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혼이 빚어낸 남도의 청자’
‘민족의 혼이 빚어낸 남도의 청자’
by 운영자 2005.01.14
남도 답사의 일번지, 전남 강진군
<< 강진청자박물관 >>
강진만을 끼고 있는 강진은 전남지역에서도 넉넉함과 풍요의 상징이다. “남도 답사 일번지”로 불리는 강진은 한국 문학사의 거장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에서부터 남도의 혈맥을 그대로 간직한 월출산 그리고 무위사와 백련사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유산이 강진만의 풍요로움과 함께 숨쉬고 있는 지역이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이 곳에 있는 "강진청자자료박물관(1997년 9월)"은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 지역에서 지표 조사된 청자가마터(窯址)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량이다. 강진청자박물관에는 한 눈에 청자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도자기의 나라라 불리는 우리 민족의 토기 중에서 청자가 가지는 그 특유의 신비감은 만들어 지는 과정에 따라 여러 종류의 청자로 나뉜다. 흙이 하나의 예술 가치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여정이고 만든 사람의 혼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1. 순청자(純靑磁)
순청자는 상감기법이나 산화철:산화동(酸化銅)등과 같은 광물질 안료로 시문하지 않고 태토 위에 유약만 입혀 소성한 기법으로 무문, 음각, 양각, 투각, 상형청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2. 상감청자(象嵌靑磁)
청자의 소지로 성형된 기벽(器壁)에 표현하고자 하는 문양을 파내고 그 홈에 백토나 적토를 메꾸어 넣어 문양이 나타나게 한 후 초벌한 다음 유약을 입혀 재벌한 기법을 상감기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법은 고려인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해낸 도자의 장기법으로 문양이 선명하며 생동감이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고려시대의 문화의 절정기인 12세기 전반에 많이 제작되었으며 문양으로 운학(雲鶴), 국화(菊花), 목단(牧丹), 포유수금(蒲柳水禽)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3. 철회청자(鐵繪靑磁)
철회청자란 철분이 많이 함유된 적토를 물에 개어 태토위에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소성시킨 기법이다
이 청자는 비색을 띠는 순청자나 상감청자와 달리 황갈색이나 녹갈색을 띠는 경우가 많으며 그림의 필치가 추상적인 것이 특징이다.
4. 진사채청자(辰砂彩靑磁)
진사채청자란 산화동을 주성분으로 한 진사채를 초벌한 기면위에 채색하여 환원염소성을 시켜 진홍빛을 띠게 된 청자를 말한다. 이 기법은 고려시대의 전성기인 12세기 전반에 많이 발달하였다.
5. 연리문청자(練理文靑磁)
청자의 태토에 백토와 적토를 합쳐서 다시 반죽하면 세가지 태질이 서로 번갈아 포개져서 목리문 비슷한 무늬를 나타내게 된다. 그 위에 투명유를 씌워서 구우면 청자태는 회색으로 백토태는 백색으로 적토태는 검은색으로 발색되어 여러 무늬의 조화를 이루는 변화를 갖게 된다.
한국청자만이 가지는 아름다움, 고려비색
문양의 멋 보다는 청자색 그 자체와 그릇의 형태 아름다움에 주안점을 두었던 순청자 시대(11세기~12세기 전반)에 중국의 송나라 사람이 고려의 청자색을 '고려비색'이라 하여 당시 세계 28가지 최고품 속에 넣을 만큼 고려의 청자색은 불가사의한 색이었다. 비색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환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내화토로 제작한 갑(甲,상자) 안에 넣고 소성을 하였다. 상자 안에는 산소가 더 부족해 환원 작용이 증진되고 재와 같은 불순물이 그릇 표면에 달라붙지 않아 아름다운 발색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순청자의 옥과 같은 비색은 두껍게 입혀진 유약과 유약속에 갇힌 미세한 기포에 의한 발색으로 은은하고 깊이가 있었다. 그런데 상감청자에서는 흑백의 무늬를 살리기 위해 유약의 투명도를 높여야 했으므로 유약이 엷어지고 유약속의 기포를 제거하게 되어 비색은 퇴화되게 된다. 문양의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청자의 비색은 희생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지근 우리가 청자를 보면서 느끼는 신비감과 오묘한 색감은 여기서 연유한다. 이것이 바로 남도지역의 양질의 흙과 장인정신이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취재기자 - 김중태)
<< 강진청자박물관 >>
강진만을 끼고 있는 강진은 전남지역에서도 넉넉함과 풍요의 상징이다. “남도 답사 일번지”로 불리는 강진은 한국 문학사의 거장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에서부터 남도의 혈맥을 그대로 간직한 월출산 그리고 무위사와 백련사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유산이 강진만의 풍요로움과 함께 숨쉬고 있는 지역이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이 곳에 있는 "강진청자자료박물관(1997년 9월)"은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 지역에서 지표 조사된 청자가마터(窯址)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량이다. 강진청자박물관에는 한 눈에 청자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도자기의 나라라 불리는 우리 민족의 토기 중에서 청자가 가지는 그 특유의 신비감은 만들어 지는 과정에 따라 여러 종류의 청자로 나뉜다. 흙이 하나의 예술 가치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여정이고 만든 사람의 혼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1. 순청자(純靑磁)
순청자는 상감기법이나 산화철:산화동(酸化銅)등과 같은 광물질 안료로 시문하지 않고 태토 위에 유약만 입혀 소성한 기법으로 무문, 음각, 양각, 투각, 상형청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2. 상감청자(象嵌靑磁)
청자의 소지로 성형된 기벽(器壁)에 표현하고자 하는 문양을 파내고 그 홈에 백토나 적토를 메꾸어 넣어 문양이 나타나게 한 후 초벌한 다음 유약을 입혀 재벌한 기법을 상감기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법은 고려인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해낸 도자의 장기법으로 문양이 선명하며 생동감이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고려시대의 문화의 절정기인 12세기 전반에 많이 제작되었으며 문양으로 운학(雲鶴), 국화(菊花), 목단(牧丹), 포유수금(蒲柳水禽)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3. 철회청자(鐵繪靑磁)
철회청자란 철분이 많이 함유된 적토를 물에 개어 태토위에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소성시킨 기법이다
이 청자는 비색을 띠는 순청자나 상감청자와 달리 황갈색이나 녹갈색을 띠는 경우가 많으며 그림의 필치가 추상적인 것이 특징이다.
4. 진사채청자(辰砂彩靑磁)
진사채청자란 산화동을 주성분으로 한 진사채를 초벌한 기면위에 채색하여 환원염소성을 시켜 진홍빛을 띠게 된 청자를 말한다. 이 기법은 고려시대의 전성기인 12세기 전반에 많이 발달하였다.
5. 연리문청자(練理文靑磁)
청자의 태토에 백토와 적토를 합쳐서 다시 반죽하면 세가지 태질이 서로 번갈아 포개져서 목리문 비슷한 무늬를 나타내게 된다. 그 위에 투명유를 씌워서 구우면 청자태는 회색으로 백토태는 백색으로 적토태는 검은색으로 발색되어 여러 무늬의 조화를 이루는 변화를 갖게 된다.
한국청자만이 가지는 아름다움, 고려비색
문양의 멋 보다는 청자색 그 자체와 그릇의 형태 아름다움에 주안점을 두었던 순청자 시대(11세기~12세기 전반)에 중국의 송나라 사람이 고려의 청자색을 '고려비색'이라 하여 당시 세계 28가지 최고품 속에 넣을 만큼 고려의 청자색은 불가사의한 색이었다. 비색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환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내화토로 제작한 갑(甲,상자) 안에 넣고 소성을 하였다. 상자 안에는 산소가 더 부족해 환원 작용이 증진되고 재와 같은 불순물이 그릇 표면에 달라붙지 않아 아름다운 발색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순청자의 옥과 같은 비색은 두껍게 입혀진 유약과 유약속에 갇힌 미세한 기포에 의한 발색으로 은은하고 깊이가 있었다. 그런데 상감청자에서는 흑백의 무늬를 살리기 위해 유약의 투명도를 높여야 했으므로 유약이 엷어지고 유약속의 기포를 제거하게 되어 비색은 퇴화되게 된다. 문양의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청자의 비색은 희생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지근 우리가 청자를 보면서 느끼는 신비감과 오묘한 색감은 여기서 연유한다. 이것이 바로 남도지역의 양질의 흙과 장인정신이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취재기자 - 김중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