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대전 계족산 맨발 걷기

대전 계족산 맨발 걷기

by 운영자 2010.06.18

햇살 부서지는 나무들 사이, 포근한 황토길 걷기
‘아, 맨발의 행복’


<맨발처럼 좋은 눈이 있는가 / 꽉 죄인 구두의 형식은 벗어던지고 / 구겨진 양말의 문법은 벗겨버리고 / 은현리 가을 들판을 맨발로 걸어간다 / 허리 굽은 농부가 빚어낸 황금 문장을 맨발의 두 눈으로 경건히 읽어가노라면 / 몸 솜 가득 찬란한 느낌표는 적힌다 (후략)> - 정일근 ‘맨발의 시’

시인은 맨발을 눈이라 말한다. 양말도 구두도 벗어던진 시원스런 발은 눈이 된다. 보지 않고도 보고 느끼는 눈이 된다. 투박하고 무신경할 것 같은 발은 양말과 구두, 어색함을 벗어던지면 몸의 어느 기관보다 더 민감하게 느낀다.

집밖에서 맨발로 걸어본 적이 있으신가? 조심스럽지만 꽤 다른 느낌이다. 시원하고 즐겁다. 신발 안에 발을 가둬두고 걸을 때와 느낌도, 속도도, 걸으면서 보는 것들도 다르다. 대전 계족산, 포근한 황토 길을 두 시간 동안 맨발로 걷는다. 간질간질 기분 좋은 졸음이 몰려온다.
맨발, 좋아라 시원해라 상쾌해라!대전 계족산 황토길 걷기 체험

맨발 걷기는 준비물이 더 간단하다. 그나마 챙겨야하는 신발마저 넣어두면 된다.

주차장에서 신발을 벗어 트렁크에 집어넣고 산에 든다. 널찍한 숲길. 황토가 얇게 깔려있다. 황토길 양옆의 푸른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든다. 적당한 그늘과 햇살이 기분 좋다.

조심스럽다. 발이 아프지 않을까? 다치면 어쩌지? 몇 발자국 걷자 걱정은 사르르 사라진다. 흙길의 차가운 첫인상은 걸을수록 포근해진다.

도심은 30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 그늘진 숲 속의 황토는 차갑다. 한여름 내리쬐는 볕에 덥지 않을까 걱정은 기우다. 땀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상쾌하고 시원해진다.

발바닥은 섬세하다. 발바닥은 황토에 박힌 깨알만한 모래알까지 모두 감지해낸다. 죽은 작은 벌레, 나뭇잎 부스러기까지 모두 느낀다.

그저 무신경하고 투박하다고 생각한 발바닥은 손바닥보다 예민하다. 흙길의 미물, 흙길의 온도까지 섬세하게 알고 반응한다. 날큼한 돌부리에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나무 그늘을 지날 때의 차가움에도 움츠린다. 분명 발바닥이 더 섬세하다.

발바닥은 처음엔 무서워하고 겁을 냈다. 한 발을 온전히 딛기 어려워 앞꿈치만 살포시 대었던 것이 걸을수록 대담해진다. 저 나무 아래는 무슨 느낌일까 먼저 가 알아본다. 길을 길게 타고 가지 않고 가로지르며 낯선 땅의 느낌을 보려 한다. 그리고 이내 작은 차이까지 알아차렸다. 걷기가 즐거워진다.
맨발은 절로 느려진다. 좀체 속도를 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평소보다 더 느려진다. 처음엔 조심스러워서였다. 한번도 느껴보지 않은 생소한 느낌에 혹 다치지 않을까, 아프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발 아래만 보며 걸었다. 날카로운 것을 피해가고, 작은 벌레도 건너뛰었다.

이렇게 걷는 것이 적응되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 대신 시각은 넓어졌다. 앞만 보며 걷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눈도 발에 맞춰졌던 탓인지 자꾸 주위를 둘러본다.

좌우로만 보지 않고 상하로까지 눈길을 준다. 그저 슥 지나치는 것이 아닌 꼼꼼히 살피게 된다. 종종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층층나무 꽃, 참나무의 무늬는 물론 풀들도 다시 보인다.

맨발로 걸으면 성질 ‘화르르’한 사람들도 절로 느려진다. 어린아이의 걸음과 맞출 수도 있겠다. 어린아이처럼 걸음이 느려지니 해찰이 는다. 뚤레뚤레 주변도 둘러보고 쭈그려 앉아 개미들의 행진도 가만 들여다본다.

맨발은 작은 생명도 소중해진다. 평소대로라면 앞만 보고 우걱우걱 걷었을 숲길. 맨발로 걸으니 자꾸 발아래가 내려다보이고 글 아래의 일들에 신경이 쓰인다.

오종종 걸어가는 개미떼를 한참이나 구경하다 ‘혹 밟으면 안 되니까 조심해서 걸어야지’ 다짐까지 하게 된다. 신발을 신었다면 발 아래는 신경 쓰지도 않았을뿐더러 신경 썼더라도 무심히 밟아버렸을 테다. 말라죽은 송충이도 차마 못 밟겠다. 징그러워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

다리를 쓰면 머리도 쓰게 된다. 마라톤을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뛰는 사람은 없다. 뇌세포들도 덩달아 뛴다. 마라토너는 고통을 잊기 위해 일상사를 떠올리거
나, 해내겠다는 의지로 근육세포들을 달래는 신호를 발에 보내기도 한다.

보행자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으면서 철학을 했다. 그래서 소요학파란 별명을 얻었다. 루소, 칸트, 키에르케고르도 걸으며 생각했다. 맨발도 마찬가지다.

걸으면 온몸의 세포들이 자극을 받는다. 뇌세포도 자극한다. 한의학에서는 발에 온몸의 장기를 자극하는 혈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맨발로 걸으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지압슬리퍼나 지압발판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지기(地氣)를 느낄 수 있다는 사람도 많다.

맨발 걷기 한 시간 만에 계족산성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까지 딱 1.5㎞. 맨발로 걷는 사람은 대부분 이곳에서 되돌아간다. 계족산 산행을 하고 싶다면 갈림길에서 산 쪽으로 난 계단을 타고 오르면 된다.

발바닥이 용감해졌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대신 옆길로 걷고 싶어했다. 그런데 땅바닥은 잘 다져진 황톳길이 아니었다. 잡석이 많이 섞인 돌길. 울퉁불퉁 했다. 발바닥이 용기를 냈다. 새로 산 지압용 매트 위에 발을 올려놓은 것처럼 아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맨발 걷기 두 시간. 발바닥은 밤까지 얼얼했다. 발바닥은 한동안 깨어있었다.
중요 기점마다 정자와 화장실, 그리고 정확하게 기점별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들이 설치되어 있어 평일에도 가족단위 또는 홑몸으로 임도를 따르며 산책을 즐기는 등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산악자전거 행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계족산의 옛 이름은 봉황산(鳳凰山)이었다 한다. 그런데 중요하거나 귀한 이름은 감춰 부른다는 뜻에서 조선시대 송씨 문중에서 보배로운 이름은 감추어야 한다며 스스로 계족산이라 바꿔 부르도록 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풍수지리설에서 산의 형세가 닭의 다리와 흡사하다 해서 이미 <고려사> 회덕군편과 <세종실록지리지> 회덕현조에 계족산이라는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계족산에는 고찰이 비래사 한 곳뿐이다. 그러나 산줄기마다에는 백제 때 축조되었다는 규모가 가장 큰 계족산성을 비롯해서 30여 개에 달하는 산성이 있다.

산성뿐만 아니라 산자락 곳곳에는 고분군, 절터, 가마터, 고인돌 등이 분포되어 있어 이 산이 일찍이 대전의 가장 대표적인 삶의 터전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계족산 일원에는 명소와 유적이 많다. 해질 녘의 저녁 노을 풍광이 일품으로 대전8경 중 한 곳인 봉황정, 장동산림욕장과 계족산성은 대표적인 명소다.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숨결이 서려 있는 남간사와 기국정, 송자대전판 등이 보존되어 있는 우암사적공원, 사육신의 한 분인 박팽년 선생의 뜻을 기리는 장절정, 효종 때 병조판서 등을 지낸 송준길이 거처했던 동춘당, 송시열·송준길과 더불어 삼송(三宋)으로 칭송되었던 송규렴이 기거했다는 제월당, 회덕향교, 고흥 류씨 정려각, 송씨 가문과 인연이 깊은 비래사와 옥류각 등이 계족산 자락의 운치를 북돋아준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광주 방면으로 가다, 고창담양고속도로 고창 전주 방면으로 오른쪽으로 빠진다. 25킬로미터쯤 고창담양 고속도로를 달리다 다시 호남고속도로 대전 논산 경부고속도로 방향으로 달린다.

가는 길에 표지판이 잘 돼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계족산성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한 뒤 달리다보면 장동삼림욕장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전체 산행로는 13㎞. 처음 1.5㎞ 구간에 맨발산행코스가 잘 돼있다. 사이사이에 평상과 그늘막이 있어 쉬기에 적당하다. 가는 도중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샘터와 족욕장이 있다. 흙길은 충청권의 소주업체인 선양이 조성했다고 한다. 입장료는 없다. 관리사무소 042-623-9909

* 그 밖의 걷기 좋은 산 길
전북 순창 강천산도립공원 : 걷기 코스는 2.5㎞. 주변 풍광이 계족산보다는 낫다. 병풍폭포와 구장군폭포 등이 아름답다. 구름다리도 명물이다. 계곡이 깊지 않고 낮아서 여름철에는 행락객으로 붐빈다. 평일에도 1500~2000명, 주말에는 3000명이 찾는다. 입장료는 1000원. 주차료는 2500원. 063650-1533 순창군 http://sunchang.go.kr

* 맨발 걷기 주의점
신발을 벗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걸으면 달라진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학교 운동장에서 걸어도 된다. 초보자는 하루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걷는 게 좋다. 무리 하지 말자. 당뇨환자나 디스크 등 허리에 통증이 있는 사람은 해로울 수도 있다.

걷는 것보다 걷고 난 다음이 중요하다. 발을 잘 닦아준다. 굳은살이 박일 경우 나중에 갈라질 수 있으니 보습제를 발라준다. 만약을 대비, 소독약이나 일회용 밴드를 가지고 다니자. 신발을 차에 두지 말고 배낭에 넣고 가자.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