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배꽃 구름 ‘두둥실’ 나주 금천 들녘 배꽃 지천

배꽃 구름 ‘두둥실’ 나주 금천 들녘 배꽃 지천

by 운영자 2011.04.15

봄이다.
한반도의 어디라도 색색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때,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때.

봄, 묻지도 따지지 않아도 단연코 ‘꽃의 계절’이다. 이럴 때 떠나지 않으면 언제 떠나리. 이 좋은 봄꽃을 두고 밖으로 내달음질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지경이다.

매화 지고 나니 벚꽃 피고 벚꽃 한잎두잎 떨어지니 배꽃이 피어난다. 흰꽃의 행진에 세상이 다 환하다.
배꽃은 눈처럼 희고 달빛처럼 환하다.

어느 시인은 달빛 부서지는 배꽃 아래 마시는 술맛이 세상 최고의 맛이라 했다. 지금 나주는 배꽃이 천지로 피어있다. 특히 배과수원이 밀접해 있는 나주 금천면 배박물관 주변과 봉황·세지면의 도로변은 배꽃 천지다.
배꽃 고운 길 따라
나주 들녘 배꽃 새하얀 꽃 세상


<봄이 되면 세상이 술렁거려 냄새도 넌출처럼 번져가는 것이었다 / 똥장군을 진 아버지가 건너가던 배꽃 고운 길이 자꾸 보이는 것이었다 / 땅에 묻힌 커다란 항아리에다 식구들은 봄나무의 꽃봉오리처럼 몸을 열어 똥을 쏟아낸 것인데 / 아버지는 봄볕이 붐비는 오후 무렵 예의 그 기다란 냄새의 넌출을 끌고 봄밭으로 가는 것이었다 / 그리곤 하얀 배밭 언덕 호박 자리에 그 냄새를 부어 호박넌출을 키우는 것이었다 / 봄이 되면 세상이 술렁거려 나는 아직도 봄은 배꽃 고운 들길을 가던 기다란 냄새의 넌출 같기 만한 것이었다> - 문태준 ‘배꽃 고운 길’ -
■ 배꽃 고운 길을 따라가면은
문태준 시인은 배꽃 고운 길을 따라가면 그 길을 똥장군 지고 걷던 아버지가 자꾸 보인다고 했다. 그 길에서 길 따라 기다랗게 움직이던 똥냄새를 맡는다고도 했다. 나는 배꽃 고운 길을 따라 가면 시원한 배 냄새가 난다. 단물이 뚝뚝 흐르는 배를 쥔 엄마의 손도 생각나고ㆍ 코끝에는 은근한 배꽃 향이 난다.

나주 금천ㆍ봉황ㆍ세지 도로가에는 지금 배꽃이 바람을 따라 일렁인다. 그 일렁임에 마음도 덩달아 남실남실 여울진다. 새하얀 배꽃은 눈이 부시다.

작고 앙증맞은 배꽃은 귀여우면서도 소박하고 정갈하다. 오종종한 것이 그 옛날 수줍은 새색시같기도 하고ㆍ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도 못 하고 쭈뼛대는 여중생 같기도 하다.

고운 꽃에 훌륭한 배경이 돼주는 것이 초록들판과 산ㆍ 파아란 하늘이다. 오종종 귀여운 배꽃 만나러 나주로 나서는 길ㆍ 모든 것이 도와준다.

날씨는 청명하고 초록은 막 들판에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나주 남편 오거리를 지나 봉황면에 들어선다. 쿰쿰한 가축들의 분뇨 냄새 위로 설핏 바람결에 꽃내음이 난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배밭. 그 위 눈처럼 소복하게 나뭇가지마다 내린 배꽃.

날이 따뜻해서인지 배꽃들이 저마다 활짝활짝 몸을 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어마’ 소리가 절로 난다. 멀리 눈처럼ㆍ 솜사탕처럼ㆍ 소금처럼 군락으로 보이던 배꽃이 가까이 가만 들어서자 그저 귀엽고 가여운 한 송이 작은 꽃이었다. 이 작은 꽃들이 모이고 모여 저리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구나 생각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세지면을 지나 영산포 유채꽃 만나러 가는 길.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배꽃을 만난다.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듯 어찌나 넓고 훤한지 눈이 따가울 정도.

그 배밭 안에는 쉬는 날에도 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농부들이 있다. 수분을 하고 있는 것. 수분은 배꽃에 인공으로 꽃가루를 묻혀주는 것. 한마디로 사람이 꿀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배꽃 인공 수분은 스스로 수분이 힘든 배 품종에 한해 하는 것이란다.

잠시 멈췄던 차를 다시 타고 영산포로 향한다. 영산포의 영산강변에는 유채가 샛노랗게 피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저 노란색. 그 고운 빛깔은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영산강변에는 나들이 나온 이들이 많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유채꽃 앞에서 꽃잎을 잡아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유채꽃길을 넘어질 듯 위태롭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강바람이 살랑 분다. 유채꽃 향이 강바람 타고 멀리 난다.

나주에는 배박물관이 있다. 배꽃도 보고 유채꽃도 봤으니 잠깐 짬을 내 공부를 하는 것도 좋겠다. 배박물관은 나주배의 우수성을 홍보함과 동시에 배의 역사와 변천과정 및 유래ㆍ 보관방법ㆍ 재배기술 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배 53점과 배를 이용한 음식 등 218종 413점의 각종 전시물을 갖추었다.
■ 화순 춘양면 복숭아꽃ㆍ 그렇게 고우면 대체 어쩌라고!
나주 옆 화순에는 복숭아꽃이 한창이다. 이왕 온 것 조금 늦더라도 복숭아꽃 나들이도 겸하자.
화순 춘양면은 지금 복숭아꽃이 지천이다. 하긴 벚꽃 지기 시작하면 바로 핀다고 했으니 이맘때쯤이면 피었을 테다.

순천에서 화순 춘양면까지는 오롯이 1시간30분가량이 걸린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구불구불 좁은 길을 달려야 하니 녹록치 않은 여정이다.

하지만 이 여정에 위로가 되는 것은 울긋불긋 봄꽃들. 특히 초등학교 때 즐겨보던 EBS의 밥 아저씨의 그림이 연상되는 산은 정말 예뻐서 절로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산은 산벚꽃이 피어 군데군데 하얗고ㆍ 나무마다 파릇한 싹이 돋아 싱싱하다. 여행길에 먹을 것이 빠질 수가 없다. 딸기 한 바구니도 긴 여정의 좋은 친구다. 진하게 퍼지는 딸기 향은 절로 기분이 좋게 하는 ‘아로마테라피’ 효과를 지닌다.

화순 춘양면은 골짜기 골짜기에 있다. 화순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개나리ㆍ 꽃잔디가 곱게 피었다.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 마을에 들어서자 저 멀리 분홍 복사꽃이 반긴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조지훈 시인의 ‘승무’ 한 구절이 떠오른다. 복사꽃 빛깔 뺨이라니 얼마나 고운지!

마을회관 앞에 차를 두고 곧장 복숭아밭으로 달려간다. 복숭아밭 너머 마늘밭이 진초록으로 푸르다. 돌담 너머 복숭아꽃이 곱다. 터널처럼 서로 어깨를 맞댄 복숭아나무에 방울방울 꽃이 달렸다.

연분홍 복숭아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혹 꽃이 다 떨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보고 있어도 조바심이 난다. 바람 한 점에 우수수 꽃비가 내린다. 벌써 나무 아래는 복숭아꽃의 풍장이 이뤄지고 있다. 한 잎 두 잎. 참 곱기도 하다.

저 멀리 무등산 자락에도 봄이 왔다. 산벚꽃ㆍ 진달래ㆍ 개나리가 울긋불긋.
복숭아나무 아래 등이 굽은 우리네 어머니가 있다. 여느 봄처럼 어머니는 복숭아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짚을 깔고ㆍ 지지대를 세운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