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어미 잃은 사슴들의 섬 고흥 소록도

어미 잃은 사슴들의 섬 고흥 소록도

by 운영자 2013.03.15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하다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노래를 부르고, 잠을 자고, ‘힘을 내자’ 소리를 질러도 시원하게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가까운 곳으로의 나들이를 권한다.
자연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좋고, 시끄러운 곳에서 정신을 쏙 빼놓고 놀다 와도 좋다. 고흥 소록도는 전자가 좋은 이들이 찾으면 좋을 곳.
조용한 환경뿐만 아니라 한센병으로 인한 상처 입은 이들의 사연을 담고 있는 이곳은 ‘그 정도는 괜찮아’ 위로를 건네는 것만 같다.
▲사진설명- 바다와 나란한 소록도 산책길

순천과 광양에서 2시간 이내로 닿을 수 있는 섬, 고흥 소록도.

아름다운 바다와 울울창창 나무들이 꾸며진 공원 같은 풍광 덕에 많은 이들이 이곳을 그저 관광지 정도로만 가볍게 여기지만, 소록도를 찾을 때는 마음가짐을 달리 할 것을 권한다.

우선 소록도는 섬 전체가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라는 점을 잊지 말 것.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으면서부터는 말소리도 낮추고, 뛰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따금 전동휠체어를 타고 운동을 나온 환자들과의 사고도 조심하자.

또 소록도와 한센병에 대한 사전 지식을 알고 갈 것. 그냥 공원 나들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다녀오기에는 이곳의 역사가 아리도록 아프다.

소록도 내의 한센병 관련한 검시실 등의 등록문화재, 실제 치료 중인 한센인을 만나도 놀라거나 피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공부가 필수다.

소록도(小鹿島)는 이름 그대로 섬 모양이 작은 사슴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섬 곳곳을 돌며 느낀 것은 ‘소록’이라는 이름이 단순히 섬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사진설명- 한세인을 감금했던 감금실

한센병이라는 병 탓에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야 했던 이들은 어미 잃은 어린 사슴(小鹿)과 참 닮아있다.

소록도 주차장에 차를 두고 조금 걸으면 해안가와 나란히 난 소나무길을 만난다.

그 길의 초입은 예전 한센병환자와 가족이 마지막으로 작별을 나누고, 한달에 한번씩 그저 눈길로만 상봉을 하던 슬픔이 있는 ‘수탄장(愁嘆場)’이 있다.

이곳 외에도 소록도에는 수많은 아픔이 가라앉아 있다.
▲사진설명-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수탄장

1936년 전국에서 강제로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중앙공원은 한센병 환자들의 목숨으로 가꿔진 곳. 그들은 3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꽃과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겨오고 해안 일주도로를 닦았다.

고통을 못 이기고 도망가다 붙잡히는 환자들은 생체실험의 도구로 죽어나갔다.

중앙공원에 있는 수많은 관상수며 바위, 흙 한줌에까지 당시의 환자들이 겪었던 아픔이 지나온 시간과 함께 남아있는 것이다.

중앙공원 입구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감금실과 검시실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전라남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환자들을 구금, 감식하고 처형을 가했던 곳.

검시실은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방은 주로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됐으며, 뒤쪽의 방은 당시 사람들이 단종수술(斷種手術)이라고 칭했던 정관수술이 강제 시술되던 곳이다.

스물다섯 한창 나이 때 단종 수술을 당한 환자 이동은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라고 썼다.

소록도의 환자들은 죽으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망원인 규명과 한센병 원인 분석이라는 미명 아래 해부됐다. 간단한 장례를 치른 뒤 화장을 함으로써 가슴에 한만 쌓아가던 환자의 생을 마감했다.
▲사진설명- 소록도 앞바다 주민들이 조개류를 잡고 있다.

소록도의 환자들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병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와 닿는 경계의 시선일 것이다. 마치 흉물을 대하듯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사람들의 태도.

중앙공원을 돌아나오는 길.

위로를 받고 힘을 내는데 바람직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한센병 환자들은 이토록 힘든 생을 살았는데’ 하며 그간 힘들었던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 정도면 괜찮아’ 바닷바람도 위로를 건넨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