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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로 굴비를 짓다

가을 햇살로 굴비를 짓다

by 운영자 2010.09.17

전남 영광, 추석맞이 맛 나들이
‘바늘’ 하면 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것처럼 ‘영광’ 하면 굴비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만물의 ‘맛’이 그득그득 차오르는 가을, 영광의 굴비들도 맛을 채운다.

영광 굴비는 가을 햇살로 맛을 내는 듯 법성포에 들어서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주렁주렁 햇살 아래 곱게 말라가는 굴비들이다. 서로서로 허리를 엮은 굴비들은 앞의 바닷바람 맞고 위의 가을 햇살 받으며 골고루 ‘맛있게’ 몸을 말리는 중이다.

영광의 맛이 굴비뿐이라면 서러워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모시잎 송편. 웬만한 성인 여자 주먹만한 모시잎 송편은 그래서 별명이 ‘머슴 송편’이다.

땅 위의 것들이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 가을, 영광의 ‘맛’도 결실을 맺는다. 추석 맞아, 영광으로 ‘맛’ 찾아 떠난다.

아따, 가을 맛 꽉 찼네잉!
짭조름한 굴비 ‘밥 도둑’ 큼지막한 모시잎 송편 ‘밥 대신’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가을에 제대로 맛 든 것들이 많기에 근육질의 말들까지도 살이 찌는 것이다. 전라남도 영광에도 가을 꽉 찬 맛이 기다리고 있다.

■ 고운 볕에 겉은 꼬들하게 속은 촉촉하게 말린 ‘영광 굴비’
영광 법성포에 들어서면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훅 끼친다. 눅눅한 듯 비릿한 바다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남실남실 날아들어 코끝을 간질인다.

법성포에는 굴비가 마치 빨래 같다.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볕 잘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굴비가 말라간다. 헌데 이상하다. 비릿한 곳이라면 어김없이 날아들어야 할 파리가 보이지 않는다.
맹세코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헌데 진짜 법성포에 파리가 없는 까닭이 있다. 연평균 12도에 이르는 낮은 온도와 바닷가에서 양 갈래로 들어와 돌아나가는 지형 특성상 파리가 살 수 없기 때문이란다.

집마다 굴비를 널어 말리는데도 파리 한 마리 없는 것 역시 영광 굴비를 유명하게 한 특징이다. 또한 이곳의 염전에서 나오는 천일염으로 염장을 해 적당한 간이 배어 영광 굴비의 짭짤함이 더해진다.
굴비의 이름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인종 때 법성포로 귀양 온 이자겸이 그 맛에 반해 임금에게 바쳤다고 한다. 하지만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된 도리로 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뜻을 지녀 ‘굴비(屈非)’라고 불렀다고 한다.

굴비 가격은 한 두름(크기에 따라 열 마리 혹은 스무 마리)에 약 3만원부터 1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가격은 굴비의 크기와 비례하는데 일반적으로 한 두름에 5만원짜리면 반찬으로 먹기에 적당히 통통하고 맛있다. 옛날 방식으로 바싹 말린 보리굴비도 값은 비슷. 3~4개월 정도 말려 파는 부세는 한 두름에 4만~5만원 정도로 굴비보다 싸다.

■ 미네랄 함량 높고 나트륨 함량은 낮은, 영광 소금
영광은 쌀과 소금, 목화가 많이 나 예전에는 삼백의 고장으로 불렸다. 염전은 염산면에 많다.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보다 미네랄 함량이 많은 것이 영광 소금. 간수를 뺀 소금은 나트륨 함량이 88% 정도로 오히려 단맛이 난다.

■ 머슴이 먹어서 머슴 송편인가? ‘모시잎 송편’
추석을 앞둔 요맘때는 더더욱이나 영광의 떡집들이 눈코 뜰 새가 없다. 바로 모시잎 송편 때문이다.
여름철 입는 모시 옷의 주 섬유 재료인 모시의 잎을 넣어 만든다. 5월부터 서리 내리기 전까지가 모시잎을 수확하는 시기. 그 모시잎과 쌀을 섞어 반죽을 하고, 동부로 소를 넣어 일반 송편보다 2~3배 크게 만든 것이 모시잎 송편이다. 영광터미널 부근에는 모시잎 송편을 하는 떡집이 40여 데가 넘는다. 일반적으로 떡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방앗간에서 막 빼온 가래떡이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떡처럼 말이다. 하지만 식어야, 차가워야 제맛인 것이 바로 모시잎 송편이다.

보통 다른 떡들은 식을수록 딱딱하게 굳어지는데 모시잎 송편은 식어도 딱딱하게 굳지 않는다. 오히려 뜨거울 때보다 식었을 때 더 쫄깃쫄깃 씹는 맛이 좋다.

모시잎 송편을 차가울 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모시잎 송편에 들어가는 모시 잎 때문. 모시옷의 주 섬유 재료로 쓰일 만큼 섬유질이 풍부해, 오래 두어도 빨리 굳지 않는 다. 또한 모시의 차가운 성질로 인해 쉽게 상하지도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모시잎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도 좋고, 쑥보다 항산화활성이 6배나 높으며 단백질 함유량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시잎 송편은 쌀과 모시잎, 동부가 제대로 조화를 이뤄야 제 맛이 난다.

모시잎 송편은 머슴 송편이라고 한다. 머슴밥이 밥공기가 위로 불룩하게 솟도록 수북하게 쌓은 것을 얘기하듯 머슴 송편 역시 크기가 수북하다. 그 속도 동부 소로 꽉 차 있어 몇 개만 먹어도 금방 배가 부르다.

■ 배 부르고 난 뒤 꽃 구경, 불갑사 꽃무릇 축제 열려
요즘 불갑사에는 꽃무릇이 지천이다. 상사화 군락지가 50㏊(15만평)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꽃무릇은 엄밀히 말하면 상사화와 다르다. 하지만 꽃과 잎이 따로 피어 서로를 못 만난다고 해서 현지에선 두루뭉술하게 상사화라고 불렀다.)

불갑사 초입부터 꽃무릇이 많다. 산자락, 개울을 따라 꽃이 핀다. 대웅전 뒷자락 불갑사 저수지 쪽 산길을 따라가면 산사면이 온통 꽃무릇 밭이다.

꽃무릇은 절꽃이다. 금어(탱화를 그리는 스님)가 물감에 꽃무릇 뿌리를 찧어 넣으면 그림에 좀이 슬지 않아서 많이 키웠다. 이름은 운치 있지만 코끼리도 쓰러뜨리는 독초다. 코끼리를 잡을 때 뿌리에서 추출한 독을 썼다. 하여 눈으로만 보는 게 좋다.

불갑사는 갑(甲)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으뜸이라는 뜻이다. 삼국시대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곳이 영광이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침류왕 때인 384년에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불교를 전했다고 나와 있다. 영광이나 법성포 같은 이름도 불교적이다.

불갑사에서 대웅전과 일광당은 빼놓지 말고 꼼꼼하게 봐야 한다. 불갑사에는 인도양식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대웅전(18세기에 중건)의 용마루 위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스투파가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 스투파란 탑(塔)을 의미한다.

대웅전의 부처가 정면을 향하지 않고 남쪽으로 돌아앉아 있는 것도 신기하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같이 부처가 서방정토인 서쪽으로 돌아앉아 있는 경우는 있지만 불갑사처럼 남쪽으로 돌아앉은 경우는 드물다.

일광당은 기울어져 있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불을 때면 연기가 잘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인데 건축학자들이 많이 보러 온다.

붉은 꽃무릇이 흐드러진 영광에서 오늘(17일)부터 19일까지 제10회 불갑산 상사화축제가 열린다.
이번 축제에서는 우도농악, 도립국악단, 상사화 시낭송회, 창무극, 천년의 빛 작은 음악회, MBC 축하공연, KBS 빛고을 가요 차차차 등 다양한 공연 행사가 선보일 예정이다.

또 상사화를 소재로 한 상사화 탁본, 도자기 빚기, 상사화 그리기, 글짓기, 애틋한 사랑을 담은 시·수필 공모전도 열린다.

이와 함께 분재, 야생화, 수석전시 및 시화전, 사진·미술전시회 등 전시행사와 굴비, 돼지고기 시식회 등 풍부한 먹을거리가 준비됐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