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담양 한재골

담양 한재골

by 운영자 2008.08.01

물 속 공놀이 ‘더운 줄도 몰라요!’


여름 . 누구를 만나든 첫 인사가 “덥죠?”다. ‘덥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사는 요즘, 나무 그늘과 시원한 물이 간절히 그립다.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곳이 있으니 바로 ‘계곡’이다.

계곡이야 가까운 순천 향림사 부근이나 서면 청소골, 광양 진상ㆍ옥룡 등등 가자고만 마음먹으면 금방에 다다른다. 하루면 끝나는 속전속결 피서지가 계곡이라지만 피서와 다양한 볼거리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원한다면 1시간만 더 투자하라 권한다.

메타세쿼이아, 대숲 등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전남 담양에 몇몇 이름난 계곡이 있다. 담양 대전면 평장리의 한재골은 사계절 내내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산이 깊어 겨울이면 눈이 많이 와 설경이 유명하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은 물론 한잎 두잎 계곡 사이로 떨어져 흐르는 단풍잎마저도 아름답다. 여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시원한 계곡이 봄이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향그로운 새싹 내음이 온 산에 그득 찬다.
“하나도 안 더워요! 진짜 춥다니까요! 이것 보세요.”
나무 그늘 아래, 계곡물에서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팔을 보여준다. 팔에는 오돌오돌 작은 돌기가 돋았다.

추워 생기는 ‘닭살’이다. 한여름에 생기는 닭살이라니! 이것저것 재지 않고 첨벙 뛰어들어본다. 더위야, 물러가라!

누구나 다리 걷어 부치고 걷는 곳
계곡

‘바람과 태양의 내기’ 이야기를 모두 알 것이다. 태양과 바람은 지나가는 신사의 옷을 누가 먼저 벗길 수 있는지 내기한다. 바람은 날아갈 듯 더 세게 불어대고, 태양은 더 뜨거운 볕을 뿜어낸다.

하지만 반응은 둘로 갈린다. 거센 바람에는 더 꽁꽁 외투 깃을 여미고 뜨거운 볕에는 하나둘 옷을 벗기 시작한 것. 이처럼 점잖은 신사의 체면을 벗기는 것이 여름 더위다.

체면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훌훌 벗게 하는 여름. 계곡 물가에 모여 앉은 사람들도 겉치레는 훌쩍 벗어던졌다.
담양 한재골 계곡을 찾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관광의 고장답게 이정표가 아주 친절하기 때문. 고속도로요금소에서 받아든 ‘관광안내도’도 도움이 될 것.

담양 나들목을 나가면 왼쪽으로 대나무박물관ㆍ장성 방면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29번 국도를 따라 한국대나무박물관 방면으로 가다 장성ㆍ광주로 향하는 24번 국도로 갈아타고는 그대로 죽 직진이다.

그렇게 20여분만 달리면 오른쪽으로 한재골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구불구불 길을 따라 가면 그곳이 한재골이다. 한재골은 주차장이 여유롭지 않아 병풍산 오르는 차 길가에 가져온 차를 주차해 둬야 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바로 흙길이다. 그 흙길을 따라 길게 계곡이 이어져 있다. 이곳은 사람이 다니는 길목으로 찰방찰방 계곡물이 흐르는 것이 특징이다.

계곡 구석 어느 한 자리를 잡고 앉기 전부터 바지를 걷어 부쳐야 한다. 긴 바지 차림의 아저씨들도 스스럼없이 바지를 걷어 부치고 양손에 운동화를 든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자리 잡기 나름이다.
계곡이 조금 멀찍이 떨어졌지만 폭신한 잔디와 나무 그늘이 어우러진 자리를 잡아도 되고, 계곡 바로 물가에 놓인 평상에 한자리를 잡아도 된다. 한재골 계곡은 나무 밑으로 야영지가 만들어져 있어 편하다. 어느 자리든 어떤가.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니 둘 다 좋다.

시원한 풍경 아래서 건정 소도 일 잘 하고 누런 소도 일 잘하는 ‘황희 정승’이 되고 만다. 계곡을 따라 끝없이 올라가면 아이들이 편하게 수영하기 좋도록 수영장을 만들어 뒀다.

멀리서도 아이들의 ‘와글와글’ 소리가 들린다. 병풍산 정상에서 시작된 물이 계곡을 따라 1.3km를 흘러오다 이곳 대아제 저수지에 모인 것.

모양새보다는 그저 간단하게 둑을 막아 수영장을 만든 것이라 ‘이무롭고’ 야외에 나온 기분이 산다. 수영 모자를 꼭 써야 하고, 수영복을 착용해야 하고, 수영 안경이 필수라는 격식이 없으니 이곳 수영장은 더 마음 편하다. 계곡에서 수영장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터다.

끝까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온다. 계곡가 어느 한 자리를 잡고 조금 쉴 요량이다. 급하게 차 안에 있던 돗자리를 들고 가긴 했지만 다른 피서객들에 비해 턱없이 준비가 빈약하다.

함께 물장구 칠 친구 한명, 그 흔한 통닭 한 마리 없으니 말이다. 이미 명당은 부지런한 이들이 차지하고 앉아 있고, 잔디밭 위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아이들 노는 모습 한번 보고, 산 둘러보고, 새소리 한번 듣고….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 은박 호일에 싼 통닭 무더기를 내민다.

“넘 묵는 거 보라꼬만 있지 말고 묵어. 식었는디 그래도 양동통닭에서 튀겨서 맛나. 혼자 왔구만? 근디 여그 어째 혼자 왔으까?”
돌도 담도 없는 계곡은 낯선 이들의 마음도 넘나든다.

[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