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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생가 ‘다시 보기’

대통령 생가 ‘다시 보기’

by 운영자 2010.08.27

“아직도 안 믿겨요”
DJ 서거 1주년, 대통령 ‘생가’ 둘러보기
지난 18일은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년이었다. 곳곳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추모식도 열렸다.
지난해 우리는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전직 대통령 둘을, 3달 간격으로 잃었다.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잊지 않는 이들이, 그분들의 죽음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5월이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가 8월이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가 더욱 붐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없지만 생가에는 그들이 살고 있다. 남은 자들이 그들을 찾는다.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년을 맞아, 전직 대통령들의 생가를 살펴봤다.

대통령 평가는 퇴임 이후 하기 ‘나름’
고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방문객 북적

DJ 서거 1주년, 대통령 ‘생가’ 둘러보기

■ 김대중 생가, 기리는 이들 발길 잦아
8월 초 하의도로 향하는 조양페리2호는 차량과 승객들로 붐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인 전남 신안 하의도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반 남짓 가야 도착하는 한가로운 섬이다.

그러나 지난해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방문객이 늘기 시작했고, 1주기를 앞두고 증가세가 눈에 띈다.

하의도 후광리 바닷가에 자리한 김 전 대통령 생가는 1924년 그가 태어나 1936년 하의보통학교 3학년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내던 초가집이다.

이후 목포북초등학교로 전학가면서 헐리고 마늘밭으로 변했는데, 1999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 1주년에 하의도를 방문했던 대구노인복지대학 회원들이 생가 복원 성금을 모아서 보내준 것을 계기로 복원을 시작해 그해 9월 60여일 만에 완전 복원했다.

복원된 생가는 여섯 칸으로 안채와 창고 1동, 화장실 1동 등의 부속채와 헛간 등이다. 생가 맞은편에는 2005년 지어진 소금전시관이 염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생가에는 대통령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 12개, 붓글씨 액자 2개, 책상과 20여권의 책, 벽시계 등이 단출하게 전시되어 있다.

■ 노무현 대통령 생가, 아무도 말하지 않으나 아무도 잊지 않은
전·현직 대통령 생가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봉하마을은 입구에서부터 추모 열기가 느껴진다.

마을 어귀 노란색 천과 함께 추모의 글과 현수막이 마을 곳곳에 붙어 있고, 방명록엔 이른바 ‘노무현 정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글이 빼곡하다.

“오늘 우리 일행이 대통령 마을을 방문하여 참배드립니다. 삼천리 강산의 통일과 국민들의 지극한 사랑, 빈부차를 해소하고 국민이 단합하는 길로 나아가신 대통령의 정신을 우리가 꼭 (실현)할 것입니다.”(경기 안산시 원곡동 문00)
“일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녀갑니다. 대통령님 잊지 않으렵니다.”(광주시 서구 금호동 송00) “아무도 말하지 않으나 아무도 잊지 않습니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려옵니다.”(부산 연제구 연제동 김00). 지난해 9월 복원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는 대통령 사저 앞에 자리하고 있다. 생가는 본채와 아래채로 구성돼 있고, 내부에는 옛날 집기와 사진들이 비치돼 있다.

부모님과 3남4녀가 다 모여 살기엔 상당히 협소한 규모로, 그의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생가터는 부산상고 동기회에서 매입해 김해시에 기부한 이후 복원되었다.

추모의 집에서는 대선 직전 노사모 총회에서 배우 문성근의 연설에 눈물을 흘리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으로 시작해 유년시절과 변호사 이후 재야시절, 청문회 스타를 거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의 모습이 상영되고 있다.

■ 박정희 생가는 경제난 때 더 몰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만큼이나 인기를 모으고 있는 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다. 박 전 대통령은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이 집에서 1917년에 태어나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년을 살았다.

1900년께 지은 50㎡(15평) 규모의 초가집으로, 전형적인 농촌 가옥이었으나 1964년 구미시가 안채 및 사랑채를 단장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꾸몄다. 생가엔 대구사범시절 쓰던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전시돼 있다. 안내 해설사 2명이 고정 배치됐고, 생가 입구엔 몇해 전 보릿고개 체험장도 개장했다.

생가 방문객 수는 1997년 한 해 동안 10만명을 넘어선 뒤 2000년 20만명, 지난해엔 5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관리를 맡고 있는 구미시 직원은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경제가 어려울 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국가 산업을 일으킨 것에 대한 추억”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방명록에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란 글귀가 주를 이루고, ‘이 난국에 당신이 그립습니다’ 등 향수 어린 글도 많았다.

■ 김영삼 전 대통령, 활동 뜸해도 방문객 꾸준

퇴임 후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도 방문객이 꾸준하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 자리한 김 전 대통령의 생가에 들르는 관람객은 하루 100여명 수준. 이들은 주로 거제도 관광객들의 일부로 주말에는 이보다 2배 이상 늘어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어려서부터 굉장한 부자였다”는 동네사람들의 말처럼 다른 대통령 생가와 달리 기와가 올라 있어 눈에 띈다.

생가는 본채와 사랑채 두 동으로 구성돼 있는데, 생가 뜰엔 김 전 대통령의 흉상이 눈에 들어온다. 청동으로 만든 가로 70㎝, 세로 80㎝의 흉상은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허난성 한원비림을 참관하고 휘호를 써준 데 따른 감사의 뜻으로 한원비림이 기증한 것이다.

주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생가 바로 옆에 세워진 YS기록전시관이다. 거제시가 시비 50억원을 들여 건립한 전시관은 2층 규모로, YS의 학창시절과 중학교 자취방 등 거제 지역에서 생활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비롯해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모습,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모습들이 담긴 사진과 영상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2층 입구에는 나란히 진열된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경쟁 후보들의 포스터가 이색적.

■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는 썰렁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에는 휴일을 제외하고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하다. 군사 반란 및 내란죄로 실형을 받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서 제외되어 생가의 관리상태도 썰렁할 정도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생가를 직접 관리하는 이가 없어 방명록도 비치해 놓지 않고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는 합천 읍내에서 낙동강 줄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행정구역상으로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인 이 마을엔 구멍가게, 식당 하나 없다.

전 전 대통령이 태어나 가족들과 만주로 이주한 8세 때(1939년)까지 살았던 생가는 재임시절인 1983년 안채, 헛간, 곳간, 대문 등 초가 5동을 옛 모습대로 복원해놓았으나 2채는 1988년 11월 방화로 소실됐다. 합천군이 2002년 생가 주변 터를 매입, 해마다 초가지붕을 개·보수하고 있고, 지난해 전 전 대통령의 이력을 담은 입간판을 생가 앞에 새로 세웠다.
대구 팔공산 자락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대구 도심에서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가 드물 뿐더러 헛간의 초가가 내려앉는 등 훼손이 많이 된 것.

이곳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에 자리한 생가에서 노 전 대통령은 1945년 공산초등학교를 마치고 대구공립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어린시절을 보냈다. 여섯 살이 채 안돼 아버지를 여읜 노 전 대통령은 일제 시기 홀어머니 품에서 자랐다.

노 전 대통령 생가엔 최근 실물 크기의 동상이 세워졌다. 마당 안쪽에 받침대를 포함해 약 1m80㎝ 가량으로 세워진 노 전 대통령 동상엔 ‘제13대 노태우 대통령’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