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화순 철쭉 세상

화순 철쭉 세상

by 운영자 2011.05.13


꽃분홍 봄이 품 안으로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 어떻게 알고 /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 물에 꽃봉우리 진 것을 / 어떻게 알고 /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 아가씨 창인 줄은 / 또 어떻게 알고 /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시인 김광섭은 <봄>이라는 시에서 봄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궁금해 한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어찌 봄이 오는 것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조용히 숨죽이며 웅크리고 있던 겨울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크게 호흡을 내뿜고 생기를 뽐내는 봄을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계절의 변화만큼 단호한 것이 없다. 봄이 완연해졌다. 온갖 꽃이 만연하고 봄의 끄트머리를 향해 달리고 있다. 꽃분홍 철쭉이 봄을 한껏 뽐낸다. 그 속에서 봄을 만끽하자. 철쭉 흐드러진 화순으로 떠난다.

아름다운 철쭉 ‘아른아른’
화순 너릿재ㆍ안양산 철쭉 보러


며칠째 계속 비가 내린다. 이런 때는 집안 꿉꿉하지 않게 보일러 사알짝 틀어 놓고 그동안 회사일에 집안일에 다운받아두고 미처 챙겨 보지 못했던 일드나 미드를 보는 것이 최고다.

엄마가 부쳐주신 김치전이 있다면 금상첨화. 그도 아니면 빗소리 들으며 마침맞게 따뜻한 방안에서 밀린 잠을 자는 것.

하지만 이건 정적으로 비를 즐기는 방법이다. 동적으로, 적극적으로 비를 즐기는 것은 직접 비를 맞는 것. 특히 ‘우중꽃구경’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상쾌한 매력이 있다.

대기의 먼지가 개운하게 씻겨 내려간 사위는 꽃을 더 가까이 보기에 그만이다. 뿌연 안개 너머로 흐릿하게 아련하게 보이는 꽃은 얼마나 감질나게 아름다운지.

비가 온다. 하지만 밖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 철쭉이 피었다. 봄이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다. 하루라도 더 몸으로 봄을 즐기고 싶다. 행선지는 화순. 엄마의 전화 한통 때문이었다.

“집에 언제 오냐. 화순 너릿재에도 철쭉이 다 피었고 안양산에도 멋있게 피었다드라. 엄마 더 늙어 못 걷기 전에 산에 한번이라도 더 가고 싶은디…. 늑 아빠도 너 기다리는 눈치여.”

고명딸 시집 보내놓고, 하루 2번 꼬박 드리는 전화마다 ‘보고싶다’를 연발하는 초로의 엄마는 빗속에서도 밖으로 발길을 이끈다.

간단히 채비를 하고 집에 전화를 건다.

“엄마, 산에 가자. 철쭉 구경가게. 옷 챙겨 입고 계셔. 아빠랑 같이. 비 오니까 등산복 위에 우비 입게 챙기시고잉. 지금 막 출발해.”

빗줄기가 거세다가 잠잠해지기를 거듭하다 분무기로 흩뿌리듯 비가 내린다. 꽃구경이 그리 나쁘지 않겠다.
■ 슬픔과 한이 꽃으로 피었나, 너릿재
광주를 거쳐 화순 너릿재로 간다. 너릿재는 광주에서 화순으로, 보성으로 가는 이들이라면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곳.

지금은 터널이 생겨 그 길을 대신하고 있다. 벌써 30년 전 터널이 생겨 너릿재를 잊은 이들도 많겠지만, 그곳은 여전히 남아 봄여름가을겨울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너릿재는 철쭉과 영산홍이 한창이다. 한달 전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지금부터 한달 후면 녹음이 짙어 한창일 터다.

너릿재 못미처 왼쪽으로 선교마을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마을 들머리에 차를 두고 걷는다. 너릿재는 꽃분홍 철쭉과 붉은 영산홍이 가득 찼다. 손으로 네모나게 모양을 만들어 사방을 둘러도 어느 한곳 꽃이 잡히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비 덕분에 사위는 더 맑고 밝고 비 냄새와 나무 냄새, 흙냄새가 섞여 신선하다. 눈만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코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다.

너릿재는 예전, 대낮에도 산적이 나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굽이굽이 나무들이 울창하다. 때문에 이곳은 역사의 굽이마다 참혹한 슬픔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이 고개에서 갑오농민전쟁 때 농민군이 무더기로 처형되었고, 1946년 8월 15일 광주에서 열린 조국해방2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고 화순으로 오던 화순탄광 노동자들이 미군의 총격 앞에 학살되었다. 그 일로 30여명이 죽고 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5·18광주민중항쟁 때는 공수부대의 총질에 고개 아래 주남저수지에서 목욕하던 죄 없는 아이들이 무참하게 죽어갔다.

너릿재의 이름은 그렇게 슬픔으로 비통함으로 한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실제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처형된 농민군들의 널(관)을 끌고 내려왔다 하여 ‘널(棺)재’에서 너릿재가 되었다.

지금은 그 길 옆으로 고운 꽃이 피어났다. 아마도 그 꽃 붉은빛은 비통함으로 슬픔으로 토해냈던 핏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 안개 속 아련한 철쭉꽃, 안양산안양산의 철쭉은 다녀온 사람은 또 찾는 곳. 지리산 바래봉, 보성 일림산처럼 널리 이름나지는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거기 철쭉 끝내준다’는 말이 귓속말로 전해지는 곳이다.

게다가 산 중턱에서 출발해 1시간가량의 그리 길지 않은 코스라 모두에게 고루 사랑받는 곳이다. 몇 해 전 무릎 수술로 그 산 잘 타던 친정엄마가 산은 근처에도 못 가시는데, 이곳 안양산만은 해마다 철쭉본다 등산한다 하시며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안양산 철쭉 구경의 출발은 안양산 중턱에 자리한 화순읍 수만리 3구 들국화마을부터. 이곳은 이렇게 안양산을 가기 위해 거치기만은 마냥 아까운 곳. 이 마을은 지난 2009년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인증, 산으로 둘러싸인 청정 고산지대다.

들국화마을로 들어서기 전 만나는 것이 도깨비도로. 착시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 길은 큰재에서 안양산으로 가는 길목 500여미터 구간이다.

들국화마을의 본래 이름은 수만리 4개 마을 중 하나인 만수마을. 해마다 가을이면 구절초가 산야를 뒤덮어 붙여진 별칭이다.

들국화마을은 약초로 유명하다. 2006년 예부터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밭에서 약초를 재배하거나 산에서 직접 채취하는 등 전통적인 민간농법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맥을 이어가려 시작한 약초재배가 지금은 마을을 더 알리는데 한몫을 했다.

산비탈에 터를 잡은 까닭에 농사지을 땅뙈기가 부족했던 건 당연한 일. 때문에 예부터 마을주민들은 자생하는 약초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다랑이논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왔다.

가을이면 산야를 뒤덮는 구절초와 각종 약초가 주민들에겐 생계 수단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약초를 특화한 약초마을이다.

겨울이면 숯 체험을 비롯해 동지죽 만들기, 짚공예, 썰매타기를 할 수 있다. 약초 체험도 빠질 수 없다.약초비누 만들기, 약초천연염색, 압화, 전통가마솥체험, 한방두부·인절미 만들기, 한방 술 담그기, 나무곤충 만들기 등. 디딜방아 액막이, 농악, 당산점, 줄다리기, 기우제, 불 싸움 등 예부터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체험도 다양하다.

사계절 내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뤄지는 체험은 철마다 느끼는 맛 또한 색다르다. 우리네 농촌풍경의 전형을 보여주는 들국화마을은 가족이 하루 또는 1박 코스로 옛 시골정취를 느끼고 농촌을 체험하기에 좋다.

들국화마을 길을 따라 오르면 등산로 표시가 있다. 부슬부슬 분무기 비가 내린 탓인지 아래서 내려다 본 산은 안개가 뿌옇다. 하지만 발을 딛고 들어가면 멀리 안개보다 발 아래, 눈 앞의 여린 풀잎들이, 화사한 비로소 눈에 보인다. 비를 머금은 생명들은 더 싱그럽다.

등산로는 정비가 잘 돼 있다. 나무 계단이 잘 놓여 오르기 어렵지 않지만 길은 가파르다. 비오는 날이면 미끄러우니 더욱 조심할 일이다.

얼만큼 올랐을까. 운동 부족에 더 가빠진 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니 발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뿌연 안개에 갇혔다. 내가 걸어온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구름 위를 걸었던 것일까. 방금 전의 일마저 신기하게 느껴진다.

비가 온 탓에 산행 시간이 길어진다. 1시간 반을 조금 더 넘기니 철쭉 군락이 보이는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이 툭 트인다. 하지만 안개는 여전하다.

빠르게빠르게 안개가 이동하고 있지만 걷히지는 않는다. 그 안개 속에서 꿈인듯 아련하게 철쭉이 피었다. 고개를 숙이고 한송이한송이 보니 여전히 곱다. 고개 들어 멀리서 뭉뚱그려 봐도 봄꽃, 꽃분홍 철쭉은 여전히 아름답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