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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 들러 동백도 보고 세월도 봤네 고창 선운사

선운사에 들러 동백도 보고 세월도 봤네 고창 선운사

by 순광교차로 2007.04.27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산 넘어가는 그대여//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것은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우리나라 곳곳 어느 한군데 시인이나 작가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풍경은 단연코 없다.
가장 낮은 곳에 피는 민들레부터 저 높은 하늘 끝까지. 최남단 마라도부터 최북단 백령도까지. 고창 선운사. 선운사만큼 작가, 시인들의 글 속에서 ‘총애’를 증명했던 곳이 또 있을까.

미당 서정주 시인은 시 ‘선운사동구’에서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니다.’라 표현하며 선운사 동백을 그리워했고,

최영미 시인도 ‘선운사에서’라는 시를 통해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하며 선운사 동백의 낙화를 아쉬워했다.

그뿐인가? 가수 송창식은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하며 선운사 동백 ‘사랑’을 노래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운사 하면 동백을 먼저 떠올린다.
허나 선운사는 동백 말고도 꼭꼭 눈도장 찍어야 할 것들이 많다.
선운사 오르는 길은 말 그대로 ‘참 좋다’. 널찍한 길 왼편으로 소리 죽여 흐르는 냇물이 있고, 폭신폭신한 흙길과 울울창창 자란 나무들이 가득하다. 도란도란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
선운사는 거찰이니만큼 문화재들도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이 선운사 6층 석탑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탑이 서있는 위치 때문에 독특하다. 보통 대웅전 앞에 세워지는 탑은 대웅전의 정 중앙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유독 이 탑은 오른쪽으로 많이 치우쳐있다. 원래는 정 중앙이었는데 탑이 세워진 뒤에 대웅전이 증축되면서 그리 되었다 한다.
또 하나, 선운사의 주춧돌에는 각기 다른 시대가 존재한다.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면 같은 건물에 팔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주춧돌과 자연석이 그대로 쓰인 주춧돌이 나란히 놓여있다. 팔각은 고려시대까지의 건축양식이고 자연석은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이다. 한 건물 안에도 다른 시대가 존재한다. 참 재밌다.

꽃살문 화려한 대웅보전, 금동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된 관음전, 도솔암 마애불 등 선운사에는 동백 말고도 찬찬히 둘러볼 것이 참 많다.

선운사에 들렀다 미당문학관을 둘러 보지 않고 온다면 이처럼 서운한 일은 없을 터. 고창은 미당 서정주를 낳고 길러낸 곳이다. 선운리 폐교를 개축한 미당문학관은 미당의 시는 물론이고, 미당이 썼던 펜, 옷 등을 만날 수 있다.
미당문학관의 핵심은 무엇보다 옥상이다.
옥상에서 보는 고창 들녘도 일품이지만 옥상 테두리에 새겨진 미당의 시 구절은 색다른 묘미를 준다.

[글·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최명희 / 기자 cmh@icros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