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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카메라박물관’ 멈춘 시간 속으로

나주 ‘카메라박물관’ 멈춘 시간 속으로

by 운영자 2011.02.25

사진, 시간을 붙잡다
1978년.


32살. 남들보다 최소 5년은 늦은 나이에 첫 딸을 본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당 한켠에 앵두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과 일본에 사는 먼 친척의 친척에게 부탁해 카메라 한 대를 사는 것이었다.

4월에 심은 앵두나무 어린 묘목은 딸이 태어난 12월의 어느 날 보니 눈을 소복하게 올릴 수 있을 만큼 잎사귀가 자라 있었고, 그 후 서너 달 뒤 꼬박 1년을 다 채우고서야 일본에서 건너온 카메라가 아버지의 손에 도착했다.

앵두나무는 쑥쑥 자랐고, 3년 그리고 2년 터울을 두고 감나무 2그루도 심겼다. 더불어 미놀타카메라 안의 추억도 쌓여갔고, 앨범 정리는 아버지의 낙이 되었다.

‘목욕하고 나서 기분 좋게 잠이 든 명희. 너무 작아서 혹시라도 꽉 쥐면 다칠까 걱정했던 아이가 이제는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잘 자랐다’

‘국민학교 입학식. 다른 아이 것을 보고는 마음에 들었는지 명찰을 달아달라고 조르기에, 학교 옆 체육복집에서 명찰을 만들어 달아주었다. 그것이 신기하고 좋은지 선생님을 보고 서 있으래도 자꾸만 명찰만 보며 만지작거린다.’

사진 아래는 만년필로 공들여 설명을 적어뒀다.그리고 33년 뒤. 큰딸의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딸의 신혼집 책꽂이에 앨범이 꽂아두었다.

카메라의 역사가 ‘주르르’
나주 동신대 카메라박물관


아버지의 카메라를 기억한다. 국산 카메라가 나온 뒤로 차츰 우리 가족의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디지털카메라를 식구 수만큼 갖게 되면서 완전히 잊힌 듯했지만 아버지의 앨범 속에서, 옷장 안 낡은 상자 안에서 아버지의 카메라는 살아 숨쉰다.

카메라에 무슨 생명이 있을까 싶지만 아버지의 카메라는 우리 가족의 일상에도 특별한 순간에도 늘 함께 했다. 그러니 아버지의 오래된 미놀타카메라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한 순간을 영원히 멈추게 하는 사진. 그 사진을 찍어내는 카메라. 카메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역사를 살피는 것일 게다.
■ 국내 최초의 카메라박물관
지금이야 어디를 가든 카메라 한 대씩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없다. 심지어 휴대폰의 카메라마저 어찌나 선명하고 기능이 좋은지 웬만한 카메라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른 이들의 카메라를 빌려 오거나 그도 아니면 사진사에게 돈을 주고 사진을 찍고는 했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사진 한 장 못 찍는 일도 허다했다.

우리는 점점 더 잘 살게 됐고, 카메라 가격도 내려갔고, 필름을 이용해 찍던 카메라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사용법이 쉬워졌고, 필름 인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 번거로움도 비용도 줄었다.

지금은 배터리만 충전돼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사진을 촬영하고 곧바로 확인이 가능한 시대다. 그렇다면 최초의 카메라는 어떤 모습일까?

나주의 카메라박물관는 카메라의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곳.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문화박물관. 나주의 동신대학교 내 중앙도서관 5층에 자리하고 있다. 대학교 도서관 안에 있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단, 반드시 신분증을 준비할 것. 중앙도서관 1층 안내데스크에 신분증을 맡기고서야 들어갈 수 있다. ‘뭐 대단한 것이라고 신분증을 요구해?’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귀한 카메라를 잘 지키려는 작은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중앙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첫인상은 다소 썰렁하다. 엘리베이터에서 정면으로는 특별전시실. 카메라박물관은 내려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보인다.

전시 공간은 약 162평 정도. 직원 1명이 상주하고 있지만 별다르게 제약을 두지 않고 마음껏 관람하도록 해 마음껏 카메라 구경을 할 수 있어 좋다.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카메라박물관인 이곳은 카메라 1758대를 비롯해 플래시, 삼각대 등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 액세서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동신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객원교수로 재직했던 고 이경모(1926~2001) 교수가 평생을 걸쳐 수집한 1500여대의 카메라를 기증해 조성된 곳이다.

전시장에는 독일의 라이카, 롤레이, 콘탁스 카메라, 일본의 미놀타, 리코, 아사이, 캐논카메라, 미국의 코닥카메라를 중심으로 유럽, 구소련, 북한 등의 카메라를 비교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1900년 초부터 1930년에 걸쳐 제조된 목재 폴딩카메라, 초점렌즈와 촬영렌즈가 분리된 이안 리플렉스 외 일안 리플렉스, 수중ㆍ항공ㆍ스테레오 카메라 등 특수 카메라가 전시되어 카메라의 역사와 종류별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유리관에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정리된 카메라가 한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기에도 많아 놀랍다. 카메라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카메라도 많다.

가장 먼저 왼쪽에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카메라. 1980~90년대에 만들어진 삼성의 카메라들이 전시됐다. ‘맞아, 저런 것도 있었지’ ‘어? 옛날에 우리집에 있었던 거랑 비슷하네?’ 반가운 마음이 든다.

천천히 돌아본다. 카메라 옆 조그만 패널에 카메라 기종과 생산년도, 간략한 설명 등이 첨부돼 있어 알아보기 쉽다.

찬찬히 돌아보면 카메라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1930년대를 즈음해서 1950년대까지는 ‘콘탁스’와 ‘라이카’의 독일제 카메라가 시장을 양분한 상태였다. 때문에 그 시절에는 여러 군데에서 한창 라이카 모방 모델을 내놓던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다 1959년 현재 니콘의 전신인 ‘일본광학’에서 기념비적 모델 ‘니콘 F’를 출시한다. 이후 카메라 시장은 독일에서 일본으로 주인공이 바뀌게 된다.

1930년을 전후한 무렵부턴 이안반사식(Twin Lens Reflex, TLR) 카메라가 큰 흐름을 이루기도 했다. 이안반사식은 사진을 찍는 렌즈와 뷰파인더용 렌즈가 따로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이안반사식 카메라는 1929년 롤라이플렉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수많은 카메라 중 가장 눈에 띄지 않았지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최초의 카메라! 문제! 최초로 카메라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프랑스의 다게르(Daguerre)다.
그가 만든 카메라 ‘다게르타입’이 최초의 카메라다. 동신대 카메라박물관에서는 최초의 카메라를 축소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 1/5로 축소한 것인데, 실제 모형도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나주 동신대학교 내의 카메라박물관은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라도 얼마든지 카메라를 질리도록 구경할 수 있어 좋다. 게다가 관람료도 없다. 눈이 공짜로 호강을 한다.
■ 역사가 된 사진들
카메라박물관 옆에는 사진 전시실이 있다. 이 카메라들을 기증한 고 이경모 교수의 작품이다. 고 이경모 교수는 광양 출신으로 1948년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재직하며 여수순천 사건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2년 뒤에는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 사진대 소속 문관으로 6.25전쟁의 종군 취재를 도맡아 그때의 참상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또한 한국사진협회의 이사직, 동신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사진은 흑백이다. 정말이지 정직하게 그때의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겼다. 논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한가로운 광양 옥곡의 풍경, 한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 위에 똬리를 놓고 그 위에 짐을 얹고 한가로이 서울 봉은사 일주문을 지나는 두 아낙의 모습, 경주 석굴암에서 불경을 읊고 있는 승려와 절을 올리는 불자….

그뿐이 아니다. 우리의 굴곡진 역사도 사진 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1952년 3월 고 이승만 대통령이 광주의 중앙포로수용소를 시찰하고 있는 장면이며, 인민군 부역자와 포로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1951년 담양, 1948년 순천의 한 아낙은 반군과의 교전에서 희생된 남편을 찾아 헤매는 애처로운 모습이 찍혔다.

이 사진들은 그저 한 장의 추억이 아니라 역사가 됐다.나주 카메라박물관은 작지만 그 힘이 참 세다. 일요일은 휴관이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

나주카메라박물관 | 전남 나주시 대호동 252 ☎ 061)330 - 8542, 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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