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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마음에 봄을 들이다

구례, 마음에 봄을 들이다

by 운영자 2014.02.21

봄의 길목 입춘(立春)도 지나고 꽝꽝 언 대동강 물도 스르르 풀린다는 우수(雨水)도 지났다. 소리 없이 봄봄봄봄봄이 오고 있다.

아직 봄이 멀다고만 생각되던 한겨울에는 봄이 덜 기다려지더니, 봄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오자 더 안달이 난다. 봄이 어서어서 왔으면….

아직 한기가 남아있는 겨울 끝자락, 성급한 마음에 봄을 찾아 나선다. 향기롭고 따뜻한 봄을 마음에 들인다.

◈ 샤라라라 눈 앞의 봄
구례 야생화압화전시관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철마다 피는 꽃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꽃=봄’이라는 오랜 공식 때문인지 꽃을 보면 봄이 떠오른다.

구례 농업기술센터 맞은편의 ‘구례야생화압화전시관’은 봄의 기운을 조용히 담고 있다.

진짜 봄인 4월 이후면 구례 농업기술센터는 초록 나뭇잎과 색색의 꽃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만 봄인 2월, 이곳의 풍경은 적막하기만 하다.

흙이 그대로 드러나고, 마른 풀잎들만 간간이 보이는 농업기술센터는 그래서인지 찾는 이가 드물다.

구례야생화압화전시관은 세계 여러 나라의 압화 작품과 공모전에서 수상한 압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압화(壓花)는 꽃누르미, 프레스플라워(press flower)라고 하는데, 꽃과 잎, 줄기 등을 채집해 약품처리를 하고 말린 것을 다시 다양한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이곳은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야생화를 이용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한옥 지붕을 얹은 모양의 건물인 구례야생화압화전시관에 들어선다.

화살표를 따라 전시관 1층과 2층의 압화 작품을 만난다.

생화 개화 시기에 채집한 꽃들을 건조시켜 만든 압화 작품은 펜던트나 그림 액자, 그릇, 장식장, 병풍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꽃들로 어떻게 사람을 만든 거예요? 진짜 물감으로 그린 것 같다!”

광주에서 압화전시관을 찾았다는 한 초등학생이 신기한 듯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실제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을 압화로 표현한 작품은 마치 물감으로 그린 듯 색감 표현과 명암이 정밀하다.

야생화 압화 작품은 밀봉 처리돼 있어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방이 본래의 색을 지우고 조용히 봄을 준비하는 겨울, 압화 작품을 만나면 그래서 더 반갑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동감 있지는 않지만 ‘그래, 예쁜 꽃 모양과 색을 간직하고 있구나’하며 반가움이 인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하지만 찾는 이가 적어서인지 압화 작품의 보존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다. 압화가 좋아 작품을 둘러보러 온 이들이 이 추위에도 차분히 작품을 구경할 마음이 들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전시관 옆에는 압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압화체험학습장에서는 꽃을 넣은 열쇠고리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혹, 체험을 원한다면 반드시 사전 문의를 하고 갈 것. 야생화압화전시관 061-780-2074.

◈ 뜨끈뜨끈 입안의 봄
구례 목화식당 소내장탕


봄의 맛이 무엇일까. 한겨울, 봄의 맛을 느끼기에 어떤 음식이 좋을까. 땅의 기운 받아 갓 싹을 틔운 쑥, 냉이, 달래 같은 봄나물이 그만이겠지만 지금은 이르다.

쌉싸래한 봄의 맛 대신 따뜻한 봄맛을 찾았다.

구례 목화식당은 몸 안에 봄을 들이기에 충분하다. 이곳의 메뉴는 단 하나, 소내장탕.

‘어머, 소내장탕이래!’ 소리가 절로 나올 얌전한 신사숙녀들도 한 숟가락만 먹어보면 그 마음이 달라질 터다.

간판은 ‘25년 전통’이라 쓰여 있지만 실제 전통은 30여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허름한 외관처럼 내부도 군 단위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다. 자리에 앉으면 주인장의 물음은 단 하나. “몇 개요?”

메뉴가 소내장탕 단 하나니 그럴밖에.

나오는 반찬은 간단하다. 완전히 삭은 큼직한 깍두기와 갓 무쳐낸 아삭한 무생채, 배추김치, 생양파·고추, 된장, 고추장다지기, 부추무침이 전부다.

지나치게 삭은 깍두기는 입맛에 잘 맞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머지 반찬들은 무난하다. 한 젓가락씩 반찬을 집어 먹고 있으면 탕이 나온다.

뚝배기에 그득 담긴 탕 위에는 큼지막한 선지와 소창, 대창, 염통, 벌집위 등 이름은 조금 무시무시하지만 맛은 좋은 양질의 소 내장이 가득하다.

국물은 맑다. 그리고 생각보다 뜨겁지 않다. 팔팔 끓여내와 입술을 데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바로 떠먹기에 딱 좋을 정도의 온도다.

맑은 국물은 그 빛깔처럼 시원하다. 다지기나 다른 향신료의 도움 없이도 잡내가 거의 없다.

먹는 방법은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고추장다지기도 부추무침도 초피 등의 향신료도 아무 것도 넣지 않은 그대로 절반쯤 먹기를 권한다. 소내장탕 본연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

절반쯤 비운 뒤에는 부추무침을 넉넉하게 넣어 먹거나 다지기를 조금 넣어 먹으면 마치 2그릇을 먹은 듯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국내산 한우를 쓰고 잘 손질한 덕인지 ‘내장’이라는 선입견이 별로 들지 않는다.

밥 때에 찾는다면 모르는 이들과 같은 상에 밥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이름은 조금 꺼림칙했지만 잘 끓인 소내장탕. 따뜻한 봄을 느끼게 하기에 억지스럽지 않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