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정읍 내장산 금선계곡

정읍 내장산 금선계곡

by 순광교차로 2007.06.29


푸른 나무 그늘, 발 아래 찰방거리는 계곡물

‘헉헉’ 한낮의 더운 숨소리가 턱까지 차오른다. 바람이 땀을 식혀줄 나무 그늘과 시원한 물가가 간절하다.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곳이 바로 계곡. 하지만 종일 나무 그늘 아래 낮잠 자고, 또 일어나 계곡에 발 담그는 밋밋한 나들이가 싫다면 내장산을 추천한다.

내장산하면 흔히 단풍을 떠올린다.
가을 단풍의 명소 내장산을 기억하는 이가 대부분이겠지만 여름의 내장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단풍을 보기 위해 막히는 차 안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다 오르거나 그도 아니면 지레 포기하게 되는 가을 내장산에 비하면 여름 내장산은 한가롭다.

하지만 이는 내장산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다. 그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해서 ‘내장(內藏’)이라 이름 붙여진 산인만큼 여름에도 볼거리는 풍성하다.
한나절씩 기다리다 단풍은 끄트머리만 살짝 입맛만 다시고 오는 가을 내장산 대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여름 내장산.
[사진설명 : 갓난아기 손바닥만한 초록의 단풍.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풍경. 가을의 붉은 단풍과는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내장산은 내장사, 백련암, 신선봉, 금선폭포 등 봉오리와 암자, 기암절벽, 계곡, 폭포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굴거리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층층나무 등 울울창창 들어선 나무들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그늘을 선사한다. 굴거리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됐다.

여름 내장산의 금선계곡은 싱싱하다. 한낮에도 청량한 물소리가 파닥거린다. 가슴을 씻어주는 숲속 맑은 공기는 장쾌하다. 하늘을 가린 계곡 한가운데 짙은 녹음이 드리운 그늘이 마냥 서늘하다. 멀리 뭉게구름 한 무리. 그 사이 얼굴을 감춘 태양이 잠시 기웃거리면 나뭇잎 사이로 초록햇살이 스며든다. 환상적이다.
[사진설명 : 내장사 가는 길. 초록 단풍나무가 터널을 만들었다. 오른편으로 초록의 잔디가 푸르름을 더한다. 저 잔디에 털썩 앉아 놀다 가도 좋겠다.]

그 안에 숨겨진 것들이 무궁무진 내장산, 숨겨진 볼거리를 찾아나서다

정읍 내장산을 찾아가는 길, 연한 초록빛 나뭇잎이 반짝인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은 저희들끼리 부대끼며 ‘솨솨’ 소리를 낸다. 사방이 온통 짙푸르다.

순천 나들목을 빠져 나와 광주 방면으로 40분쯤 달리다 보면 광주와 서울ㆍ전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때 오른쪽 서울ㆍ전주 방면으로 차를 돌려야 한다. 그 길로 쭉 30여분을 더 달리면 내장산 나들목. 다음부터는 내장산을 알리는 표지판만 따라가면 된다.

가을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을 한적한 길이 이어진다. 구불구불한 길 양옆으로는 푸릇푸릇 키를 키우고 있는 벼들이 푸르름을 더한다. 길 옆의 초록 잔디밭은 ‘여기서 쉬어갈까’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매표소를 지나면 갓난아기 손바닥만한 초록 단풍터널이 기다린다. 초록 아기 단풍을 보고 소주가 생각나는 것은 나뿐은 아닐 듯싶다. 소주 생각을 하며 키득키득 웃고 있으니 왼편에 내장산 국립공원 탐방안내소다 나온다.

이곳은 내장산의 동식물과 곤충을 볼 수 있는 곳이니 산에 오르기 전에 미리 봐두는 것이 좋다. 산을 오르며 마주칠지 모르는 녀석들과 눈인사하기 위해서라도.

탐방안내소를 나와 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을 조금만 걸으며 내장사에 다다른다. 백제 무왕(百濟 武王) 37년(636년) 영은조사가 지은 이 절은 처음 영은사라 칭하다, 최근 내장산의 산 이름을 따서 내장사(內臟寺)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
[사진설명 : 내장사 경내. 6.25 때 소실돼 새로 지은 건물들은 아픈 역사를 떠오르게 해 슬프다.]

일주문, 무량수전, 명부전, 대웅전 등 내장사는 6.25 때 다 소실돼 지금 있는 건물들은 새로 지은 것이다. 세월의 흔적을 담지 못하고 너무도 선명한 단청색이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다름 아닌 6.25의 가슴 아픈 기억이 산 중에도 다녀갔다는 사실. 내장사를 둘러 양 갈래의 길이 나눠진다.

오른쪽 길은 원적계곡을 통해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을 향하는 길이고 또 다른 길은 금선계곡을 따라 연지봉, 까치봉, 신성봉을 갈 수 있는 길이다.

어느 길을 가더라도 모두 훌륭하지만 왼편 금선계곡을 택한다. 이 길은 구두만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오히려 등산화를 신으면 계곡과 산길을 구분 없이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없어 아쉬울 것. 발을 살짝살짝 적시는 계곡물이 차다.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털썩 주저앉아 손을 씻고 세수를 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계곡을 오르는 길에는 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당황할 필요도 없다. 길 옆으로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자연 양산 역할을 한다. 땀이 슬쩍 배어나온다.

계곡 편평한 바위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쉰다. 이름 모를 산새와 나비도 자유로이 난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장난을 하며 보니 물 위를 통통 뛰는 소금쟁이가 보인다. 어린아이가 된 듯 숨죽이고 가만 앉아 살펴본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작은 송사리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다.

혹 금선계곡을 지나 더 오르고 싶다면 올라도 좋다.
용이 승천하면서 만든 굴이라 전해지는 용굴, 금선폭포에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들이 세인의 발길이 더 이상 닿지 못하도록 이곳에 기름을 발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기름바위, 신선문 , 20여 미터의 낮지만 강한 금선폭포 등 산행의 즐거움이 더한다.

욕심을 내 신선봉까지 가려면 못해도 1시간 30분은 더 올라야 한다. 허나 금선계곡 정도만 예정하고 왔다면 신선봉은 무리다. 신선봉까지는 등산 장비가 필수.

내려오는 길. 온몸에 산 냄새, 나무 냄새가 난다. ‘이 냄새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야지’하는 마음에 발길이 빨라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도 짙은 산 냄새가 가득하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icro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