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하동 화개 지리산 자락 ‘산골 단풍’

하동 화개 지리산 자락 ‘산골 단풍’

by 운영자 2010.11.26

가을 끄트머리 잡으러
찬바람에 ‘아, 벌써 겨울이구나’ 싶다가도 나뭇가지 끝 아슬아슬 달려있는 단풍들을 보며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어’ 하고 안심한다. 아직은 겨울이고 싶지는 않으니, 마지막 단풍 한 잎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것이다. 더구나 올해는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단풍 구경도 못 했다. 이제 숨 돌리고 단풍 구경 좀 하자 했더니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에 단풍잎들은 제대로 물들기 전에 녹아버렸고, 얼었던 잎들은 그대로 주글주글 말라 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겨울을 맞을 수는 없다. 아직 새치름, 수줍게, 그러나 꿋꿋하게 나무 끝에 대롱대롱 달려 가을 지키고 있는 단풍 만나러 가자.

산골에서 조용히 몸을 물들이는 가을 단풍 만나러 하동 화개 지리산 자락으로 간다. 번잡하지 않아 호젓하게 가을의 절정을 만난다.


사람 손 안 타 원시 그 모습 그대로
하동 화개 의신마을 단풍 물길 따라 ‘화르륵’
우리나라 모든 난의 마지막 전적지가 바로 이곳
참 오랜만에 지리산을 찾았다. 나이가 들고 몸도 나이만큼 불면서 산을 ‘질색팔색’ 싫어했다. 특히 지리산은 대학 때 간 것이 마지막이니 10년도 훌쩍 지난 셈이다.

가는 가을 잡으러, 마지막 단풍 만나러 지리산을 찾은 길, 두근거리기까지 하다. 하동 화개 의신마을은 하동 가운데서도 ‘골짜기’에 속한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아직 사람들의 손이 덜 탔다.

지리산을 낀 마을 가운데서도 단풍이 늦게 지는 이곳은 단풍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가 많아 때깔 좋은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단풍의 절정기이지만 등산로와 계곡을 따라가는 길 곳곳에 아직도 단풍잎들이 가지마다 웅얼웅얼 붙어 있다.

지리산(1915m)은 단일 면적으로는 남한 제일을 자랑한다. 3개의 도와 5개의 시·군에 걸친 둘레가 자그마치 320㎞에 달해 그 규모가 광대하다. 어디 그뿐인가. 산이 높아 골이 깊은 만큼 산자락 자락에 숨겨진 비경 또한 적지 않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은 지리산 아래 첫 동네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산 좀 탄다는 이들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때 묻지 않은 계곡과 나무,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그야말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색색의 단풍을 둘러두고 걸으면 가을이 몸 속 깊이 들어오는 것만 같다.

하동 의신마을은 청학동에 속해 있는데 이곳에서 시작하는 지리산 등반로만 해도 무려 20여개 달한다. 마을로 향하는 1023번 지방도로는 봄이면 벚나무가 꽃 터널을 만들고 가을이면 오색단풍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이곳은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가슴 아픈 역사도 숨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난의 마지막 전적지가 바로 이곳이었다는 사실, 동학농민운동과 한일합방을 반대했던 의병, 6·25전쟁, 빨치산 등이 모두 이곳 산자락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만큼 외지고 깊이 자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친 지리산 연봉은 삼도봉, 명선봉, 토끼봉, 형제봉, 칠선봉, 연하봉, 영신봉, 삿갓봉 등. 모두 1500m가 넘는 고봉들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게 마련. 대성계곡, 선유동계곡, 의신계곡, 빗점골 등 내로라하는 계곡이 그 산자락에 안겨 있다.

마을 입구에서 출발하는 대성계곡은 대성마을과 작은세개골, 큰세개골, 음양수를 거쳐 세석평전으로 이어진다. 너른 계곡을 끼고 가는 이 길은 편도 4시간 코스지만 수려한 풍광을 가슴에 담아가며 걷기에 무리가 없다.
이곳 계곡 중에서도 풍광이 으뜸인 곳은 단연 의신계곡이 꼽힌다. 어머니처럼 품을 넉넉하게 연 계곡은 삼정리까지 4㎞ 거리. 계곡 길을 따라가면 왕복 8시간 걸린다. 계곡 끝자락에서 빗점골과 벽소령으로 나누어지는 삼정리까지는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나 있다.

하지만 계곡 곳곳에 들어앉은 지리산의 원시비경을 만끽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임도를 따라가다 왼편 개인 소유의 암자를 거쳐 용소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좋다.

용소는 의신계곡 비경의 최대 포인트. 크고 작은 폭포가 거대한 기암을 이리저리 굽이치는 모양새가 장관이다. 골 깊은 산자락에 이만한 바위가 떼로 몰려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마다 생긴 모습도 기묘하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쿵쿵소다. 제법 규모를 갖춘 폭포수가 소를 향해 내리꽂는다. 그 모양새가 장쾌하다. 폭포수를 받는 소는 물빛이 녹색을 띠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임도를 따라가면 1시간 정도 걸리는 삼정마을은 빨치산 남부군총사령관 이현상의 아지트가 있던 빗점골(산태골)과 벽소령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터를 잡고 있다. 마을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협곡과 산자락을 수놓은 오색단풍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좌측 빗점골 방향으로 1㎞ 정도 숲길을 파고들면 1953년 9월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배나무평전이 나온다.

빗점골은 그 옛날 ‘참빗을 만드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여기서 우측으로 400m 떨어진 지점에는 이현상의 아지트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의신마을에서 벽소령으로 난 길은 과거 남에서 북으로 가는 지름길 중 하나였고 6·25전쟁 때는 작전도로로 사용됐다고 한다.

삼정마을에서 벽소령까지는 2시간 거리. 빗점골은 입산이 통제돼 하동군청이나 국립공원 지리산관리소의 승인을 얻거나 마을 이장에게 요청하면 출입할 수 있다.

의신마을에서 삼정리, 빗점골로 이어지는 코스는 호젓한 계곡트레킹과 더불어 산악자전거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단, 방사한 곰이 아닌 자연 반달곰을 주의할 것.

대성리 일대는 예부터 사찰이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사찰이 신라시대 의신사(依神寺)다. 의신사는 서산대사가 15세 때 초시에 낙방하고 동문과 두류산(지리산)을 유람하다 화개동천을 따라 이곳에 오니 당시 주지는 법해스님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서산대사는 의신사에서 숭인장노를 만나 법문을 듣고 불가에 입문했다. 현재 마을 뒤편 절터에는 법해선사의 부도가 남아 있다.

▲ 찾아가는 길 : 남해고속도로에서 하동으로 향한다. 하동에서는 화개면에서 1023 지방도로를 따라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가면 의신마을이 나온다.
▲ 주변 볼거리 : 칠불사, 쌍계사, 불일폭포, 청학동, 삼성궁, 최참판댁, 고소성, 하동송림
▲ 숙박 : 의신마을에는 등산객을 대상으로 민박을 치는 집이 여럿 있고 삼정마을에서도 한 집에서 숙박을 친다.
▲ 문의 :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