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전북 김제 ‘징게맹갱 외에밋들’

전북 김제 ‘징게맹갱 외에밋들’

by 운영자 2010.10.15

지평선 향해 페달을 밟다

가을이다.
달리기 좋은 계절.

두 발로 달려도, 자전거로 달려도, 자동차로 달려도 좋다. 대신 바람을 한껏 맞을 수 있도록 창을 활짝 열어둘 것.

전라북도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드넓고 편평한 평야는 어디에 눈을 둬도 하늘과 맞닿아 있다. 속이 후련하게 ‘툭’ 트인다.
김제는 우리나라 최고의 곡창지대. 6900만평의 논에서 전국 쌀의 40분의 1인 145만가마가 나온다고 한다. 얼마나 들판이 넓었으면 ‘징게 맹갱 외애밋들’(김제 만경 너른들)이란 말이 나왔을까. 달린다. ‘징게 맹갱 외애밋들’을 달린다.
풍요의 황금 들녘 따라 만나는 오만 가지 풍경
김제 만경들녘 따라서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내용이다. 또한 우리나라 땅의 절반 이상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외국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달리는 일은 우리에게는 무리다. 산이 가로막고 바다가 가로막는다. 바다에 나가 수평선을 만날 수는 있지만 지평선을 보는 일이 쉽지 않다. 허나 이곳 김제 만경 들녘에서는 툭 트인 지평선을 만날 수 있다.

지금 김제들녘은 끝 간 데 없이 노란 물결이 인다. 논의 벼들은 알알이 영글어 고개를 숙이고 나무 위의 감도 들녘의 빛깔로 익어간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온통 누렇고 붉은 빛의 김제 들녘은 풍요롭다.

■ 광활한 지평선 만나러 ‘광활면’으로
<아줌마, 얼마나 더 가야 지평선이 나와요 / 여그가 바로 지평선이어라우 / 여그는 천지사방이 다 지평선이어라우 / 바람 들옹게 되창문이나 좀 닫으쇼잉 / 그렇구나 이 세상에는 천지사방 / 지평선 아닌 데가 없구나 /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제 어디서나 / 눈 감아도 떠도 다 가물거리겠구나> - 정양 ‘지평선’ -

지평선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광활면 쪽에서다. 이름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지평선’이 펼쳐진다. 김제 성덕면 남포리에서 시작해 광활면 창제리까지 이어지는 논둑길만해도 15㎞에 이른다. 사방 어디에 눈을 둬도 눈을 가리는 풍경은 없다. 높은 빌딩은 당연히 없고 흔하디 흔한 산마저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전봇대만 없다면 말이다.

지평선을 더 잘 보고 싶다면 진봉면 심포리의 진봉산으로 가자. 말이 산이지 해발 72m에 불과해 언덕이라 여기면 된다. 솔숲을 따라 올라가는 낮은 정상에 3층짜리 팔각정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면 들녘의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에 눈을 둬도 드넓다. 시원하다.

엄마는 가수 윤도현의 목소리를 ‘콜라 같다’ 했다. 헌데 김제 만경들녘도 볼수록 콜라 같다. 시원하게 뻥 뚫린다.
■ 지는 해가 유독 아름다운 망해사
진봉산이 바다와 접한 벼랑 위에는 서해바다에 가장 인접해 있다는 망해사가 있다. 절 자체보다 서해로 넘어가는 낙조 감상에는 제격이다.

만경강 끝자락에 자리한 심포항은 고요하다. 곳곳에 닻을 내린 자그마한 어선만 눈에 띌 뿐이다. 금강·동진강과 함께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강은 전북 북부를 적시고 서해로 흘러든다.

심포항에서 만경진봉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지평선로에 들어선다. 여기서 1㎞쯤 직진한 후 좌회전하면 망해사다. 이 길은 오르막이다. 장딴지가 뻑뻑해질 즈음 주차장이 나오고 나무 사이사이로 만경강의 여유로운 풍광이 시야에 들어온다.

망해사는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기에 딱 좋은 곳. 잠시 땀을 식힌 후 702번 국도를 따라 가실삼거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코스모스길이 장장 100리에 걸쳐 펼쳐진다.

가실삼거리 인근에는 우리네 전통서당의 맥을 잇고 있는 학성강당이 있다. 매년 학당스테이를 열고 있는 이곳은 지금도 사서삼경과 천자문을 배우기 위해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실삼거리에서 만경도서관 사거리 쪽으로 좌회전하면 만경읍이다. 읍내에 자리한 만경능제저수지에는 지평선마린리조트가 있어 수상스키와 플라이 피시, 바나나보트 등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 가을 코스모스 ‘한들한들’
김제를 찾아 코스모스 꽃길을 못보고 온다면 나중에 후회가 클 것이다. 진봉면과 광활면을 잇는 29번 국도와 702·711번 지방도 36㎞ 구간의 도로 양옆으로 분홍색·흰색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느긋하게 달릴 수 있는 여유로운 드라이브길이라 맘껏 코스모스를 감상해도 된다. 차로 달려도 좋지만 차를 두고 걸어보자. 이 가을이 얼마나 좋은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황금들녘에는 추수가 한창인 곳도 보인다. 올해 농사의 결실인 가을걷이 앞에서 농부들은 또 한 양동이의 땀을 흘린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벽골제
<일렁이는구나 오로지 그리움으로만 일렁이는구나 // 만경창파 일엽편주 떠돌던 바다는 어디로 갔느냐 // 칠만칠천사백육십보를 돌아 구천팔백사십결로 // 세상의 모든 들판이란 들판은 다 모여들고 //세상의 모든 바람 황금물결로 넘실거려도 // 아직 그리운 고향은 아니로다 // 가야겠느냐 // 기어이 물둑마저 넘어 // 뼛속까지 사무치는 사무쳐 출렁이는 // 그 바다로 가야겠느냐 // 그러나 그대 // 죽음 아니고는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 벽골제(碧骨堤)에서 -

가을 들판 구경을 실컷 했다면 김제의 구석구석을 다녀보자. 먼저 부량면에 있는, 국내 가장 오래된 저수지였던 ‘벽골제’에 간다. 벽골제는 옛 조상들의 농경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

백제 비류왕 27년(330년)에 완공돼 3000만평의 대지에 물을 댔다고 하니 그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지금은 저수지가 모두 흙으로 메워졌고 장생거·장경거라는 두 수문과 방죽만이 남아있다. 대신 그 주변이 가족테마공원으로 꾸며졌다.

3.3㎞에 이르는 방죽은 가을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에 좋다. 공원 내에는 농경문화의 기원·역사, 벽골제의 축조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수리민속유물전시관, 우도농악관 등이 있다.

■ 소설 아리랑의 무대 ‘아리랑 문학관’
‘징게 맹갱 외에밋들(김제·만경 너른 들)’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주무대. 김제평야가 곡창지대인 탓에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을 기념하는 ‘아리랑문학관’이 벽골제 인근에 지난 2002년 세워졌다. 작가의 작품 취재수첩·자료노트 및 육필 원고, 개인 소장품 등 350여점이 전시실을 알차게 채운다. 죽산면에는 소설의 등장인물이자 실존인물인 하시모토의 관리사무실이 그대로 있다.
‘아리랑’에 실명으로도 등장하는 하시모토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대농장주의 한명이다. 1920년대 기록에 따르면 1000정보(300만평)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일본인 대농장주가 한국 전체에 34명, 전북에만 9명에 달했다.

당시 일본의 ,000정보 이상 대농장주는 본토에 9명, 북해도 13명에 불과했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은 김제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 죽산지소 사무실로 사용하다 등록문화재 61호로 지정된 이후엔 비어 있다. 크림색 외관에 붉은 지붕 건물. 군데군데 부서진 건물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 견훤을 유폐한 금산사
모악산 중턱에 자리한 천년고찰 금산사에서는 가을 산사의 맛을 느껴본다. 경내에는 국보와 보물만 11점이 있다. 특히 미륵전(국보 제62호)이 독특하다.

내 유일의 3층 목조 법당인데, 내부는 통층으로 돼 있다. 법당 안의 삼존불은 높이가 11.8m에 이를 만큼 웅장하다. 견훤의 아들 신검이 권력에 눈이 멀어 견훤을 유폐한 곳이기도 하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