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왕인박사유적지 앞 60리 벚꽃길
영암 왕인박사유적지 앞 60리 벚꽃길
by 운영자 2011.04.08
가슴 깊숙이, 한달음에 달려오는 봄꽃 내음
누가 봄을 여자들의 계절이라 했는가. 봄은 꽃들의 계절이다. 나무들은 저마다 아롱아롱 색색의 꽃들을 달았다. 여자들의 옷차림이 화사해졌다 입을 모으지만 꽃들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꽃들의 생명은 너무나도 짧다. 다음으로 미루다가 자칫 올 봄 꽃을 못 보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수시로 창밖으로 내다보고 꽃이 어느 만큼 왔는지 살펴볼 일이다. 남녘 어디든 솜사탕처럼 벚꽃이 피었다. 더불어 봄도 활짝 피었다.
해남과 목포를 잇는 영암에도 봄이 찾아왔다. 영암읍내에서 왕인박사유적지로 이어진 길가에 벚꽃길이 벚꽃터널로 변했다.
누가 봄을 여자들의 계절이라 했는가. 봄은 꽃들의 계절이다. 나무들은 저마다 아롱아롱 색색의 꽃들을 달았다. 여자들의 옷차림이 화사해졌다 입을 모으지만 꽃들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꽃들의 생명은 너무나도 짧다. 다음으로 미루다가 자칫 올 봄 꽃을 못 보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수시로 창밖으로 내다보고 꽃이 어느 만큼 왔는지 살펴볼 일이다. 남녘 어디든 솜사탕처럼 벚꽃이 피었다. 더불어 봄도 활짝 피었다.
해남과 목포를 잇는 영암에도 봄이 찾아왔다. 영암읍내에서 왕인박사유적지로 이어진 길가에 벚꽃길이 벚꽃터널로 변했다.
벚꽃 길 따라 흐드러지는 봄, 봄, 봄
영암 ‘꽃 피는’ 길
시인 엘리엇은 일찍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아마도 사방에서 팡팡 터지는 꽃 때문이었을 게다. 이 아름다운 꽃을 지척에 두고도 일에 치여 꼼짝 못 하고 있으니 4월은 잔인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평일은 더 잔인하다. 출근길, 점심시간 잠깐 창밖을 보며 봄꽃을 봐야 하니, 애가 타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휴일이 있다는 것은, 이 봄, 가장 감사해야 할 몇 가지 중 하나일 게다. 꽃이 만개하는 기간은 고작 열흘 남짓. 짧게 피었다 지기 때문에 벚꽃은 더욱 가슴 절절하다.
영암 ‘꽃 피는’ 길
시인 엘리엇은 일찍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아마도 사방에서 팡팡 터지는 꽃 때문이었을 게다. 이 아름다운 꽃을 지척에 두고도 일에 치여 꼼짝 못 하고 있으니 4월은 잔인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평일은 더 잔인하다. 출근길, 점심시간 잠깐 창밖을 보며 봄꽃을 봐야 하니, 애가 타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휴일이 있다는 것은, 이 봄, 가장 감사해야 할 몇 가지 중 하나일 게다. 꽃이 만개하는 기간은 고작 열흘 남짓. 짧게 피었다 지기 때문에 벚꽃은 더욱 가슴 절절하다.
■ 환하게 열리는 벚꽃길
지금 영암은 환하다.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세상이 밝다. 벚꽃 덕이다. 영암읍에서 학산면 독천까지 가는 길은 길가의 벚나무들이 포슬포슬 벚꽃을 달고 가장 아름다운 길로 변했다. 60리 길 사방이 연분홍빛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은 일렁이며 비를 뿌린다. 기분 좋은 꽃비다.
영암의 벚꽃길은 다른 벚꽃 명소에 비하면 조금은 덜 알려진 셈이다. 영암읍에서 학산면 독천까지 꽃길은 25㎞. 벚꽃 절정일 때는 차가 ‘꽉꽉’ 막히니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방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영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월출산일 게다. 영암(靈巖)이란 이름 자체가 신령한 바위 봉우리란 뜻이니 월출산이 눈에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영암을 알리는 이정표는 멀리서부터 보이는 월출산이다. 편평한 평지에 불현듯 솟은 바위산은 눈에 띄게 마련. 아직 월출산에는 벚꽃이 들지 못 했다. 아래서부터 서서히 올라 이내 산 위에도 벚꽃이 들 테다. 그 모습이 또 다른 벚꽃 장관을 나타낸다.
영암의 벚꽃길은 읍에서 왕인박사유적지 가는 길을 일컫는다. 겨울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벚나무는 지금 봉글봉글 꽃을 달고 길을 밝힌다. 길 양옆의 꽃길은 벚꽃의 무게를 못 견디겠는지 맞닿아 터널을 이루고 있다. 어둡고 칙칙한 터널이 아닌 밝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터널 말이다.
벚나무는 왕인박사 유적지로 갈수록 울창해진다. 일제 때 심은 왕벚은 검은 몸뚱이에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상춘객들은 벚꽃 아래 사진을 찍기 바쁘다. 중년의 아줌마들은 여고생처럼 깔깔대며 촌스럽고 과감한 포즈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데이트 나온 청춘남녀도 수줍게 브이(V)자를 그려 보인다. 봄꽃 아래서 저마다 행복한 표정들.
■ 벚꽃길 끝 만나는 역사
벚꽃길을 찬찬히 걷다보면 어느새 왕인박사유적지에 이른다. 꽃길만 봐도 손색이 없지만 기왕 온 것 길 끝까지 가보자.
왕인박사유적지는 1987년 세워졌는데 지금의 모습은 새단장을 한 것이다. 왕인 박사는 백제시대 1600여년 전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된 인물로 도공과 석공 등 기술자도 데리고 가면서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연 시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나라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枚方)시에 있다.
지금 영암은 환하다.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세상이 밝다. 벚꽃 덕이다. 영암읍에서 학산면 독천까지 가는 길은 길가의 벚나무들이 포슬포슬 벚꽃을 달고 가장 아름다운 길로 변했다. 60리 길 사방이 연분홍빛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은 일렁이며 비를 뿌린다. 기분 좋은 꽃비다.
영암의 벚꽃길은 다른 벚꽃 명소에 비하면 조금은 덜 알려진 셈이다. 영암읍에서 학산면 독천까지 꽃길은 25㎞. 벚꽃 절정일 때는 차가 ‘꽉꽉’ 막히니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방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영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월출산일 게다. 영암(靈巖)이란 이름 자체가 신령한 바위 봉우리란 뜻이니 월출산이 눈에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영암을 알리는 이정표는 멀리서부터 보이는 월출산이다. 편평한 평지에 불현듯 솟은 바위산은 눈에 띄게 마련. 아직 월출산에는 벚꽃이 들지 못 했다. 아래서부터 서서히 올라 이내 산 위에도 벚꽃이 들 테다. 그 모습이 또 다른 벚꽃 장관을 나타낸다.
영암의 벚꽃길은 읍에서 왕인박사유적지 가는 길을 일컫는다. 겨울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벚나무는 지금 봉글봉글 꽃을 달고 길을 밝힌다. 길 양옆의 꽃길은 벚꽃의 무게를 못 견디겠는지 맞닿아 터널을 이루고 있다. 어둡고 칙칙한 터널이 아닌 밝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터널 말이다.
벚나무는 왕인박사 유적지로 갈수록 울창해진다. 일제 때 심은 왕벚은 검은 몸뚱이에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상춘객들은 벚꽃 아래 사진을 찍기 바쁘다. 중년의 아줌마들은 여고생처럼 깔깔대며 촌스럽고 과감한 포즈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데이트 나온 청춘남녀도 수줍게 브이(V)자를 그려 보인다. 봄꽃 아래서 저마다 행복한 표정들.
■ 벚꽃길 끝 만나는 역사
벚꽃길을 찬찬히 걷다보면 어느새 왕인박사유적지에 이른다. 꽃길만 봐도 손색이 없지만 기왕 온 것 길 끝까지 가보자.
왕인박사유적지는 1987년 세워졌는데 지금의 모습은 새단장을 한 것이다. 왕인 박사는 백제시대 1600여년 전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된 인물로 도공과 석공 등 기술자도 데리고 가면서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연 시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나라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枚方)시에 있다.
왕인박사유적지는 그저 유적지라기보다 공원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왕인박사의 행적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관뿐만 아니라 왕인 박사가 태어난 생가터, 박사가 공부하던 문산재, 문산재에서 기슭을 타고 조금 더 오르면 왕인이 책을 쌓아 두고 공부했다는 책굴이 나온다.
책굴 앞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이 있는데, 왕인 박사를 추모해 새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탄생지에서 계곡 쪽으로 더 들어가면 성천이라 불리는 조그만 샘물이 있는데 여자들이 이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처럼 뛰어난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처럼 공부할 것 말고도 유적지는 마치 공원처럼 나무와 잔디, 쉴 의자가 곳곳에 놓였다. 나무마다 우렁우렁 열린 꽃들도 눈길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유적지 맞은편 도기문화센터에 위치한 상대포는 이곳이 백제의 국제항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왕인은 이곳 상대포에서 영산강을 타고 바다로 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도기문화센터와 구림전통마을 등도 볼거리가 많다.
구림마을은 삼한시대부터 있던 유서 깊은 마을로 신라 말 도선국사, 고려 초 학자 최지몽 선생을 배출한 곳. 마을 내에는 회사정, 국암사, 담숙재 등 12개의 누정과 전통가옥, 도기문화센터가 있다.
왕인의 뱃길인 영산강을 보려면 좀더 멀리 나가야 한다. 목포 앞바다로 흘러드는 영산강 줄기를 만나려면 학산면을 지나야 한다. 지금 영산강을 둑으로 막혔다. 왕인이 갔던 뱃길을 더듬는 데는 여기서 끝이 난다.
영암. 벚꽃 만나러 왔다 더 큰 역사를 만나고 간다.
TIP> 영암처럼 벚꽃길 따라 이어진 역사를 만나고 싶다면 전라북도 완주의 송광사를 추천한다. 흔히 송광사 하면 우리 고장의 송광사만 떠올리지만 완주의 송광사도 운치 있다.
17세기에 세워진 완주의 송광사는 보물 1243호 대웅전 등 보물 3점을 비롯, 문화재가 모두 12점에 달한다. 또한 절 입구까지 약 2㎞의 꽃길에는 수령 50년 이상의 벚나무들이 늘어서있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책굴 앞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이 있는데, 왕인 박사를 추모해 새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탄생지에서 계곡 쪽으로 더 들어가면 성천이라 불리는 조그만 샘물이 있는데 여자들이 이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처럼 뛰어난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처럼 공부할 것 말고도 유적지는 마치 공원처럼 나무와 잔디, 쉴 의자가 곳곳에 놓였다. 나무마다 우렁우렁 열린 꽃들도 눈길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유적지 맞은편 도기문화센터에 위치한 상대포는 이곳이 백제의 국제항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왕인은 이곳 상대포에서 영산강을 타고 바다로 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도기문화센터와 구림전통마을 등도 볼거리가 많다.
구림마을은 삼한시대부터 있던 유서 깊은 마을로 신라 말 도선국사, 고려 초 학자 최지몽 선생을 배출한 곳. 마을 내에는 회사정, 국암사, 담숙재 등 12개의 누정과 전통가옥, 도기문화센터가 있다.
왕인의 뱃길인 영산강을 보려면 좀더 멀리 나가야 한다. 목포 앞바다로 흘러드는 영산강 줄기를 만나려면 학산면을 지나야 한다. 지금 영산강을 둑으로 막혔다. 왕인이 갔던 뱃길을 더듬는 데는 여기서 끝이 난다.
영암. 벚꽃 만나러 왔다 더 큰 역사를 만나고 간다.
TIP> 영암처럼 벚꽃길 따라 이어진 역사를 만나고 싶다면 전라북도 완주의 송광사를 추천한다. 흔히 송광사 하면 우리 고장의 송광사만 떠올리지만 완주의 송광사도 운치 있다.
17세기에 세워진 완주의 송광사는 보물 1243호 대웅전 등 보물 3점을 비롯, 문화재가 모두 12점에 달한다. 또한 절 입구까지 약 2㎞의 꽃길에는 수령 50년 이상의 벚나무들이 늘어서있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