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무등산 ‘눈꽃’ 화알짝

무등산 ‘눈꽃’ 화알짝

by 운영자 2011.01.07

“아, 좋다!”

엄청난 풍광 앞에서는 ‘아!’ 감탄사 말고는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눈꽃 산행이 그렇다. 소소하게 낮은 길을 걸을 때는 잘 모르다가 조금만 높이 올라 위를 보면 그 순간, 잠시, 숨이 멎는다. ‘아!’ 또는 ‘와!’ 하는 탄성이 전부다.

새해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산에 올랐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새하얗게 내려 앉아, 온 산을 이불처럼 덮어씌운 눈 때문이다.

‘아, 좋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무등산에 오른 소감을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눈 덮인 겨울의 무등산, 정말, ‘아, 조오타!’
하늘과 맞닿은 바위 기둥
눈 쌓인 무등산 서석대ㆍ입석대 주상절리 ‘장관’


새해 아침 간단히 밥을 챙겨 먹고 함께 사는 ‘짝꿍’과 가방을 쌌다. 보온병에 커피를 채우고, 비닐봉지에는 짝수로 귤을 담았다.

생수병에 물도 챙기고 냉동실의 초코바도 2개, 쥐포도 바삭하게 구워 2개. 장갑도 꺼내고 목에 두를 목수건도 꺼내 두르고, 마스크도 챙긴다. 아이젠은 가방 옆에 따로 달았다. 옷도 든든히 입었고 먹을 것도 챙겼으니 이제 출발.

겨울, 무등산으로 향한다. 광주에 눈이 많이 왔다는 소식에, 당장 달려가고 싶은 것을 참고 참아 새해 첫날을 길일(吉日)로 잡고 나섰다.

순천에는 이미 녹아 없어진 눈이 곡성쯤에 들어서자 도로가에도 소복하게 쌓여 있다. 눈이 많이 내리긴 내린 모양이다. 광주에 접어들자 별천지가 아니라 눈천지다. 차들이 다니는 중앙의 도로만 겨우 녹았을 뿐 도로에서 밀어놓은 눈이 도로가에는 산처럼 쌓였다.

골목골목은 빙판이 된 곳이 태반. 제대로 된 눈꽃 산행을 하겠다 싶어 긴장이 돼 저절로 손이 쥐어진다.

무등산 서석대ㆍ입석대 주상절리 ‘감탄’
광주 무등산(1187m) 앞에 섰다.
무등산 오르는 길은 15곳 정도. 거기에 예실 탐방로가 3곳 더 챙겨 총 18곳에서 무등산을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로 오르는 것은 2개 방향에서 시작된다.

도심에서 4㎞ 거리인 동구 운림동 증심사 주차장과 무등산 서북쪽 북구 금곡동 원효사 계곡에서 각각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 해발 500m 지점에 있는 원효사 주차장까지는 버스로 20분 거리다. 그 가운데서 증심사 쪽 길이 가장 인기 있는 코스다.

오늘 눈꽃 산행의 코스는 증심교 3거리에서 바람재, 너덜겅약수터, 토끼등, 중머리재-용추 삼거리-장불재-입석대를 거쳐 서석대까지 오르는 길을 택했다. 오랜만의 산행이지만 도전해보고 싶다. 이 코스는 2~3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미끄러운 눈길이라 그것을 감안하면 넉넉잡아 4시간이면 된다.
코스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제법 녹았다고는 하지만 눈길과 눈이 얼어 길을 낸 빙판이라 조심해야 한다. 낙엽과 빙판이 합쳐지니 스케이트장이 따로 없다.

별로 힘들지 않다 생각했는데 얼굴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에서도 촉촉하게 땀이 배어나온다. 미끄럽다는 생각에 몸에 너무 힘을 준 탓이다. 오르는 중간중간 물소리가 들린다.

얼음을 뚫고 졸졸졸 조심스럽게 흐르는 산 속 시냇물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물 소리 들으며 가방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을 먹고 귤 한 개를 해치운 뒤 다시 산을 오른다.

무등산은 산을 ‘날다람쥐’처럼 오르내리는 이들이라면 조금 심심할 수도 있겠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의 눈꽃 산행에 비하면 그 재미가 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등산 산행이 다른 산들과 다른 점이 분명 있다.

‘무등산도 별다를 것 없네’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서석대를 보고서는 그 생각이 재빨리, 저 멀리, 쑥, 들어갈 것이다.
눈 덮인 서석대는 가히 장관이다. 긴 나무를 내리꽂아놓은 듯한 서석대 주상절리는 그 장엄함에 숨이 멎을 정도. 그 아름다운 풍광에 달력 사진에도 곧잘 나오는 명소.

서석대는 높이 10~16미터쯤, 길이는 수백 미터에 달하는 기암지대다. 주상절리란 용암이 식으면서 바위가 다각형 모양으로 형성된 현무암지질대를 뜻하는데, 중생대 백악기인 1억만년 전부터 6000만년 전 사이에 생겨났다.

대개 6각형이 많지만 무등산 주상절리는 5각형부터 8각형까지 다양하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된 주상절리대의 규모가 10만7800㎡나 된다. 뭍에 있는 주상절리로는 가장 크다고 전한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정상 부근에 마치 호위병처럼 거대하게 서있으니 그 위세에 기가 죽는다. 천연기념물인 이들 돌기둥을 보호하기 위해 전망대가 설치됐다. 예전처럼 직접 만져보거나, 올라탈 수 없게 됐다.

서석대는 무등산 정상이 아니다. 정상과 약간 떨어진 능선상의 봉우리지만 정상처럼 여기는 곳이다. 정상은 군사지역으로 오를 수 없다.

주상절리도 장쾌하지만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아름답다. 산줄기가 도시를 품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멀리 지리산 능선부터 달려온 산줄기들이 사방팔방으로 도시를 에워싸고 있다.

서석대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입석대다. 2008년 말 개방되면 이 둘 사이에 나무판을 깐 산책로를 만들었다. 봄에는 토끼등을 거쳐 동화사터(800m)~중봉(915m)~장불재(900m)에 펼쳐진 철쭉 군락이 장관이고, 여름엔 원효·용추계곡 등의 물소리가 쾅쾅 산을 울린다.

중봉~장불재~입석대(1017m)에 펼쳐진 은빛 억새밭이 볼 만하다. 멀리 누렇게 익어가는 나주평야도 훤하게 들어온다. 요맘때는 산 중턱부터 피는 ‘눈꽃’이 매력적이다.

참나무·소나무·낙엽송, 신갈나무 등의 군락이 집중 보호되면서 산토끼, 산새, 고슴도치, 다람쥐 등이 많고, 곤충류만도 236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 역사ㆍ문화적으로 풍성한 무등산
무등산은 역사적으로 항쟁의 거점이었다.
고려 말 왜구를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정지 장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김덕령 장군, 청나라에 맞서 싸운 전상의 장군 사당도 있다. 의병장 고경명도 무등산 기슭에서 봉기했다. 구한말엔 고광순 장군이 활약했다.

무등산은 문학과 예술의 텃밭이기도 했다. 증심사 앞에는 의재 허백련을 기린 미술관이 있다. 허백련은 남화의 대가로 무등산 기슭에서 차밭을 가꾸며 루이제 린저, 게오르규 등과 교류했다고 한다.

그가 거기서 길러 만든 차이름이 춘설차다. 그가 말년에 머물렀던 집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의재 미술관은 새 작품 전시준비 때문에 휴관 중이었다. 행정구역은 광주와 다르지만 가사 문학이 영그는 무대였던 담양 정자촌도 무등산 자락이라고 보면 된다.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관동별곡’ 등을, 면앙정 송순도 ‘면앙정가’ 등을 이곳에서 지었다. 국문학사에 높이 평가되고 있는 대문호들의 가사문학 16편이 바로 무등산 자락에서 나왔다. 이들의 활동 공간이 된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독수정’ ‘소쇄원’ ‘환벽당’ 등 정자가 풍광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여행 길잡이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톨게이트로 빠져나오는 것이 빠르다. 나오자마자 직진하면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고가도로를 올라서서 1분쯤 달리다 다시 오른쪽 무등산 이정표를 보고 빠진다. 무등산까지는 이정표가 잘돼 있다.

주차장 이용료는 있지만 입장료는 없다. 배고프다면 원효사 쪽 지산유원지 일대에 보리밥집이 많다. 반찬이 적게는 10여 가지에서 많게는 20여 가지 정도 된다. 5000~6000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면 오리탕도 좋겠다. 광주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현대백화점 옆 유동 ‘오리탕 골목’이다. 오리탕집 20여개가 몰려있다. 오리탕은 들깨를 많이 넣어 국물이 걸쭉한 편이다. 여기에 미나리를 넣어 함께 끓여 먹는다. 미나리와 오리, 들깨가 잘 어우러져 맛있다.

[순천광양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