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화순 백아산 ‘소나무 숲’

화순 백아산 ‘소나무 숲’

by 운영자 2009.05.29

길쭉길쭉한 것들의 상쾌함


<어찌하여 / 아름다운 것들은 둥글까 // 논에서 자라는 곡식들 / 밭에서 자라는 보리 밀 / 콩 녹두 수수 알갱이여 (중략) 어찌하여 / 뚝뚝 떨어지는 피는 둥글고 / 얼굴을 적시는 눈물도 / 하염없이 흘러내리면서 둥근 것일까 // 바라보라 / 밤엔 달이 둥글고 낮엔 해가 둥글다! / (중략) / 온 산천에 피는 꽃은 둥글다 // 사람들의 둥근 이마와 둥근 뒷모습 / 오, 검은 눈동자의 찬란한 반짝임! // (후략)>

김준태 시인은 시 ‘아름다운 것들은 왜 둥글까’에서 둥글둥글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다. 곡식들, 해와 달, 온갖 꽃들, 눈물과 피, 사람들의 둥근 이마와 눈동자, 뒷모습까지!

세상의 둥근 것들이 아름답다면 세상의 길쭉한 것들은 상쾌하다. 길게 뻗은 해안도로, 늘씬한 꽃줄기들,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까지! 길쭉한 것들은 하나같이 상쾌하다.

속이 시끄럽고 세상이 시끄러울 때는 둥글둥글한 것들 사이보다 길쭉길쭉한 것들 안에 있을 때 훨씬 생각이 명료해진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 끝없이 펼쳐진 오솔길을 걷는다. 길쭉한 나무가 뿜어내는 기분 좋은 냄새와 시원한 바람, 아무리 걸어도 막다르지 않을 것 같은 흙길.

시끄러운 머릿속 생각은 나란히 줄을 맞추고 마음도 평온을 되찾는다. 옳고 그름이 분명해지고 먼저와 나중의 구분이 명확해진다.
[사진설명 : 숲속에서는 복잡한 생각들도 명징해진다. 모두 나무들 덕이다]

화순 백아산 “소나무야, 소나무야”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전남 최고!

저마다 속 시끄러운 사정 하나씩은 갖고 있을 테다.
벌이가 시원찮아 속이 ‘시끌’ 아이가 말썽 부려 또 속이 ‘시끌’ 부모님이 아파 속이 ‘시끌’ 취업이 안돼 속이 ‘시끌’ 결혼을 못해 속이 ‘시끌’ 꿈을 못 이뤄 속이 ‘시끌’

이유는 다 달라도 가슴 속 뜨거운 불덩이 때문에 종종 한숨이 절로 나오고 더러 밤잠까지 설치기도 할 테다.

헌데 요즘은 모두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 일이 뻥뻥 터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도 그렇고, 자꾸만 벌어지는 북한과의 관계도 그렇다.

안팎으로 자꾸 ‘심란’한 일들만 벌어진다. 내 일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세상까지 어지러우니 온갖 생각들이 자꾸 섞인다. 이럴 때는 단순한 곳에서 단순한 일을 하는 것이 ‘정리’에 도움이 된다.

초록과 황토 빛깔 일색인 숲에서, 죽 길 따라 걷는 일은 어떨까.
나무가 뿜어내는 맑은 향과 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만 존재하는 숲에서는 잡다한 것들은 다 잊고, 오직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면에서 화순 백아산이 안성맞춤이다. 이달 초 전남도보건환경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라남도 6개 산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의 숲 속 공기에 대한 피톤치드 분포도 분석 작업을 벌인 결과 화순 백아산의 연평균 농도가 714.8pptv로 가장 높았다.

하루 시간대 중에는 오후 2-4시께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배출돼 오후 삼림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조사 결과.

피톤치드는 수목이 해충과 각종 균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공기 중에 발산하는 천연 항균물질.
몇 해 전 화순 적벽을 둘러보며 화순을 두고 ‘전라도 안의 강원도’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사진설명 : 휴양림 옆으로는 계곡이 흐른다.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요즘에는 저 계곡물이 참 고맙다.]

그만큼 화순은 산이 깊다. 순하디 순한 그 이름 뒤에 어찌 이리도 울창한 산을 숨기고 있었는지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뻔했다.

전라남도의 한가운데 위치한 화순은 산이 많다. 광주와 나란히 나누고 있는 무등산(1187m)을 비롯해 만연산(668m), 백아산(810m), 모후산(919m), 옹성산(572.8m), 천운산(601.6m), 개천산(497.2m), 화학산(613.8m), 용암산(545m) 등 어림잡아도 9개다. 산이 즐비하니 맑은 공기는 두말 할 것도 없고 그 안에 자리한 자연휴양림도 ‘삼림욕’에 그만이다.

순천ㆍ광양에서 백아산자연휴양림까지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초록을 더해가는 산가 들을 보며 여유로운 운전이 가능하니 더욱 좋다.
[사진설명 : 건강한 통나무로 만든 숲속의집. 휴양림 내 숙박은 반드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

‘백아산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니 튼튼한 통나무로 지은 집들이 보일 듯 말 듯 흩어져 있다. 집끼리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아 더 마음에 든다. 여느 휴양림과 마찬가지로 냉난방시설, 취사시설, TV, 냉장고, 침구류, 화장실, 샤워시설, 야외탁자가 준비돼 있다. 간단한 먹을거리와 세면도구만 챙겨 가면 되니 손이 가볍다.

휴양림에서 출발해 팔각정, 마당바위를 지나 백아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약 3시간가량이 걸린다. ‘흰거위들이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듯하다’해서 이름 지어진 백아산은 하얀 바위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졌다.

6ㆍ25 당시에는 광주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사단급 규모의 빨치산 전남지역 총사령부 주둔해, 1년 이상이나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굳이 산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휴양림을 빙 두르고 있는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걸어도 좋다. 가슴 깊이 들어오는 나무 냄새 흙 냄새 바람 냄새가 시끄러운 속을 가만 잠재운다.

백아산자연휴양림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400원이다. 차숙박을 원하는 여행객들은 인터넷(www.baegasan.com)을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다. 숲속의 집 숙박료는 평형에 따라 다르다. 주중 4만9000원~7만원, 주말과 성수기(7ㆍ8월) 7만~10만원가량.

화순은 온천도 빼놓을 수 없다. 따뜻한 물에 몸 담그고 피로를 풀고 싶다면 화순온천이나 도곡온천도 그리 멀지 않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