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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했던 시대에 태어난 ‘학생의날’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

불운했던 시대에 태어난 ‘학생의날’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

by 운영자 2006.11.03

11월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저항정신도, 주체적인 역사의식도 다른 이들과 견주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나는, 이상하게도 11월이 가까워오면 꼭 광주를 찾는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찾는다.

오늘로 77년을 맞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 당시를 살았던, 경험했던 사람들은 이미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을 기억하는 이들도, 기념하는 이들도, 심지어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은 이제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잊혀지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그때를 회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화유산 침탈 등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문제를 소금짐처럼 지고 있으므로.

“조선독립만세” “제국주의 타도 만세” 그날의 함성 들릴 듯

광주학생독립운동. 역사적인 사건의 출발은 3일 전인 1929년 10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학열차 안, 일본인 학생 후쿠다 등 일행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기옥·이광춘 등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하자, 이를 본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가 후쿠다를 불러 세워 따진다.

그러자 후쿠다 입에서 조선인을 모욕적으로 부르는 ‘센징’ 이라는 말이 나왔고 두 사람은 난투극을 벌인다. 급기야 나주역 광장에 있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의 패싸움으로 발전하고, 마침 순찰 중이던 나주 역전파출소 일경이 후쿠다의 편을 든다.
이튿날인 10월 31일 아침.
광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몰려와 박준채를 둘러싸고 시비를 걸었고, 오후 광주를 떠나 송정리로 가던 통학열차 안에서 다시 패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인 차장과 승객들이 일본인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두둔, 학생들의 반일감정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그리고 11월 3일 일요일 광주. 메이지(明治) 일왕의 생일인 명치절 축하 행사에 강제 소집된 학생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개천절이기도 했던 이날, 일제의 신사(神社)에 참배를 강요당했던 학생들의 비통한 심경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국왕(國王, 우습지만 일본의 식민이었던 우리는 일왕(日王)을 국왕(國王)이라 여겨야 했다)’의 생일 축하 행사에 힘차게 ‘국기(國旗, 여기서 국기는 당연히 일장기다)’를 흔들며 ‘애국가(愛國歌, 여기서 애국가 역시 일본국가다)’ 기미가요를 불러야 마땅한 그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인 학생이 우리나라 학생에게 시비를 걸어 단도로 얼굴을 찌르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광주 시내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광주 학생 독립운동의 시작이었다.

신간회·근우회를 비롯한 민족 단체들이 일어나 이 운동을 확산시켰고, 그 물결은 순식간에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면서 ‘조선독립만세’와 ‘조선인 본위교육을 실시하라’는 구호들로 이어진다.

이 시위는 시민들의 환호와 성원을 얻었으며 전국적인 항일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만주·중국·일본으로까지 파급돼 나갔다.

“약소민족 해방 만세” “제국주의 타도 만세” 같은 구호들이 처음으로 등장한 이 운동은 식민지 노예교육을 반대하는 동시에 민족해방이라는 정치적 요구가 명확히 드러난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억하는 가장 대표격은 광주제일고등학교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과 기념탑이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몇 년째 변함없는 이곳은 쓸쓸함을 더한다. 당시 만세운동을 할 때 썼던 태극기, 기미독립선언서,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 놓은 패널. 11월에도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이곳은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발길을 돌려 작년 11월 새롭게 문을 연 화정동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으로 향한다. 몇 번을 물어물어도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념관으로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하고 어렵사리 찾았다. 찾는 이가 드문 탓인지, 전화로 방문을 알린 탓인지 입구부터 나와 반갑게 반긴다.

규모부터 웅장한 이곳은 센서를 부착해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동영상과 설명 패널들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또 그때의 상황을 재연한 모형들도 이해를 더한다. 또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비치해 두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곳이 토요일과 법정공휴일에는 휴관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날 문을 활짝 열어 두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알고, 느끼게 해야 하지 않을까?

[최명희 기자 - yurial78@hanmail.net]

Tip)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찾는 길이 어렵다. 동광주톨게이트에서 관광안내도를 받아 살펴봐도 못 찾기 일쑤. 미리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묻고 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http://student.ketis.or.kr, 062)384-95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