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땅끝 맴섬 ‘일출’

땅끝 맴섬 ‘일출’

by 운영자 2010.10.22

1년에 단 2번 희소한 것은 귀하다.
다이아몬드가 그 예다.

날마다 어디서나 뜨는 해. 하지만 해남 맴섬에서는 해가 귀하다. 일년에 딱 2번, 맴섬의 갈라진 틈 사이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를 맞춰가지 않으면 못 본다. 아무 때나 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해는 22일부터 27일 사이에 이 귀한 해를 만날 수 있다.

‘맴섬 일출’은 땅끝마을 갈두항의 선착장 앞 작은 바위섬인 ‘맴섬’의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해가 뜨는 신기한 광경으로, 땅끝 일출의 백미로 꼽힌다.

‘맴섬 일출’은 일년에 2번만 볼 수 있는데 2월과 10월에만 볼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내년 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서두르자, 늦으면 귀한 해를 못 본다.

귀한 일출 보고 달고 구수한 황토고구마 먹고
맴섬으로 땅끝전망대로 달마산으로, 해남 한 바퀴
■ 땅 끝 해 오르고 삼치 물오르다
1년에 두 차례 볼 수 있는 땅 끝 맴섬 일출과 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가을의 별미 삼치회 등 눈과 입이 동시에 즐거운 가을잔치에 땅 끝 마을이 들썩이고 있다.

땅끝오름데이 축제위원회는 22일부터 24일까지 해남 땅 끝마을에서 ‘땅 끝 해오르고 삼치 물오르다’란 주제로 ‘2010 땅끝오름데이’를 개최한다.

‘맴섬 일출’은 땅끝마을 갈두항의 선착장 앞 작은 바위섬인 ‘맴섬’의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해가 뜨는 신기한 광경. 희귀한 이 광경은 땅끝 일출의 백미로 꼽힌다.

특히 매일 달라지는 바다에서의 일출 시기 중 1년에 단 두 차례 2월 말과 10월 말에만 맴섬 가운데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전국의 관광객들과 사진 동호인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맴섬 일출과 제철을 맞은 삼치를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도 펼쳐진다. 신선한 삼치회를 비롯해 삼치찜 등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삼치요리를 땅끝 마을 음식점의 요리 고수들이 직접 나서 시연하고 관광객들과 함께 나누게 된다.

또 삼치배의 조업시간에 맞춰 관광객들에게 삼치를 현장 판매하는 난장과 다채로운 체험행사가 계속된다. 성질이 급한 삼치의 특성상 삼치회는 바다가 가까운 서남해안 일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가을철 별미로, 추자도 인근에서 잡아오는 땅끝 삼치는 전통방식인 채낚기로 잡아 그물로 잡는 다른 지역보다 신선도가 월등하다.

먹는 방법도 독특해 살이 연한 삼치는 껍질을 제거한 후 살짝 얼리거나 그대로 썰어 간장과 파, 고추, 참기름 등으로 만든 양념장을 찍어 생김에 싸서 먹는다.

해남에서는 따뜻한 쌀밥과 부드러운 삼치회, 아삭한 묵은지를 더해 삼치삼합이라 부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 땅 끝,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
한반도 최남단은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나라 남쪽 기점을 이곳으로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이천리를 잡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사자봉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보면 진도를 비롯해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조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갈두리 선착장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노화도와 보길도를 오가는 연락선의 모습을 보며 가슴에 묻어 둔 것들을 훌훌 털어 버린다.

시인 김지하는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중략) 내 마음속에 차츰 크게 열리어/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린다”며 내면의 아쉬움과 시원함을 읊었다.

땅끝 전망대에서 땅끝탑까지는 산책로가 나 있다. 내리막이지만 계단과 나무 데크가 이어져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땅끝탑을 구경하고 거슬러 오르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최근 이곳에서 송호 오토캠핑장으로의 탐방로가 ‘걷기여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탐방로에는 팽나무, 후박나무, 후피향나무, 사철나무 등이 우거져 있다. 고개를 돌리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 빛을 고스란히 담은 남해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그 멋스러움에 몇 발짝 옮기지도 못하고 자꾸 걸음이 멈춰진다.

오르고 내리고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길을 한참 걷다보면 중리라는 마을에 닿는다. 드라마 <허준>을 촬영한 곳으로 이곳까지 정비된 산책로는 깔끔하며 고즈넉하니 걷기여행으로 최고의 진가를 발휘한다. 중리 마을과 건너편 대섬 사이에 물 갈림 현상이 하루에 두 번 일어난다.

■ 붉은 황토밭서 자라는 농작물 ‘맛 좋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해남을 “서울에서 먼 곳에 있으며 겨울에 초목이 마르지 않고 벌레가 움츠리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고 추워봤자 영하 2, 3도가 보통이다.

지금은 강원도 고랭지채소에 밀려 예전만큼 그 명성을 얻지 못하지만 해남은 국내 최대의 배추 산지이다. 겨우내 해풍을 견디고 얼었다 녹았다 하며 튼실하게 자란 배추는 첫맛부터 끝맛까지 달다.

낮은 구릉에는 누런 황토가 아닌 시뻘건 황토가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황토 밑에는 이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지금은 황토고구마의 철. 해남 붉은 들녘에는 아낙들이 허리를 숙여 고구마를 캐고 있다.

■ 뒤는 달마산, 앞에는 남해를 품은 미황사
미황사는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489m) 중턱에 있다. 달마산은 백두대간의 맥이 마지막으로 솟아올라 이루어진 두륜산의 끝자락에 이어진 산으로 이곳의 지맥이 바다를 통해 한라산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칭송될 만큼 산세가 수려해 기암괴봉이 등줄기를 따라 줄지어 솟아올라 변화하는 풍광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미황사는 달마산의 돌병풍을 뒤에 둘러치고, 해남과 진도 일원의 다도해를 앞마당 삼아 뛰어난 풍광을 지닌 고찰이다.

절에서 내려다보면 다도해의 많은 섬이 짐승의 새끼처럼 서로 머리를 맞대고 두런거리는 모양새다. 바다와 맞닿은 들녘은 시간이 갈수록 불그스름한 갈색에서 석양에 달구어진 장엄한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보물 제947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당우들이 화려한 단청 옷 대신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훨씬 더 절을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주춧돌로 그 위에 물고기, 게 모양 등이 양각되어 있으며 조각된 동물 문형은 토속적인 민간신앙이 불교와 만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남도 제일의 템플스테이 명소로 각광받고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웅전에다 세삼당(洗心堂)과 요사채, 그리고 초라한 공양간 한 집을 거느린 단출한 절이었다.

달마산 암봉을 오르내리다 보면 아슬아슬한 벼랑 사이에 도솔암이 위태롭게 서 있다.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수행 정진을 하던 곳으로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폐사됐던 것을 2002년 여러 스님과 불자의 도움으로 다시 지었다. 이곳에서는 멀리 화첩을 펼친 듯한 남해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 ‘이충무공의 고함이 생생’ 우수영 명량대첩지
울돌목은 진도와 해남 화원반도 사이의 수로로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의 격전지이다. 좁은 해협으로 매우 빠른 급류가 흐르고 조류가 갑자기 변하기도 한다.

가장 좁은 부분은 폭이 330m, 수심 19m 미만으로 격류가 부딪혀 우레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명량 또는 울돌목이라 한다.

이런 지형을 이용해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격파해 명랑대첩을 거뒀다. 또한 수적인 열세를 적군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손을 잡고 돌며 아군이 많아 보이게 했다는 강강수월래의 기원이 있는 곳이다.

충무사에 있는 명량대첩비는 높이 2.67m, 폭 1.14m나 되는 거대한 비석으로 1688년에 이충무공의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우수영에 건립했다.

일제는 임진왜란 때 자기네들이 크게 패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1942년 명량대첩비를 강제로 뜯어다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숨겼다. 해방 후 우수영 유지들이 충무공의 유적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갖은 난관 끝에 찾아내 다시 세웠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