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다시금 찾아들고 싶은 절, 나주 불회사

다시금 찾아들고 싶은 절, 나주 불회사

by 운영자 2007.01.19

출근길,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신다가 어제 우연찮게 읽은 시 한편이 떠올라 잠시 주춤했다. 이경우 시인의 <구두를 신다가>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다.

<신장에서 구두를 꺼내다가, 문득 / 이 구두는 / 한 많은 생을 마친 어느 소의 / 가죽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 평생이 겨우 반경 몇 킬로미터를 벗어나지 못한 채 / 고단한 노동의 현장을 살다간 영혼이 / 죽어서라도 자유롭게, 낯선 땅을 밟아 보고파 / 한 켤레 인간의 구두로 / 마무리 되었나보다 / 신장에서 구두를 꺼낼 적마다 / 나도 모르게 / 어디든 떠나고 싶어지는 것은 / 혹여, 소의 필생의 염원이 /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닐까 / 가엾은 소의 영혼을 위하여 / 구두창이 다 해지도록 / 자유로워지고 싶은 시간 / 왕방울 같은 눈을 끔벅이며 / 순한 소 한 마리가 / 코뚜레가 박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시를 읽고 나니, 냄새나는 발을 포근히 감싸주는 소가 고맙기도 하고 또 매일 똑같은 길 언저리만 걸어 늘 같은 풍경만 보여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 회사로 가는 걸음을 돌린다.

일주일에 5번 이상을 번잡하고 탁한 곳만 보여줬으니 조용하고 깨끗한 ‘소의 고향’을 보여줄 요량으로 떠난다. 겨울이 깊어가는 나주의 불회사(佛會寺)로 찾아든다.
절 입구, 고슬고슬한 흙이 밟히고 중간중간 돌부리가 걸리는 비포장과 전나무, 삼나무, 비자나무가 어우러진 윤기나는 풍경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 속 근심 걱정 부질없고 가뭇없어진다. 이 풍경만으로도 발아래 ‘소’에게 보은을 한 기분.

그렇게 10여분을 걷다 길 양옆 익살스러운 표정의 돌장승을 만난다.
길 오른편의 것이 남장승, 왼편이 여장승이다.

남장승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높이 315cm)은 썩 체통이 서는 모양새는 되지 못하는 수염을 댕기머리처럼 땋아 배까지 내려오도록 늘어뜨려 해학적이다.

눈은 툭 튀어나온 퉁방울눈이고 커다란 돌기형 코를 하고 있다. 선이 굵고 투박하면서도 진솔함이 스며있는 얼굴이다.
여장승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높이 180cm)은 민대머리에 커다란 주먹코와 왕방울눈을 하고 있으며 턱은 동그스름하고 웃음을 진 얼굴이다. 눈썹과 눈 주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어 여성적인 느낌을 풍긴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무섭다기보다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엄하게 보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인자함이 묻어나는 우리네 할아버지 같고 뒤춤에 홍시 같은 맛난 것 몰래 감추고 손자에게 건네줄 생각에 흐뭇한 할머니 같기도 하다.

덕룡산(376m) 동쪽에 자리한 불회사(나주시 다도면 마산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에 창건된 절로 처음엔 불호사(佛護寺)라 하였으나 1800년 이후 불회사(佛會寺)로 바뀌었다 한다.

절 안으로 든다. 불회사 대웅전은 한 시한에 언 손 들고 방에 들어갔을 때 엉덩이 밑으로 손 넣으라던 어머니의 모습 같다. 포근하다.

대웅전 댓돌에 정갈하게 벗어둔 털신이 놓여있다.
빼꼼 문을 여니 문틈 사이로 전해진 겨울 찬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정진하는 스님이 가만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참 평화로운 모습. 보는 이 마저도 가만 잦아들게 하는 모습이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불상들은 ‘지불’이다. 종이와 헝겊 같은 것을 물에 괸 뒤에 그것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이다. 종이로 만들었지만, 그 강도는 돌보다도 강하다.

대웅전과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 뒤로는 동백나무, 전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들이 펼쳐져 있다. 몇 층으로 나눠진 숲은 겹겹이 울창하다. 절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정신 들게 시원한 겨울 찬 공기 사이로 비치는 따사로운 햇빛 한줌에 날선 마음까지 부드러워진다.

[최명희 기자 - yurial78@naver.com]
<tip>
가는길 : 나주시 남평면소재지 - 819번 지방도로로 10km - 송현리 - 갈림길 - 좌측 818번 지방도로로 나주호 방면으로 8.4km - 다도 - 4.7km 주행 - 오른편 불회사 들어가는 길.

볼거리 : 불회사 돌장승에 버금가는 운흥사터 돌장승(다도면 암정리)도 만나보면 좋다. 남도 양반주택의 전형을 살펴볼 수 있는 홍기응, 홍기헌, 홍기창 전통가옥들이 자리한 풍산리 도래마을(도천마을)도 들를 수 있다면 들르자.
고샅 여기저기에서 만나게 되는 오래된 돌담들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