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의 흔적 따라, 전라북도 장수
논개의 흔적 따라, 전라북도 장수
by 운영자 2012.12.07
왜장을 안고 진주 남강으로 ‘풍덩’ 논개는 기녀일까 아닐까?
▲ 사진설명: 논개 생각의 '단아정'
■ 논개는 기녀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 하나가 논개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전라북도 장수는 논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곳이다. 논개의 생가가 공원처럼 잘 조성돼 있어 논개에 대해 공부도 하고 하루 즐겁게 놀다올 수도 있다.
논개의 성은 주씨이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장수로 전해지는데 출생일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柳夢寅)이 저술한《어우야담(於于野談)》에 전하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전한다. 그 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주논개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훈장을 했다고 한다. 즉, 기녀가 될 만한 집안의 자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가의 자손인 주논개가 관기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 논개는 기녀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 하나가 논개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전라북도 장수는 논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곳이다. 논개의 생가가 공원처럼 잘 조성돼 있어 논개에 대해 공부도 하고 하루 즐겁게 놀다올 수도 있다.
논개의 성은 주씨이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장수로 전해지는데 출생일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柳夢寅)이 저술한《어우야담(於于野談)》에 전하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전한다. 그 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주논개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훈장을 했다고 한다. 즉, 기녀가 될 만한 집안의 자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가의 자손인 주논개가 관기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구전에 의하면 그녀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고 작은아버지는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해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결국 어린 조카 논개를 김풍헌이라는 부잣집의 민며느리(장차 며느리를 삼으려고 민머리인 채로 데려와서 기른 계집아이)로 팔아버린다. 딸이 끌려갈 운명에 처해지자 어머니는 논개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피신을 한다. 그러나 이미 논개를 며느리로 맞기 위해 돈을 지불한 김풍헌은 논개 모녀를 관아에 고발하게 된다.
당시 장수 현감이었던 최경회는 논개 모녀의 억울함을 알고 모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또 모녀를 관아에서 일하며 살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다.
이후 어엿한 숙녀로 자란 논개를 최 현감은 첩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보은과 커가면서 키워온 사랑의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최 현감은 전라 지역 의병장이 됐고,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며 공을 세우기 시작했다. 승리를 거듭하던 최 현감은 경상도 우병사가 되어 진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고 최 현감 역시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고 만다.
최 현감의 죽음에 논개는 깊이 슬퍼한다. 그리고 왜장들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진주에 있는 관기를 불러 큰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진주로 한달음에 간다.
그녀는 관기들 틈에 신분을 숨기고 잠입,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남강의 바위까지 유인해 남강으로 몸을 던진다.
그녀는 그저 기녀가 아닌, 지아비와 백성 모두의 복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義人)’이었던 것이다.
당시 장수 현감이었던 최경회는 논개 모녀의 억울함을 알고 모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또 모녀를 관아에서 일하며 살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다.
이후 어엿한 숙녀로 자란 논개를 최 현감은 첩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보은과 커가면서 키워온 사랑의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최 현감은 전라 지역 의병장이 됐고,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며 공을 세우기 시작했다. 승리를 거듭하던 최 현감은 경상도 우병사가 되어 진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고 최 현감 역시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고 만다.
최 현감의 죽음에 논개는 깊이 슬퍼한다. 그리고 왜장들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진주에 있는 관기를 불러 큰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진주로 한달음에 간다.
그녀는 관기들 틈에 신분을 숨기고 잠입,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남강의 바위까지 유인해 남강으로 몸을 던진다.
그녀는 그저 기녀가 아닌, 지아비와 백성 모두의 복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義人)’이었던 것이다.
▲ 사진설명: 논개의 생가. 찾는 이가 없어서인지 초가지붕 한구석이 무너지는 등 관리가 소홀해 안타깝다.
■ 주논개 생가지서 ‘한나절’ 놀기
장수 장계면 대곡리의 주논개 생가지는 논개에 대해 공부하기에도 좋지만 한나절 놀기에도 그만이다.
공원처럼 널찍하게 조성된 이곳은 입구에 크게 논개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뒤편으로 보이는 묘는 주논개의 부모의 묘소다.
동상을 지나 오른편으로는 ‘단아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는데, 어린 논개가 뛰어놀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 위로 더 올라가면 논개의 생가를 재현해둔 곳이 보인다. 찾는 이가 적어서인지 초가 한쪽이 쓰러질듯 내려와 있는 것이 안타깝다.
■ 주논개 생가지서 ‘한나절’ 놀기
장수 장계면 대곡리의 주논개 생가지는 논개에 대해 공부하기에도 좋지만 한나절 놀기에도 그만이다.
공원처럼 널찍하게 조성된 이곳은 입구에 크게 논개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뒤편으로 보이는 묘는 주논개의 부모의 묘소다.
동상을 지나 오른편으로는 ‘단아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는데, 어린 논개가 뛰어놀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 위로 더 올라가면 논개의 생가를 재현해둔 곳이 보인다. 찾는 이가 적어서인지 초가 한쪽이 쓰러질듯 내려와 있는 것이 안타깝다.
생가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장수도깨비전시관’. 각종 전설이 전해지는 도깨비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최영 장군과 도깨비 이야기, 달걀 도깨비와 도깨비 방망이 등 옛 이야기 속 도깨비를 만날 수 있다. 입장료는 없다.
도깨비전시관 뒤편으로 길을 따라 낮은 언덕을 넘어가면 ‘주촌민속마을’이다. 주촌민속마을은 굴피(참나무, 상수리나무, 굴피나무, 삼나무 등 두꺼운 나무껍질을 일컬으며, 이를 이용해 지은 집을 굴피집이라고 한다)와 죽데기(통나무의 표면에서 잘라낸 널조각으로, 피죽이라고도 한다)로 만든 전통 주택과 물레방아, 연자방아, 논개정려비각, 민속생활체험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곳이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 ]
도깨비전시관 뒤편으로 길을 따라 낮은 언덕을 넘어가면 ‘주촌민속마을’이다. 주촌민속마을은 굴피(참나무, 상수리나무, 굴피나무, 삼나무 등 두꺼운 나무껍질을 일컬으며, 이를 이용해 지은 집을 굴피집이라고 한다)와 죽데기(통나무의 표면에서 잘라낸 널조각으로, 피죽이라고도 한다)로 만든 전통 주택과 물레방아, 연자방아, 논개정려비각, 민속생활체험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곳이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