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고산 윤선도의 얼이 깃든 ‘세연정’

고산 윤선도의 얼이 깃든 ‘세연정’

by 운영자 2007.08.10

여름휴가 그곳에 가면 마지막이야기
고산 윤선도가 유배 가다 말고 보길도에 눌러 앉은 까닭은?

해남출신이자, 오두가단 차발불가단(吾頭可斷 此髮不可斷)의 짱짱한 정신으로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정작 본인은 yes를 외치다 임금에게 밑 보여 결국 귀양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보길도에 유배당한 고산 윤선도.

문화재청 기록에 따르면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머문 까닭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고향인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에 이르렀으나, 인조(仁祖)는 이미 남한산성으로 옮겨 적과 대항하다가 항복한 후였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제주도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산세가 수려함에 매혹되어 머물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보길도에 머무는 당시 고산은 세연정이라는 곳을 짓고 그곳에서 13년간 글과 정서를 닦으며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등 시가를 창작, 오늘날 세연정은 국문학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연정은 고산이 지을 당시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 칭하고 현대에 와서는 1992년 사적 368호로 지정됐다.

특히 세연정은 지금에 와서 세간에 불려지길 ‘자연주의 정원의 백미’라고 한다.
이유는 그만큼 자연의 수려함이 온전히 남아 있다는 것.

보길도 청별항에서 중리, 통리, 예송리의 반대편에 위치한 이곳은 보길도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에게는 음식으로 따지자면 별미에 속한다. 해수욕을 즐기러 온 곳에서 뜻밖에 옛 선조의 자취도 맛볼 수 있으니, 이 같은 별미가 또 어딨겠는가.

교차로가 전하는 여름휴가 특집 그 마지막 이야기.
고산 윤선도의 세연정을 소개한다.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로 귀양 가다 말고 보길도에 눌러 앉은 이유모를 까닭은 바로 보길도 자연의 수려한 경관에 있었다.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니 기분까지 상쾌하다”
고산 윤선도의 얼이 깃든 ‘세연정’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연정은 완도 보길도 청별항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또 그다지 크지도 않다. 만약 엄청나게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간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자연경관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니, 별도의 인위적인 것은 있을 턱이 없을 뿐더러 5분이면 그곳의 자연경관을 다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연을 자연으로 보기 위한 것 외에 화려함과 놀이를 즐기기 위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곳은 기교의 화려함 보다는 자연그대로의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가만히 나무에 기대어 세연정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히 좋을 만큼 자연스러운 명상의 장소로도 손색없다.

입구에는 약간 불친절한 관리 직원이 입장료 천원을 받기 위해 종일 죽을 치고 있고, 옆으로는 관광객들을 위한 이름도 거창한 어부서사시 민박집이 위치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세연정을 앞으로 정원과 연못이 그야말로 자연과 어우러져 수더분하고 순진한 시골청년의 모습 같다 해도 모자람이 없다. 은은히 풍기는 자연의 멋스러움하며, 연못에는 아직 채 피지 않은 연꽃과 물풀들이 정제되지 않은 모양으로 여기저기 너풀거려져 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고산 윤선도가 당쟁의 한스러움을 잊고 자연으로 다시 돌아와 어촌의 멋스러움을 한시로 표현한 나머지 어부서사시란 시를 13년간에 걸쳐 집필한 곳이라니.
아마도 필시 이곳이 이처럼 수더분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그 경관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쟁의 한스러움을 삭히기 위한 고산의 처연함이 곳곳에 베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연정을 취재할 당시 몇몇 관광객들은 지나는 말로 기대한 만큼 그다지 깨끗하고 상쾌하지 못했다고 세연정을 보고 난 느낌을 서로에게 말하곤 했다.

기자 또한 마찬가지 생각으로 어떻게 문화사적지를 이렇게 방치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런 저편의 생각보다는 어부서사시가 집필된 세연정에 와서 고산 윤선도의 얼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간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둬야하겠다.
고산 윤선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 ·시인.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의 어부서사시는…
어부사시사는 조선 효종2년에 윤선도가 전라남도 보길도에 은거하며 지은 시조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각각 10수 씩를 노래한 시조이다. 이 시를 통해 윤선도는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어촌)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부 생활의 흥취를 표현했다.

이시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초장 과 중장 다음에 여음구가 들어있어 흥취를 돋우며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고려 때 작자 미상의 <어부사> 조선 중종때 이현보의 <어부가>의 맥을 있는 작품으로 다름 작품들과 달리 자연과 인물의 행위를 생동감 있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 조규봉 기자 ckb@icro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