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치유하다

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치유하다

by 운영자 2012.11.23

4개 다른 종교, 길에서 만나다.
▲ 사진설명- 아름다운 순례길의 첫 코스 금산사의 미륵전. 미륵전은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건립했다.

길은, 걷기는 언제나 좋다.
요즘처럼 콧속에 드는 바람이 찢어질 듯 건조할 때도 걷기는 참 좋다. 소요하며 생각하며 살펴보며 걷기야말로 일상의 작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두 발로 싸목싸목 걷기만 해도 절로 ‘힐링’이 되는 걷기에 멋진 길까지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 곳곳 ‘~길’이라 칭한 곳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여기 색다른 길이 있다.
서로 다른 종교 4개가 한 길에 얽혀있는 이곳은 전라북도 김제의 ‘아름다운 순례길’이다.
▲ 사진설명-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만난 금산교회. 1905년 ㄱ자 모양의 한옥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김제의 천년고찰 ‘금산사’ 주변에는 불교·증산도·개신교·천주교 등 4대 종단의 문화유산이 포진해 있다.

김제시는 4대 종단의 문화유산을 엮어 ‘아름다운 순례길’을 만들었다. 금산사에서 금산교회, 증산법종교, 수류천주교회를 잇는 22.7㎞의 걷기 코스로 불교, 증산도, 개신교, 천주교의 흔적을 모두 볼 수 있는 여정이다.

헌데 ‘아름다운 순례길’이 한산하다. 추운 날씨 탓인지, 아직 이 길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멀리 새소리, 바람소리, 내 발자국 소리만 이어진다.

길이란 길을 따라 가는 것도 있지만 사람을 따라 가는 재미도 있고 잘 가고 있다는 안심도 되는데 ‘아름다운 순례길’은 사람 따라 가는 일이 어렵다.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생각될 때, 이 길이 맞나 의심이 될 때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볼 것.
▲ 사진설명- 동곡마을. 1900년대 초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이 사람들을 치료하던 ‘동곡약방’이 있는 마을이다.

순례길은 금산사에서 시작된다.
금산사는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국보 제62호 미륵전을 비롯해 보물 10점 등의 문화재가 있다.

금산사 일주문 근처엔 ‘야영장’이 있다. 야생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겨울 야영’도 인기인지 겨울에도 텐트 5~6동이 들어서 있다.

순례길의 다음 여정은 금산교회다. 금산사에서 청룡사를 지나 금산교회로 이어지는 이 길은고즈넉하다.

1905년 미국 선교사 데이트가 설립한 교회는 당시 ㄱ자 한옥 건물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ㄱ자 모양의 한옥 금산교회는 관광객을 위해 내부가 공개됐다.

천장의 서까래부터 오래된 풍금까지 한옥 교회의 독특함이 느껴지는 이곳은 지금의 크고 웅장하고 새로 지어진 교회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교회에서 2㎞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동심원과 동곡약방이 있는 ‘동곡마을’이 있다. 동곡약방은 1900년대 초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이 사람들을 치료하던 곳이다.

처음 이곳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다가 2003년 대순진리회에서 동곡약방과 인근 부지를 매입해 종교 성지로 복원됐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알고만 있어야 할 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동곡마을 내부나 동곡약방 등은 일반인이 들어가 볼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 동곡약방에서 다시 금평저수지 물길을 따라 걷는 길이 또 일품이다.
금평저수지 가장자리로는 나무 데크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편하게 저수지의 수려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증산법정교 본부가 있다. 강증산 부부의 무덤을 봉안하면서 형성된 종교성지로 삼청전 등 1950년대 지어진 한옥 건물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으리으리하다.

증산법종교 본부와 1㎞ 정도 떨어진 곳에는 원평성당이 있다. 순례길은 원평성당을 지나 원평장터, 전봉준 전적지를 거쳐 수류천주교회에서 끝난다.

수류천주교회는 1890년대 세워져 1959년 재건된 곳으로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건물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으려는 출사객도 많아 다녀가는 곳.

‘아름다운 순례길’이라고 해서 각 종단의 유적지를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의 유적을 찾아 떠나는 길 자체가 ‘치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한다면 서운치 않겠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