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물에 띄운 버들잎 한 장의 배려와 사랑

물에 띄운 버들잎 한 장의 배려와 사랑

by 운영자 2012.12.14

고려 태조 왕건과 오씨 여인의 사랑이 싹튼, 나주 완사천

그 또는 그녀를 왜 사랑하게 됐냐는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받아봤을 법한 질문이다.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보자. 지금 옆에 있는 그 또는 그녀를 왜,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

누구는 그의 듬직한 인상이 좋아서일 것이고 또 누구는 살짝 나온 그녀의 ‘똥배’가 귀여워서일 것이고 누구는 그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서 일 것이다.

여기 그녀의 살뜰한 배려에 감동한 이가 있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버들잎과 나그네’ 전설의 배경인 나주 완사천. 전설의 주인공은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과 그의 아내가 된 오씨부인이다.
완사천에는 둘의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이 세워졌다.

■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사랑이 시작된 곳
나주 완사천은 태조 왕건과 고려 2대왕인 혜종의 어머니인 장화왕후의 사랑이 싹튼 곳이다.

목이 말라 급하게 물을 찾는 나그네에게 아리따운 처녀가 우물물을 떠 그 위에 버들잎 한 장을 올려 건넨다.

물 위의 버들잎을 의아하게 여긴 나그네가 그 연유를 묻자, 여인은 “몹시 목이 마를 때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천천히 드시라는 뜻에서 버들잎을 띄운 것”이라 답한다.
▲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한국의 러브스토리가 만들어진 완사천을 들러볼 것.

그 배려에 감동한 나그네는 여인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태조 왕건과 웃날 그의 아내가 된 장화왕후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우물의 배경이 바로 나주의 완사천이다.

나주시청 앞 국도 13호선 주변에 있는 완사천은 원래는 작은 규모의 옹달샘으로, 버들잎 처녀와 나그네 이야기로 알려진 ‘전설의 현장’이다.

왕건은 고려를 개국하기 전 후삼국 정립의 시기인 903년에서 914년에 태봉국(泰封國) 궁예의 장군으로 후백제 견훤과 싸웠다. 이때 태조 왕건은 나주를 몇 차례 내려오게 되는데, 903∼914년 사이 10여년 동안에 무려 네 차례나 된다. 그 당시 만난 이가 미래의 아내가 될 오씨 여인이다.

왕건과 장화왕후의 버들잎과 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진(陣) 위쪽 산 아래에 오색 서운이 있어 왕건이 가보니 샘가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왕건이 물 한 그릇을 달라고 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 버들잎을 띄워서 공손히 바쳤다.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봐 천천히 마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처녀가 바로 나주 토착세력인 나주오씨 집안 오다련의 딸이었다. 왕건은 처녀의 총명함과 미모에 끌려 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이 여인이 곧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부인이다.>

배려 깊은 오씨여인 장화왕후와 태조 왕건 사이에 태어난 아들 무(武)가 고려의 제2대 왕 혜종(惠宗)이 되었다.

그 뒤부터 이 완사천이 있는 마을을 흥룡동(興龍洞)이라 불렀는데, 왕을 용에 비유하면서 혜종이 태어난 동네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샘을 빨래샘, 즉 ‘완사천(浣紗泉)’이라 부르게 됐다.

완사천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한편 완사천은 원래 조그마한 옹달샘으로 쪽박에 물을 떠먹는 규모였으나 나주시 청사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주변에 택지조성을 하면서 샘 주위를 화강암석재로 석벽을 쌓았다.

완사천 위에는 혜종과 장화왕후 오씨를 기리는 흥룡사라는 절이 있었고 절 안에 혜종의 소상을 모신 혜종사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 세종 11년(1429) 정월 장득수가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옥교자에 모시고 2월 6일 서울로 떠났다는 <금성일기(錦城日記)>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국립중앙 박물관으로 옮겨진 서문 석등이 바로 이 흥룡사의 석등이라는 일설이 있다.
▲ 나주 완사천. 처음에는 작은 옹달샘이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뒀다.

완사천 샘가에는 나주오씨 문중에서 세운 장화왕후 기념비가 서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러브 스토리’가 서린 완사천. 나주를 들르는 연인이라면 그 꼭 들러보자. 다만, 완사천의 유명세가 덜한 탓인지 관리가 소홀한 듯 보여 안타깝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