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들만의 천국, 고흥 ‘소록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들만의 천국, 고흥 ‘소록도’
by 운영자 2005.11.04
동쪽으로는 순천만, 서쪽에는 보성만을 끼고 있는 고흥반도. 순천에서 벌교, 고흥을 잇는 널찍한 4차선 도로가 생긴 뒤 고흥은, 소록도는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소록도는 가고 싶지만, 너무도 가보고 싶지만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가슴시린 아픔을 알기에, 한 맺힌 역사를 잘 알기에 소록도는 그리워도 그리워도 차마 만나지 못하는 곳이었다.
소록도(小鹿島)로 가는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한하운 ‘전라도(全羅道) 길
소록도는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던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더 큰 그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가족들과 세상과 격리된 채 평생을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야했을…. 그래서 소록도는 섬 전체가 온통 그리움의 빛으로 채색되어 있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은 작은 사슴을 닳았다는 그 섬에서 사슴의 무리처럼 모여 산다. 매일 바다 건너 두고 온 세상을 훔쳐보며.
고흥 녹동항에서 15분 간격으로 있는 배를 타고 5분여를 달리면 도착하는 소록도는 소풍가는 것 마냥 그저 즐겁지만은 않다. 꿈에도 그리던 이를 벼르고 벼르다 용기 내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두렵고, 설레고, 떨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소록도는 투영한 가을빛에 섬 전체가 눈부시게 반짝인다. 흰모래밭과 푸른 솔숲이 어우러진 바닷가와 속이 말갛게 비치는 푸른 바다, 타오르는 듯 불꽃 같은 황금편백나무, 히말라야삼나무, 철철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꽃나무들.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중앙공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소록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도 바로 중앙공원이다.
1936년 전국에서 강제로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에 의해 무차별적인 감금과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3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꽃과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겨오고 해안 일주도로를 닦았다. 고통을 못 이기고 도망가다 붙잡히는 환자들은 생체실험의 도구로 죽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중앙공원이다.
중앙공원에는 큼지막한 돌이 여러 군데 놓여 있다. 당시의 환자들은 이를 가리켜 ‘매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죽어도 놓고’라 했다.
바위를 매고 올 때 그 무게에 못 이겨 죽고, 엄청난 무게에 슬며시 바위를 놓았다가 일본인의 채찍에 맞아죽었다 해서, 돌을 놓다가 그 돌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돌을 일본인들이 원하는 자리에 놓아야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
이렇듯 중앙공원에 있는 수많은 관상수며 바위, 흙 한줌에까지 당시의 환자들이 겪었던 아픔이 지나온 시간과 함께 남아있는 것이다.
중앙공원 입구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감금실과 검시실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교도소와 유사한 구조로 지어진 감금실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환자들을 구금, 감식하고 처형을 가했던 곳이다.
수감된 환자들에게 이곳은 감옥이자 형집행장이었던 셈이다.
일제 말기에는 병원당국의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죽어나갔다.
검시실은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방은 주로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으며, 뒤쪽의 방은 당시 사람들이 단종수술(斷種手術)이라고 칭했던 정관수술이 강제 시술되던 곳이다.
소록도의 환자들은 죽으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망원인 규명과 한센병 원인 분석이라는 미명 아래 해부되었다. 간단한 장례를 치른 뒤 화장을 함으로써 가슴에 한만 쌓아가던 환자의 생을 마감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소록도의 환자들은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처음은 한센병의 발병이요, 두 번째는 죽은 후 시체해부요, 남은 하나는 화장이다.
소록도는 가고 싶지만, 너무도 가보고 싶지만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가슴시린 아픔을 알기에, 한 맺힌 역사를 잘 알기에 소록도는 그리워도 그리워도 차마 만나지 못하는 곳이었다.
소록도(小鹿島)로 가는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한하운 ‘전라도(全羅道) 길
소록도는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던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더 큰 그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가족들과 세상과 격리된 채 평생을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야했을…. 그래서 소록도는 섬 전체가 온통 그리움의 빛으로 채색되어 있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은 작은 사슴을 닳았다는 그 섬에서 사슴의 무리처럼 모여 산다. 매일 바다 건너 두고 온 세상을 훔쳐보며.
고흥 녹동항에서 15분 간격으로 있는 배를 타고 5분여를 달리면 도착하는 소록도는 소풍가는 것 마냥 그저 즐겁지만은 않다. 꿈에도 그리던 이를 벼르고 벼르다 용기 내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두렵고, 설레고, 떨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소록도는 투영한 가을빛에 섬 전체가 눈부시게 반짝인다. 흰모래밭과 푸른 솔숲이 어우러진 바닷가와 속이 말갛게 비치는 푸른 바다, 타오르는 듯 불꽃 같은 황금편백나무, 히말라야삼나무, 철철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꽃나무들.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중앙공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소록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도 바로 중앙공원이다.
1936년 전국에서 강제로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에 의해 무차별적인 감금과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3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꽃과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겨오고 해안 일주도로를 닦았다. 고통을 못 이기고 도망가다 붙잡히는 환자들은 생체실험의 도구로 죽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중앙공원이다.
중앙공원에는 큼지막한 돌이 여러 군데 놓여 있다. 당시의 환자들은 이를 가리켜 ‘매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죽어도 놓고’라 했다.
바위를 매고 올 때 그 무게에 못 이겨 죽고, 엄청난 무게에 슬며시 바위를 놓았다가 일본인의 채찍에 맞아죽었다 해서, 돌을 놓다가 그 돌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돌을 일본인들이 원하는 자리에 놓아야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
이렇듯 중앙공원에 있는 수많은 관상수며 바위, 흙 한줌에까지 당시의 환자들이 겪었던 아픔이 지나온 시간과 함께 남아있는 것이다.
중앙공원 입구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감금실과 검시실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교도소와 유사한 구조로 지어진 감금실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환자들을 구금, 감식하고 처형을 가했던 곳이다.
수감된 환자들에게 이곳은 감옥이자 형집행장이었던 셈이다.
일제 말기에는 병원당국의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죽어나갔다.
검시실은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방은 주로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으며, 뒤쪽의 방은 당시 사람들이 단종수술(斷種手術)이라고 칭했던 정관수술이 강제 시술되던 곳이다.
소록도의 환자들은 죽으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망원인 규명과 한센병 원인 분석이라는 미명 아래 해부되었다. 간단한 장례를 치른 뒤 화장을 함으로써 가슴에 한만 쌓아가던 환자의 생을 마감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소록도의 환자들은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처음은 한센병의 발병이요, 두 번째는 죽은 후 시체해부요, 남은 하나는 화장이다.
나무로 짜여진 단종대. 수많은 억울한 한센병 환자들이 단종대 위에서 본능을 거세당해야만 했다. 질곡 많던 시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그 행위에 희생당한 청춘들에게 지금에 와서 무슨 위로를 던질 수 있을까.
나무로 짜여진 단종대. 수많은 억울한 한센병 환자들이 단종대 위에서 본능을 거세당해야만 했다. 질곡 많던 시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그 행위에 희생당한 청춘들에게 지금에 와서 무슨 위로를 던질 수 있을까.
마치 외국의 정원에 온 듯한 이곳 중앙공원은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더 슬프다.
마치 외국의 정원에 온 듯한 이곳 중앙공원은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더 슬프다.
소록도의 아픔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소록도의 아픔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천형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 돼버린 지 오래다.
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천형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 돼버린 지 오래다.
소록도의 환자들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병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와 닿는 경계의 시선일 것이다.
소록도의 환자들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병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와 닿는 경계의 시선일 것이다.
마치 흉물을 대하듯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사람들의 태도.
마치 흉물을 대하듯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사람들의 태도.
그러나 그들도 소록도 안에서 외부와 똑같은 생활을 한다. 섬 안에 있는 일곱 개의 마을에서 채소를 기르고, 가축을 기른다. 병이 완치되면 어디든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소록도 안에서 외부와 똑같은 생활을 한다. 섬 안에 있는 일곱 개의 마을에서 채소를 기르고, 가축을 기른다. 병이 완치되면 어디든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소록도 이곳저곳을 발로 꾹꾹 걸으면서 ‘이 길은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으로 만들어진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가을과 겨울이 낀 미틈달, 11월. 갈무리를 준비하는 11월, 얼룩진 역사로 희생당한 이들의 아픔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는 더 이상 소록도가 ‘그들만의 천국’이 아니길 바라며….
소록도 이곳저곳을 발로 꾹꾹 걸으면서 ‘이 길은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으로 만들어진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가을과 겨울이 낀 미틈달, 11월. 갈무리를 준비하는 11월, 얼룩진 역사로 희생당한 이들의 아픔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는 더 이상 소록도가 ‘그들만의 천국’이 아니길 바라며….
★ 여행정보
★ 여행정보
교통 : 고흥읍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녹동항이 나온다. 녹동항에서 소록도 가는 철선을 타면 된다.
교통 : 고흥읍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녹동항이 나온다. 녹동항에서 소록도 가는 철선을 타면 된다.
철선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운행하며 15분 간격으로 있다.
철선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운행하며 15분 간격으로 있다.
그러나 방문자가 소록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후 5시 전에는 섬을 나서야 한다.
그러나 방문자가 소록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후 5시 전에는 섬을 나서야 한다.
운행시간은 5분.요금은 성인 기준으로 왕복 1,000원이다.
운행시간은 5분.요금은 성인 기준으로 왕복 1,000원이다.
숙식 : 소록도는 일반인이 머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숙식을 할 수 없다. 녹동항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사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숙식 : 소록도는 일반인이 머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숙식을 할 수 없다. 녹동항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사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여행쪽지 : 소록도 내에서는 차량으로 움직일만한 곳이 거의 없으며 병원 입구부터는 일반인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되도록 녹동항에 차를 두고 가는 것이 배 삯을 절약하는 길이다.(500m 정도만 걸으면 된다)
여행쪽지 : 소록도 내에서는 차량으로 움직일만한 곳이 거의 없으며 병원 입구부터는 일반인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되도록 녹동항에 차를 두고 가는 것이 배 삯을 절약하는 길이다.(500m 정도만 걸으면 된다)
소록도 관리사무소(061-842-0505)
소록도 관리사무소(061-842-0505)
취재 : 최명희 기자
취재 : 최명희 기자
나무로 짜여진 단종대. 수많은 억울한 한센병 환자들이 단종대 위에서 본능을 거세당해야만 했다. 질곡 많던 시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그 행위에 희생당한 청춘들에게 지금에 와서 무슨 위로를 던질 수 있을까.
마치 외국의 정원에 온 듯한 이곳 중앙공원은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더 슬프다.
마치 외국의 정원에 온 듯한 이곳 중앙공원은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더 슬프다.
소록도의 아픔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소록도의 아픔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천형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 돼버린 지 오래다.
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천형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 돼버린 지 오래다.
소록도의 환자들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병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와 닿는 경계의 시선일 것이다.
소록도의 환자들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병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와 닿는 경계의 시선일 것이다.
마치 흉물을 대하듯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사람들의 태도.
마치 흉물을 대하듯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사람들의 태도.
그러나 그들도 소록도 안에서 외부와 똑같은 생활을 한다. 섬 안에 있는 일곱 개의 마을에서 채소를 기르고, 가축을 기른다. 병이 완치되면 어디든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소록도 안에서 외부와 똑같은 생활을 한다. 섬 안에 있는 일곱 개의 마을에서 채소를 기르고, 가축을 기른다. 병이 완치되면 어디든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소록도 이곳저곳을 발로 꾹꾹 걸으면서 ‘이 길은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으로 만들어진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가을과 겨울이 낀 미틈달, 11월. 갈무리를 준비하는 11월, 얼룩진 역사로 희생당한 이들의 아픔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는 더 이상 소록도가 ‘그들만의 천국’이 아니길 바라며….
소록도 이곳저곳을 발로 꾹꾹 걸으면서 ‘이 길은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으로 만들어진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가을과 겨울이 낀 미틈달, 11월. 갈무리를 준비하는 11월, 얼룩진 역사로 희생당한 이들의 아픔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는 더 이상 소록도가 ‘그들만의 천국’이 아니길 바라며….
★ 여행정보
★ 여행정보
교통 : 고흥읍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녹동항이 나온다. 녹동항에서 소록도 가는 철선을 타면 된다.
교통 : 고흥읍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녹동항이 나온다. 녹동항에서 소록도 가는 철선을 타면 된다.
철선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운행하며 15분 간격으로 있다.
철선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운행하며 15분 간격으로 있다.
그러나 방문자가 소록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후 5시 전에는 섬을 나서야 한다.
그러나 방문자가 소록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후 5시 전에는 섬을 나서야 한다.
운행시간은 5분.요금은 성인 기준으로 왕복 1,000원이다.
운행시간은 5분.요금은 성인 기준으로 왕복 1,000원이다.
숙식 : 소록도는 일반인이 머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숙식을 할 수 없다. 녹동항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사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숙식 : 소록도는 일반인이 머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숙식을 할 수 없다. 녹동항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사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여행쪽지 : 소록도 내에서는 차량으로 움직일만한 곳이 거의 없으며 병원 입구부터는 일반인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되도록 녹동항에 차를 두고 가는 것이 배 삯을 절약하는 길이다.(500m 정도만 걸으면 된다)
여행쪽지 : 소록도 내에서는 차량으로 움직일만한 곳이 거의 없으며 병원 입구부터는 일반인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되도록 녹동항에 차를 두고 가는 것이 배 삯을 절약하는 길이다.(500m 정도만 걸으면 된다)
소록도 관리사무소(061-842-0505)
소록도 관리사무소(061-842-0505)
취재 : 최명희 기자
취재 : 최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