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장흥 억불산 산림욕장

장흥 억불산 산림욕장

by 운영자 2011.07.01

비와 흙과 나무와 빗속 데이트
누구나 그렇듯 집으로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집만큼 편하고 식구만큼 좋은 어디 또 있을까.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 석양 비낀 산길을 / 땅거미 속에 긴 그림자를 묻으면서 /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 콧노래 부르는 것도 좋을 게다>

시인 신경림도 시 ‘집으로 가는 길’에서 ‘가볍게 걷고 싶’고, ‘콧노래 부르는 것도 좋’다고 했다. 비 오는 숲길을 걷는다.

비에 젖은 땅은 폭신하고 흙냄새 나무 냄새는 더 진하다. 숲을 걷는 일, 집으로 가는 길만큼이나 행복한 일이다. 나와 비와 흙과 나무와 풀과 돌과 바람과 물과 데이트 하는 길, 숲길은 집에 가는 길만큼 좋다.
“비에서 땅에서 나무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잊지 못할 빗속 숲길 걷기

먼저 고백해야겠다.
결국 장흥 억불산 삼림욕 숲을 정상까지 오르지 못 했다. 장흥읍 평화리 삼림욕장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3킬로미터.

멀지 않은 이 길을 다 오르지 못 한 것은 순전히 비 때문이고, 일기예보를 믿지 않은 ‘나’ 때문이다.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온다고 했지만 ‘그럼 밤부터나 오겠지’ 하고 가볍게 넘겨 전혀 비를 대비한 산행 장비를 챙기지 않았다.

더구나 3킬로미터 구간이라 우습게 본 탓도 있다. 등산화 한 켤레만 달랑 신고 집 앞 공원 나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으니….

장흥의 억불산은 천관산 때문인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에 숲이 아름답게 보존됐다.
억불산의 높이는 518미터. 다른 산에 비해 낮고 능선이 길고 부드러워 오르기 그리 어렵지 않다.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어여쁘게 펼쳐진 길고 긴 능선은 아름답다. 억불산 정상은 부드러운 능선과 달리 기암괴석이 들어섰다.
특히 가슴 아픈 전설을 가진 ‘며느리바위’의 크기는 웅장하다. 아기를 업은 어머니의 형상을 한 ‘며느리바위’에는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남편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 여인네의 한이 담겼다.장흥 억불산 삼림욕장은 장흥읍 평화리 평화저수지 앞에서 시작한다. 내비게이션으로 ‘평화저수지’라고만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차는 삼림욕장 입구에 둬도 되고, 입구 못 미처 마을에도 세워둬도 된다. 차를 세워두고 내려 주위를 둘러본다. 며칠 새 비가 많이 온 탓인지 평화저수지는 물이 한가득이다.

저수지 주위로 비 덕분인지 웃자란 풀도 나무데크만큼이나 키를 키웠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저수지 한바퀴를 빙 둘러 걸어도 좋을 듯싶다.

저수지 옆으로 난 길에는 곧게 하늘 높이 자란 나무들이 길 양옆을 호위하고 있다. 사진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

빗길을 뚫고 삼림욕장을 오른다. 비가 내리는 탓도 있겠지만 쑤욱쑤욱 소리를 내며 자라고 있는 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어두컴컴하다.

오르는 길은 비가 와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뒀다. 계단 위로는 폭신한 나뭇잎 카펫이 깔려 있다. 9000평에 왕죽, 맹종죽, 분죽 등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엄마, 산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옆을 지나던 한 가족의 아이가 큰 소리로 하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고보니 내 코는 이미 뻥 뚫려 있다. 에어컨 바람에 왼쪽 콧구멍이 항상 막혀 있고, 눈물도 찔끔찔끔 났었는데, 40여분 정도 걷고 보니 어느새 코는 숨쉬기 편해졌다. 나무에서 흙에서 바람에서 비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 냄새 덕인 모양이다.
대나무숲을 지나면 그보다 4배는 더 너른 편백나무숲이 펼쳐진다. 3만5000여평에 이르는 편백나무숲은 약 10만여 그루의 편백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장관을 이룬다.정상 연대봉까지 해찰하고 가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까지 이르는 길 중간에는 정남진천문과학관이 있다.

천문과학관은 전남 최초로 만들어진 곳으로 7m의 원형돔의 주관측실과 슬라이딩 돔의 보조관측실에는 반사망원경과 굴절망원경 등이 있다.

주간에는 태양의 표면을, 야간에는 태양계 친구들과 성운, 성단 등의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천체 투영실에서는 주·야 및 기상에 상관없이 가상의 별자리를 볼 수 있고 시뮬레이터로 생동감 있는 별들 사이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토요일 밤 10~12시 2시간 동안 별자리 여행을 할 수 있다.

편백나무로 만든 다양한 소품 등을 볼 수 있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도 마련된 목재문화체험관도 그냥 지나치면 아쉽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