
그제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부전은 열심히 참회해 결국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부전과 보안은 전생의 도반이었던 것이다. 서로 잘 되기를 끌어주는 도반.
유마사에서 오래된 것은 주변의 나무들과 부도뿐이다. 두 개의 부도가 있는데, 하나는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된 유마사해련부도(維摩寺海蓮浮屠)다.
보안의 아버지 유마운의 것으로 전해지는 이것의 상륜부는 사라지고 없다. 바로 옆에는 경헌대로사리탑(敬軒大老舍利塔)이 있다. 유마사. 절의 전설을 알고 가면 새록새록 정이 더 깊어지는 절이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