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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마량 매생이 채취

강진 마량 매생이 채취

by 운영자 2011.01.21

언 마음에도 도는 ‘푸른’ 기운


올해 계획 세우셨나요?
저는 올해 딱 한 가지 계획만 세웠답니다. 10여년간 계속된 ‘다이어트’ 계획은 이제 포기 단계에 이르렀기에 내던지고, 대신 진짜 실행할 수 있는 계획 하나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한 달에 2권 책 읽기’! 그런데 누군가 제 결심을 눈치챘는지 안도현 시인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선물하더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시인 터라 마음이 새롭더군요. 특히 음식을 소재로 한 책의 2부는 더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수제비, 무말랭이, 물외냉국, 닭개장, 갱죽, 안동식혜, 진흙메기, 건진국수, 무밥, 민어회, 전어속젓…. 알기도 모르기도 한 음식에 대한 작가의 추억을 듣자니 저의 추억도 몇 가지 떠오릅니다.

특히 제철 맞은 매생이국은 친정엄마를 생각나게 합니다. 강진 마량면의 숙마마을은 지금 매생이 채취가 한창입니다. 찬바람 속에서 건진 푸른 기운, 매생이. 언 마음에도 푸른 기운이 돕니다.

초록빛 바다는 매생이 두고 하는 말이던가
강진 마량 숙마마을 ‘매생이’
올 겨울 저는 감기몸살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1월부터 시작된 감기가 낫고 재발하기를 벌써 몇 개월째입니다. 정말 심했을 때는 누군가 내 살을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정도였고, 보다 못한 친정엄마가 딸사위 병구완한다고 광주에서 내려오시기도 했습니다.

몸이 찐득찐득해지도록 땀을 흘리며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하얀 쌀밥 한 그릇과 초록의 매생이국 한 그릇, 빠알갛게 고운 김치 한 보시기를 내주십니다.

“하도 뭣도 안 넘어간다고 안 먹응께 매생이로 국 한번 끓여봤다. 훌훌 마시면 됭께 얼렁 먹어. 감기는 잘 먹어야 나서야. 국물도 시원허니 좋다.”

통 안 먹고, 못 먹었더니 엄마가 극단의 조치로 ‘훌훌’ 잘 넘어가는 매생이국을 끓여내신 겁니다. 뜨거우니까 좀 식혔다 먹을게, 해도 입천장 디어도 뜨거울 때 먹어야 낫는다며 굳이굳이 떠주시길래 못 이기는 척 먹었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다음날 아침 몸이 가뿐해집니다.

“엄마, 진짜 몸 괜찮아졌어. 매생이국 덕분인가 봐. 김서방도 괜찮다는데?”
출근해 전화를 드렸더니 “고봐라, 엄마 말 들어서 어디 안 되는 거 있디?” 하십니다.

<저 남도의 해안에서 왔다는 / 맑은 국물도 아니고 건더기도 아닌 푸른 것, 다만 푸르기만 한 것 / 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들을 낳을 때 터뜨린 양수라고 해야 하나? 숙취의 입술에 닿는 이 끈적이는 서러움의 정체를 바다의 키스라고 해야 하나? 뜨거운 울음이라고 해야 하나? / 입에서 오장육부까지 이어지는 푸른 물줄기의 폭포여 / 아무리 생각해도 아, 나는 사랑의 수심을 몰랐어라> - 안도현 시 ‘매생이국’ -

시인 안도현에게 매생이국은 어머니의 양수, 사랑하는 이의 입맞춤이지만 제게 매생이국은 질긴 감기와의 사투이고 언제나 옳은 엄마의 지혜고, 자식 위하는 엄마의 사랑입니다. 매생이에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제철 맞은 매생이가 강진 마량 숙마마을 청정 갯벌에 한가득입니다. ‘초록빛 바다’라는 말이 한겨울 바다 위에 동동 뜬 매생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는 뜻의 순우리말 매생이는 김이나 파래, 감태와는 ‘사촌’쯤 되는 해초지요. 바다에는 매생이 채취가 한창입니다. 배(船)에 배(腹)를 대고 한껏 허리를 숙여 매생이를 ‘주르르’ 훑어냅니다. 바람 끝이 매운 해풍에 맛과 영양을 키우는 매생이는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채취 시기.

“추와야 맛이 들어, 매생이는. 매생이는 시원한 맛이 나거든? 그것이 바닷바람 때문인가도 몰라.”
매생이를 채취하던 한 주민이 매생이 얘기를 먼저 건넵니다. 바쁜 손놀림에도 입에서는 매생이 자랑이 노랫가락처럼 유유하게 흘러나옵니다.

매생이는 전남 지역에서 주로 납니다. 강진을 비롯해 완도, 고흥, 장흥 등이 대표적 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80~90%가 이곳에서 나지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워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매생이를 표현했답니다.

“매생이는 기계로는 못 따. 일일이 사람 손으로 다 훑어야제. 긍께 힘이 들어. 근디 공 안 들이고 돈 벌고 밥 먹을 수 있가니? 우리는 발에 다 꽝꽝허니 얼음이 들었다니까.”

찬바람에 손발에 시린 얼음이 박혀도 손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딱 요맘때만 채취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매생이 채취를 위한 준비 작업은 가을걷이가 끝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해마다 10월 말이 되면 바닷가 자갈밭에 대나무발을 깔아 포자를 채묘하고, 한 달쯤 지나 수심 2~3미터의 바다에 대나무 기둥을 박고 매생이발을 묶습니다. 그러면 그 아래 마치 사람머리카락처럼 매생이가 자라납니다.

“매생이? 다 맛나제? 옛날에야 인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묵어. 매생이가 젤로 맛날 때는 젤 첨 딴 거제. 고것은 말도 못하게 부드롸. 국 기래노믄 그냥 막 후르르 넘어간지도 모르게 넘어간당께.”

매생이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은 ‘초사리’(처음 채취한 매생이)라고 합니다. 가늘고 부드럽고 향이 짙어 그것을 최고로 친다는군요. 매생이를 활용한 요리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오늘 저녁 밥상에 매생이 요리도 좋을 듯합니다.

▲ 굴 매생이수제비
재료> 굴 10개, 다시마 5cm, 홍고추 1개, 양파 1/2개, 대파 1/2대, 물 6컵, 소금 약간, 반죽(매생이 150g, 밀가루 2컵, 물 1/2컵)

만들기>
1. 볼에 분량의 반죽 재료를 넣어 고루 섞는다.
2. 양파는 0.5cm 두께로 채썰고 대파는 어슷썰고, 홍고추는 송송 썬다.
3. 냄비에 물과 다시마를 넣고 끓이다가 국물이 우러나면 다시마를 건져낸다.
4. ③에 ①의 반죽을 조금씩 떼어 넣고, 양파와 대파를 넣어 20분간 끓인다.
5. ④에 굴을 넣고 소금으로 간한 뒤 10분간 끓여 내고, ①의 홍고추를 올려 낸다.

▲ 매생이를 곁들인 전복찜
재료> 매생이 50g, 전복 4개, 밤 5개, 물 1컵, 청·홍고추 1개씩, 은행 10개, 소스(간장 3큰술, 설탕·깨소금 2큰술씩, 다진 생강 1작은술, 청주 1/4컵, 참기름 1큰술,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 매생이는 체에 밭쳐 깨끗이 씻고 전복은 내장을 제거한 뒤 앞뒤에 격자로 칼집을 넣는다. 밤은 껍질을 깐 뒤 반으로 썰고 청고추와 홍고추는 얇게 어슷썬다.
2. 볼에 분량의 소스 재료를 넣고 고루 섞는다.
3. 찜기에 전복과 밤을 넣고 ②의 소스를 1/3 정도 넣어 30분간 찐다.
4. 냄비에 ③에 남은 소스와 물, 매생이, 청·홍고추, 은행을 넣어 끓인다.
5. 그릇에 ④를 담고 전복과 밤을 올려 낸다.

[순천광양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