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시간 속 … 보성 명봉역
멈춰진 시간 속 … 보성 명봉역
by 운영자 2011.05.27
“내 걱정은 말고, 잘 가라잉”
“잘 갔다 와. 길 모르면 꼭 물어보고. 응, 그래그래.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 무뚝뚝하던 아빠 입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자, 잔뜩 힘주고 있던, 겨우 버티고 있던 마음이 풀리고,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인생의 갈림길에 선 딸과 그 딸을 배웅하는 아버지.
보성 명봉역도 그러한 헤어짐이 빈번했던 곳.
비가 내린다.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잦았던 그곳을 찾는다. 이제는 만남도 헤어짐도 드물어진 곳. 보성 명봉역으로 떠난다.
“잘 갔다 와. 길 모르면 꼭 물어보고. 응, 그래그래.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 무뚝뚝하던 아빠 입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자, 잔뜩 힘주고 있던, 겨우 버티고 있던 마음이 풀리고,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인생의 갈림길에 선 딸과 그 딸을 배웅하는 아버지.
보성 명봉역도 그러한 헤어짐이 빈번했던 곳.
비가 내린다.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잦았던 그곳을 찾는다. 이제는 만남도 헤어짐도 드물어진 곳. 보성 명봉역으로 떠난다.
간이역 지나 초록 차밭
무인역 보성 명봉역에서 초록 세상 녹차밭까지
<아직도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겠지 / 서울 사는 상행선 기차 앞에 / 차창을 두드릴 듯 / 나의 아버지 / 저녁 노을 목에 감고 / 벚나무들 슬픔처럼 흰꽃 터뜨리겠지 //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 하겠지 /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 눈앞에 빙판길 / 미리 알고 / 봉황새 울어 주던 그 날 /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 눈 시리게 서 있겠지 / 아버지와 나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새가 우는 역> - 문정희 ‘명봉역’
기차역은 수많은 헤어짐이 이뤄졌던 곳. 부산으로 돈 벌러 가는 딸과 서울로 공부하러 간 아들, 강원도 철책선으로 군복무하러 간 남편….
기차역은 삶의 현장으로 나서는 통로다. 새벽 밥 먹고 오른 등굣길, 옥수수?감자 바구니에 담고 장으로 팔러 나가던 길, 공사장 미장일하러 연장 챙겨 나서던 곳….
기차역은 반가운 만남이 이뤄진다. 휴가 나온 아들을 만나고, 고시 공부하러 갔던 첫사랑이 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고, 도시에 나가 사는 손자손녀들이 명절을 맞아 들르는 곳….
무인역 보성 명봉역에서 초록 세상 녹차밭까지
<아직도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겠지 / 서울 사는 상행선 기차 앞에 / 차창을 두드릴 듯 / 나의 아버지 / 저녁 노을 목에 감고 / 벚나무들 슬픔처럼 흰꽃 터뜨리겠지 //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 하겠지 /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 눈앞에 빙판길 / 미리 알고 / 봉황새 울어 주던 그 날 /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 눈 시리게 서 있겠지 / 아버지와 나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새가 우는 역> - 문정희 ‘명봉역’
기차역은 수많은 헤어짐이 이뤄졌던 곳. 부산으로 돈 벌러 가는 딸과 서울로 공부하러 간 아들, 강원도 철책선으로 군복무하러 간 남편….
기차역은 삶의 현장으로 나서는 통로다. 새벽 밥 먹고 오른 등굣길, 옥수수?감자 바구니에 담고 장으로 팔러 나가던 길, 공사장 미장일하러 연장 챙겨 나서던 곳….
기차역은 반가운 만남이 이뤄진다. 휴가 나온 아들을 만나고, 고시 공부하러 갔던 첫사랑이 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고, 도시에 나가 사는 손자손녀들이 명절을 맞아 들르는 곳….
■ 그리움으로 우는 역, 명봉역
명봉역은 보성군 노동면에 위치한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1930년 12월에 문을 연 이곳은 시골 동네에 조금은 ‘쌩뚱맞게’ 들어서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도시의 크고 으리으리한 역 때문이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던 옛날에는 이처럼 작은 역들이 많았을 테다. 시골 동네 어귀에 자리한 이곳은 보성읍내 5일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이나 읍내 중고등학교에 통학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이 된 것은 2008년 6월. 지금의 이 건물은 1950년대 신축한 건물이다.
명봉역에 들어서는 길 커다란 느티나무가 역을 호위하고 있다. 역의 나이를 짐작케 하는 나무들. 명봉역 앞마당에 서니 역 맞은편으로 누가 봐도 오래된 가게들이 보인다.
예전에는 역 앞 장사가 호황이었을 가게들은 이제 인적마저 끊긴 지 오래돼 보인다. 명봉역은 빨간 벽돌로 지어졌다. 그 빨간 벽에는 마치 엽서인 듯, 가을의 풍경을 한 선로가 그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본다. 작은 역 안에는 하루 7차례를 지나는 기차의 시간표, 오래된 기다란 나무의자 하나, 마을 주민과 코레일 직원들이 채워놓은 책장과 그 옆 책상이 전부다. 하지만 버려져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우렁각시가 찾아와 청소를 하는 간 것일까. 역 안팎에는 그 흔한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차분하게 정돈됐다. 책을 빌려가도록 한 책장과 도서대여목록에는 약속을 잘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 얌전히 책을 읽고 다시 돌려주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명봉역은 보성군 노동면에 위치한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1930년 12월에 문을 연 이곳은 시골 동네에 조금은 ‘쌩뚱맞게’ 들어서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도시의 크고 으리으리한 역 때문이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던 옛날에는 이처럼 작은 역들이 많았을 테다. 시골 동네 어귀에 자리한 이곳은 보성읍내 5일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이나 읍내 중고등학교에 통학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이 된 것은 2008년 6월. 지금의 이 건물은 1950년대 신축한 건물이다.
명봉역에 들어서는 길 커다란 느티나무가 역을 호위하고 있다. 역의 나이를 짐작케 하는 나무들. 명봉역 앞마당에 서니 역 맞은편으로 누가 봐도 오래된 가게들이 보인다.
예전에는 역 앞 장사가 호황이었을 가게들은 이제 인적마저 끊긴 지 오래돼 보인다. 명봉역은 빨간 벽돌로 지어졌다. 그 빨간 벽에는 마치 엽서인 듯, 가을의 풍경을 한 선로가 그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본다. 작은 역 안에는 하루 7차례를 지나는 기차의 시간표, 오래된 기다란 나무의자 하나, 마을 주민과 코레일 직원들이 채워놓은 책장과 그 옆 책상이 전부다. 하지만 버려져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우렁각시가 찾아와 청소를 하는 간 것일까. 역 안팎에는 그 흔한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차분하게 정돈됐다. 책을 빌려가도록 한 책장과 도서대여목록에는 약속을 잘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 얌전히 책을 읽고 다시 돌려주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역 밖을 나가면 선로가 보인다. 누군가를 헤어지게 하고 또 만나게 했을 선로. 그 선로를 지나오고 지나갔던 기차 안에는 그리움의 눈물이 넘쳤을 게다.
명봉역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다. 가장 먼저 이곳을 알린 것은 손예진과 송승헌의 ‘여름향기’. 명봉역 안에는 이들의 사인이 아직도 걸려 있다.
■ 푸른 바람 속으로, 보성 차밭
명봉역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다. 가장 먼저 이곳을 알린 것은 손예진과 송승헌의 ‘여름향기’. 명봉역 안에는 이들의 사인이 아직도 걸려 있다.
■ 푸른 바람 속으로, 보성 차밭
명봉역에서 채 15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보성의 유명한 차밭들이 있다.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도 차나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보성 차밭 어느 곳이나 유명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입구의 삼나무숲이 멋스러운 대한다원은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곳.
비가 흩뿌린 탓인지 삼나무가 뿜어내는 나무 냄새가 더욱 짙다. 어찌나 울창한지 웬만한 빗방울은 삼나무를 뚫지 못 한다. 삼나무길을 지나 작은 갈림길에는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쉼터가 있다.
1000원이면 우전차 3~4잔을 기본으로 우려 마실 수 있다. 쉼터 맞은편으로 오르면 녹차밭. 올해 녹차는 냉해를 입어서인지 군데군데 얼어죽은 나무들이 보인다.
하지만 초록으로 색을 더해가는 녹차나무들이 더 많다. 구불구불 녹차나무 사이를 걷는다. 비 때문에 촉촉해진 땅은 더욱 폭신하다.
명봉역 다음으로 녹차밭을 택한 건 잘한 일이다. 그리움으로 꺼졌던 마음이 나무 냄새에 초록 바람에 한결 가벼워진다.
내려오는 길에는 녹차아이스크림을 사먹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초록 기운을 몸 안 깊숙이 들이는 기분이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기차보다 고속버스가 더 익숙한 세상을 살았다. 먼 길에는 늘 기차 대신 고속버스를 탔다. 누군가와 동행 없이 기차를 탄 건 대학 입시 면접날. 평소 없던 차 멀미 때문이었다. 새벽 4시 기차역에는 거짓말처럼 아버지와 나만 있었다. 무던히도 춥던 날이었다.
비가 흩뿌린 탓인지 삼나무가 뿜어내는 나무 냄새가 더욱 짙다. 어찌나 울창한지 웬만한 빗방울은 삼나무를 뚫지 못 한다. 삼나무길을 지나 작은 갈림길에는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쉼터가 있다.
1000원이면 우전차 3~4잔을 기본으로 우려 마실 수 있다. 쉼터 맞은편으로 오르면 녹차밭. 올해 녹차는 냉해를 입어서인지 군데군데 얼어죽은 나무들이 보인다.
하지만 초록으로 색을 더해가는 녹차나무들이 더 많다. 구불구불 녹차나무 사이를 걷는다. 비 때문에 촉촉해진 땅은 더욱 폭신하다.
명봉역 다음으로 녹차밭을 택한 건 잘한 일이다. 그리움으로 꺼졌던 마음이 나무 냄새에 초록 바람에 한결 가벼워진다.
내려오는 길에는 녹차아이스크림을 사먹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초록 기운을 몸 안 깊숙이 들이는 기분이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기차보다 고속버스가 더 익숙한 세상을 살았다. 먼 길에는 늘 기차 대신 고속버스를 탔다. 누군가와 동행 없이 기차를 탄 건 대학 입시 면접날. 평소 없던 차 멀미 때문이었다. 새벽 4시 기차역에는 거짓말처럼 아버지와 나만 있었다. 무던히도 춥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