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산수유 노란 아우성, 구례 산동

산수유 노란 아우성, 구례 산동

by 운영자 2009.03.06

“봄이 왔다, 봄이 왔다, 봄이 왔단다”

가만 귀를 기울여보자. 숨을 죽이고 움직임도 멈추고 가만 눈을 감아보자.
“봄이 왔다, 봄이 왔단다”

흙이, 새싹이, 개울물이, 꽃들이 소리를 질러댄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내는지 귀가 먹먹해질 정도다.
하얀 눈 속에, 꽁꽁 언 경기에 깊게 가라앉아 있는 동안, 따스한 봄볕이 촉촉한 봄비가 색색의 꽃들이 지리산 능선을 가뿐히 넘었다. 보리 싹도 어느새 기지개를 켰고, 자운영도 낮게 키를 키운다.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 노란 산수유가 봇물 터지듯 ‘팡’ 꽃망울을 터뜨렸다. 환장하게 예쁜 봄꽃이 사방에서 피어댄다.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시골 장 뻥튀기 소리만큼이나 요란하다. 요란한 개화 소리에 가만 앉아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다.

“환장하게 좋은 봄이 왔다, 산수유꽃이 핀다”
봄 마중, 꽃 마중 가실래요?
구례 산동면 산수유마을

지난겨울은 참 질겼다. 추위도 추위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살기 힘들다, 죽겠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맵고, 시리고, 앙칼진 소리에 지난겨울 참 힘들었다. 그 매서운 추위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 겨울을 밀쳐낸 것이 저 보드라운 봄볕, 저 여린 봄꽃이다.

‘이젠 꽃봄이다’ 소리치며 매화, 산수유가 송이송이 열린다. 봄꽃은 산 비탈비탈 겨드랑이까지 파고들어, 지리산 능선 산수유마을에까지 왔다.

‘나 찾다가 / 텃밭에 /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 예쁜 여자랑 손잡고 / 섬진강 봄물을 따라 /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은 제대로 봄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상춘 시인’이다. 이 좋은 날 흙속에 궁둥이 파묻고 있겠다는 건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은 그 이름보다 ‘산수유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 산수유의 대병사로 굳어졌지 싶다. 이곳은 산수유꽃의 아름다움을 알린 곳. 순천광양에서 구례 산동까지는 갈 길이 멀다.
순천에서 남원 가는 17번 지방도를 타고 구례구로 들어와 다시 18번 국도를 따라 십여 분 달리다 보면 남원과 하동 가는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이때 좌회전해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방면으로 계속 직진한다. 지리산 온천 교차로가 나오면 오른쪽 길로 진입한 후 바로 우회전한다. 지리산 온천에서 4km 직진하면 산수유꽃 노란 구름 가득한 상위마을까지 닿는다.

사실 킬로미터로 따지면 채 70키로 미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위마을은 지리산 골짝골짝 오롯하게 숨어있어, 느린 속도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구불하고 높은 비탈길이 더 좋게 느껴진다. 산수유 노란 꽃이 길 양옆으로 호위하듯 피어 손을 반긴다.
산수유는 들판에 피는 꽃이 아니라 산비탈에 박혀있는 예스런 마을에서 피는 까닭에 더 곱다.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위마을의 돌담장 위로 매달려 있는 꽃송이나, 까만 지리산 돌 계곡 위로 노란 꽃그늘을 드리우는 모습이 보색으로 대비를 이뤄 더 화려해 보인다.

상위마을 입구 산수유나무 아래 차를 두고 걷는다. 마을은 19일부터 열리는 축제 준비로 한창이다. 마을 입구에 산수유 산책길을 따라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산수유 꽃망울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운동 삼아 산책을 나선 마을 어르신들도 만날 수 있다.

“나, 처녀 적에는 산수유꽃 필 때만 되믄 무담시 가심이 벌렁벌렁했당께.”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 시절을 부끄럽게 추억하는 할머니는 지금도 봄이 ‘환장하게’ 좋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가만 보니 할머니의 붉은 눈시울은 산수유 열매를 닮았다.

상위마을 구석구석 기와집 담장 너머로, 소박한 장독대 뒤로, 졸졸졸 골짜기 사이사이 구름인 듯 뭉게뭉게 산수유꽃이 피었다. 무리지어 핀 것이 꼭 구름 같다.
산수유꽃은 소박하지만 수백 송이씩 무리 지어 피는 봄꽃이다.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쌀알의 크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작고 작은 꽃잎이 모아지고 한데 뭉쳐져 눈에 담기는 풍경은 놀라우리만큼 큰 덩어리다.

마치 노란 물감을 두루뭉수리하게 풀어놓은 것처럼, 샛노란 꽃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는 것처럼. 혼자서는 쑥스러워 얼굴을 붉히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교복 치마 속에 빨간 체육복을 입고도 시내를 활보할 만큼 용감한 여고생처럼 산수유꽃이 무리를 이뤄 하늘거릴 때면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위마을뿐 아니라 구례의 지리산 자락 산동면은 국내 최대의 산수유 산지. 온통 산수유꽃 천지다. 무려 30만평이나 되는 산수유 군락지에서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가 나온다.

산동이란 지명도 중국 산둥성의 처녀가 이곳에 처음 시집 와 산수유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산수유 마을엔 애틋한 ‘산수유 처녀’의 사연도 내려온다. 여순사건 당시 백부전이란 열아홉 살의 처녀는 ‘산동애가’를 남기고 잡혀갔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 맺어놓고 / 회오리 찬 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 다리머리 들어오는 꽃처럼 떨어져서 /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스러졌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