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선진리성, 정유재란 현장을 찾다
사천 선진리성, 정유재란 현장을 찾다
by 운영자 2013.01.18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3주를 넘기고 있다. 그저 학교에 안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슬슬 놀러가자고 보챌 때다. “추운 데 어디 가!”하며 야단 먼저 하지 말자.
대신 추운 날 멀리, 오랜 시간 다녀오는 것보다 간단한 나들이 겸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추천한다. 경상남도 사천의 선진리성은 정유재란의 현장. 순천왜성을 다녀온 후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순천왜성을 먼저 들르는 것도 좋을 듯.
거북선으로 왜선 13척을 격침시킨 ‘사천해전’의 현장
사천 선진리성·조명군총을 찾아
대신 추운 날 멀리, 오랜 시간 다녀오는 것보다 간단한 나들이 겸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추천한다. 경상남도 사천의 선진리성은 정유재란의 현장. 순천왜성을 다녀온 후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순천왜성을 먼저 들르는 것도 좋을 듯.
거북선으로 왜선 13척을 격침시킨 ‘사천해전’의 현장
사천 선진리성·조명군총을 찾아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왜선 13척을 침몰시킨 ‘사천해전’의 선진리성
가깝든 멀든 나들이의 기본은 재미다. 거기에 교훈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
경상남도 사천의 선진리성은 재미와 교훈 두 가지를 다 갖춘 곳으로, 가깝게 가족 나들이 여행지로 그만이다.
우리나라 지도에서 사천시를 살펴보면, 원만하게 둥그런 모양이 아닌 급격하게 둥글어진 모양으로 바다가 땅을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사천나들목과 인접한 사천만은 경상남도의 중심 관문이랄 수 있는 진주로 곧장 통한다.
이런 지형의 특징 때문에 사천은 왜적의 침입이 잦고, 근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슬픈 숙명을 떠안고 있다.
그 아픈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사천 용현면의 ‘선진리성’과 그 옆의 ‘조명군총’이다.
‘선진리성’은 선조 30년인 1597년 왜군이 축조한 성으로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조창(조세로 거둔 현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중앙에 수송하기 위한 창고)이 설치돼 주변에 쌓은 토성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사천 지역을 장악한 왜군이 조창 터에 돌로 성을 쌓으면서 ‘왜성’으로 알려져 있다.
가깝든 멀든 나들이의 기본은 재미다. 거기에 교훈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
경상남도 사천의 선진리성은 재미와 교훈 두 가지를 다 갖춘 곳으로, 가깝게 가족 나들이 여행지로 그만이다.
우리나라 지도에서 사천시를 살펴보면, 원만하게 둥그런 모양이 아닌 급격하게 둥글어진 모양으로 바다가 땅을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사천나들목과 인접한 사천만은 경상남도의 중심 관문이랄 수 있는 진주로 곧장 통한다.
이런 지형의 특징 때문에 사천은 왜적의 침입이 잦고, 근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슬픈 숙명을 떠안고 있다.
그 아픈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사천 용현면의 ‘선진리성’과 그 옆의 ‘조명군총’이다.
‘선진리성’은 선조 30년인 1597년 왜군이 축조한 성으로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조창(조세로 거둔 현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중앙에 수송하기 위한 창고)이 설치돼 주변에 쌓은 토성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사천 지역을 장악한 왜군이 조창 터에 돌로 성을 쌓으면서 ‘왜성’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리성은 해마다 봄이면 벚꽃으로 유명하다
성에서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선다. 멀리 푸른 바다 위로 점점이 배들이 진격하는 것만 같다. ‘와!’ 그때의 긴박한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곳의 역사적 가치는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더 잘 알려졌다.
‘사천해전’이라 불리는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은 선진 앞바다에 거북선으로 왜선 13척을 침몰시키는 승리를 거뒀다. 성 안의 ‘이충무공 사천해전승첩비’가 세워져 있어 그것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곳은 적군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의 피와 땀, 눈물과 한이 서린 곳이다.
전쟁에서 일방적인 승자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랄 것 없이 다치고 패이고 죽기 때문에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떠나 아픈 것 아니던가.
역사의 한 자락이 아로새겨진 이곳은 지금 사람들 역사를 기억하며 찾기 보다는 봄날의 벚꽃이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다.
1918년께 무술전투 당시 왜장이었던 도진의홍의 후손이 이곳 성터 일부를 사들여 공원으로 만든 후 벚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선조들의 한과 일본의 나라꽃 벚꽃이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셈이다. 벚꽃이 피기 전 겨울이라는 계절 탓인지 그 역사와 현장을 기리며 찾는 이들이 없어 안타깝다.
선진리성 바로 옆으로 큰 무덤이 보인다. 어린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의 무덤의 이름은 ‘조명군총’.
성에서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선다. 멀리 푸른 바다 위로 점점이 배들이 진격하는 것만 같다. ‘와!’ 그때의 긴박한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곳의 역사적 가치는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더 잘 알려졌다.
‘사천해전’이라 불리는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은 선진 앞바다에 거북선으로 왜선 13척을 침몰시키는 승리를 거뒀다. 성 안의 ‘이충무공 사천해전승첩비’가 세워져 있어 그것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곳은 적군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의 피와 땀, 눈물과 한이 서린 곳이다.
전쟁에서 일방적인 승자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랄 것 없이 다치고 패이고 죽기 때문에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떠나 아픈 것 아니던가.
역사의 한 자락이 아로새겨진 이곳은 지금 사람들 역사를 기억하며 찾기 보다는 봄날의 벚꽃이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다.
1918년께 무술전투 당시 왜장이었던 도진의홍의 후손이 이곳 성터 일부를 사들여 공원으로 만든 후 벚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선조들의 한과 일본의 나라꽃 벚꽃이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셈이다. 벚꽃이 피기 전 겨울이라는 계절 탓인지 그 역사와 현장을 기리며 찾는 이들이 없어 안타깝다.
선진리성 바로 옆으로 큰 무덤이 보인다. 어린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의 무덤의 이름은 ‘조명군총’.
▲선진리성 옆 조선과 명나라 군의 코와 귀가 묻힌 조명군총
‘당병무덤’ ‘댕강무데기’라고 부르는 사각형 무덤인 조명군총은 정유재란 때 선진리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을 물리치려다 희생된 조·명 연합군이 묻힌 곳.
정유재란 다음해인 무술년 10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왜군에 패한 뒤 왜군들이 전과를 과시하고 확인시키기 위해 조선과 명나라 군인들의 코와 귀를 베어갔다. 그리고 목은 베어서 한꺼번에 베어 묻었다.
이 무덤에 사연은 더 깊다. 왜군들은 자신들의 전과를 확인시키기 위해 희생자들의 코와 귀를 베어갔다가 그 뒤 후손들의 끈질긴 귀환운동으로 돌아와 지금의 귀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 ]
‘당병무덤’ ‘댕강무데기’라고 부르는 사각형 무덤인 조명군총은 정유재란 때 선진리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을 물리치려다 희생된 조·명 연합군이 묻힌 곳.
정유재란 다음해인 무술년 10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왜군에 패한 뒤 왜군들이 전과를 과시하고 확인시키기 위해 조선과 명나라 군인들의 코와 귀를 베어갔다. 그리고 목은 베어서 한꺼번에 베어 묻었다.
이 무덤에 사연은 더 깊다. 왜군들은 자신들의 전과를 확인시키기 위해 희생자들의 코와 귀를 베어갔다가 그 뒤 후손들의 끈질긴 귀환운동으로 돌아와 지금의 귀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