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강진 백련사 동백숲

강진 백련사 동백숲

by 운영자 2009.02.27

동백꽃, 불싸지르다

입춘도 우수도 지나고 경칩이 며칠 남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연일 ‘봄기운이 완연하다’ 떠들어대고, 유행 탓인지 따뜻한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살랑살랑 시폰 자락이 나풀거린다. 게다가 한낮의 체감기온은 벌써 봄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지, 어쩐다. 아직 동백도 못 봤는데 봄이 오는 건 아니겠지’ 책상머리에 앉아서도 자꾸 조바심이 난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가 흐드러지기 전에 동백을 보러 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자꾸만 입으로 뇌까려지고 마음은 이미 콩밭 아닌 동백꽃 앞이다. 동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도 한시도 미룰 수 없다. 동백(冬柏)은 이름 그대로 겨울에 봐야 제 맛이므로.

시험 앞둔 수험생처럼 초조해 대충 운동화를 구겨 신고 집을 나선다.
강진 백련사 동백 앞으로!
그리움에 지쳐 먼저 내딛은 걸음
‘동백꽃은 아직 일러 다 피지 않았고’

정말이지 이대로 영영, 동백을 보지 못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다. 누구는 개나리가 벌써 피었더라고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누구는 산수유 한 가지를 꺾어다 꽃병에 꽂아두며 ‘벌써 봄이야’ 밝게 웃어 보인다. 허나 나는 그 말에 활짝 웃으며 “그래, 정말 봄이지?” 할 수가 없다.

‘동백도 아직 못 봤는데 벌써 봄이라니 말이 안 되지, 암.’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달리 바지런을 떤다.

순천에서 강진 백련사까지는 100km, 바삐 가도 2시간분가량 걸린다. 여수 오동도 동백도 고운데 굳이 강진 백련사 동백을 택한 까닭은 걷고 싶어서다. 한결 따뜻해진 햇살이 등을 떼민다. 좀 걷자고.

루소는 ‘나는 걸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걸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으며, 니체는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올린다’고 했다.

칸트는 매일 오후 5시 그의 고향 퀘니히스베르그의 마을길을 산책, 마을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는 헤겔과 야스퍼스, 막스베버, 괴테가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소크라테스와 당대의 철학자들도 산책을 하면서 의견을 펼쳤기에 ‘소요학파’란 이름까지 얻었다.

다산 정약용도 유배지 다산초당에서 강진 백련사까지 오솔길을 걸으며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牧民)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걷기는 단순한 다리운동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을 깨우쳐 주는 사색의 방법인 것이다.
[사진설명 : 백련사 대웅보전. 18세기 명필 이광사가 쓴 것이 그대로 전한다.]

백련사(白蓮寺)는 이름과 달리 연꽃이 아닌 동백의 사찰이다. 신라 제46대 문성왕 재위 시 무염스님(無染, 801~888)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백련사는 고려시대인 1211년 원묘국사(圖妙國師) 요세(了世)가 중창했다.

고려 말, 왜구의 창궐로 거의 폐사되다시피 했다가 1426년 천태종 행호(行秊) 스님에 의해 모습을 되찾았다고 전한다. 대웅전의 현판 글씨는 18세기에 동국진체를 완성한 명필 원교 이광사가 남겨 놓은 것이다.

허나 이맘때쯤의 백련사는 백련사가 주인공이 아니다. 백련사를 주위로 빙 둘러진 ‘동백’이 주인공이다. 정확히 몇 그루인지 세지 못해 그저 ‘수천 그루’라 전해지는 동백나무는 넉넉하고 울창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자나무, 후박나무, 왕대나무, 차나무도 많다.

강진읍 터미널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백련사행 농어촌 버스를 탄다. 버스는 구불구불 시골길을 약 20여분간 달려 목적지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백련사까지 1.5km. 적당한 기울기의 길에는 양옆으로 동백나무가 즐비하다. 붉은 동백꽃길을 걸으며 40여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나만의 길이다.

헌데 활활 타오를 거라 생각했던 동백은 아직 일러 다 피지 않았다. 몇 송이는 피었고 몇 송이는 아직 봉우리를 꾹 다물고 있고 몇 송이는 이미 떨어졌다. 동백숲은 대낮에도 어둠이 짙게 깔렸다. 마치 한여름의 녹음처럼 깊고 진하다. 그 아래 후두둑 떨어진 동백꽃 붉은 빛이 검붉다.

동백나무 위에 달려 방긋 그리운 웃음을 머금은 꽃도 눈길이 가지만 자꾸 떨어진 꽃들에 더 눈길이 간다. 일찍이 시인 김영랑은 모란의 낙화를 두고 ‘툭 툭 떨어져버린다’고 표현했다.

허나 ‘툭 툭 떨어져버리는’ 것은 비단 모란만이 아니다. 동백도 그렇다. 꽃망울 통째로 시들지도 않고 색도 변함없이 붉은빛 그대로 활짝 핀 모양 그대로 ‘툭’ 하고 떨어져버린다.

눈부시도록 예쁘게 피어난 어느 날, 체념하듯 저항하듯 ‘툭’ 떨어진다. 오죽하면 소설가 김훈이 목을 똑 꺾고 떨어지는 동백을 두고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추락해 버린다’고 썼겠는가.

날도 흐리고 바람마저 잔잔한 날. 동백꽃 ‘툭 툭’ 떨어지는 소리가 온 산에 울리는 듯하다. 깊은 백련사에는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와 그저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하다.
[사진설명 : 백련사 오르는 길. 사색의 1.5km다.

올랐으니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걷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올 봄엔 좀 걷자. 편하고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무뎌진 몸과 맘을 봄볕에 고슬고슬 말려 온갖 감각을 살리자.’

봄볕 아래 느릿하게 걸어보자. 온 몸의 숨구멍을 열어놓고, 볕 좋은 길을 밟는 것, 걷기는 봄날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동백이 색을 낮춘 한겨울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처럼.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