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연꽃, 대낮 훤히 밝히는 ‘등불’

연꽃, 대낮 훤히 밝히는 ‘등불’

by 운영자 2009.07.03

해수욕장 가는 길 건진 월척, 함평 월야면 달맞이공원

한 광고에서는 ‘여름엔 아이스커피’라지만 사실 여름엔 역시 바다다. 가슴이 뻥 뚫리도록 툭 트인 바다는 더위에 몸과 마음이 갑갑한 여름에 제격이다.

뜨거운 해가 여과 없이 내리쬔다 해도, 바글바글한 사람 때문에 저 멀리 수평선을 볼 수 없어도 여름엔 ‘무조건’ 바다다. 해수욕장이다. ‘무조건’ ‘무조건’이다.

‘그래, 바다다!’를 외치며 바다에 뛰어들 날짜 잡기를 7월 6일.
허나 6일은 장맛비가 시원스레 내리던 날이었다. 다음으로 미룰까 하다, 비오는 날의 바다는 또 다른 운치가 있을 것 같아 빗속을 뚫고 떠난다.

하지만 비가 내려도 너무 내린다. 낯선 길 위에서 맞는 세찬 소나기는 반가울 리 만무하다.
‘어디서 잠깐 쉴까’ 하는데, 참 우연히도 ‘달맞이공원’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경로 변경.

귀띔하면, 이번 여행에서는 이 ‘경로 변경’으로 월척을 건졌다.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 진흙탕에 온 가슴을 / 적시면서 / 대낮에도 밝아 있는 / 저 등불 하나> - 이외수 ‘연꽃’ -
흐린 하늘을 ‘번쩍’ 밝힐, 달처럼 밤을 훤하게 비출 ‘연꽃’ 방죽이 이곳에 있었다.
[사진설명 : 함평 달맞이공원의 수련. 호수 위로 통통 빗방울이 떨어진다]

물장구 지겨워지면 갯벌 체험
갯벌 체험 끝나면 해넘이 구경 …함평 돌머리해수욕장

‘행운은 노력하는 자에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퍼붓는다고 곧장 바다로 향하는 길을 포기했다면 아마 달맞이공원을 만나는 행운은 오지 않았을 테다.

달맞이공원 입구를 찾아 조심스레 길을 더듬는다. 입구 부근, 빗속을 뚫고 색색의 파라솔 아래 앉아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이 여럿 보인다.

고기가 잡히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잡히지 않아도 좋겠다. 넓은 호수 위에 둥둥 뜬 연잎과 활짝 핀 연꽃, 통통 튀는 빗방울은 고기 못지않은 선물이고 행운일 게다.

차를 두고 우산을 꺼내 내린다. 막상 들어선 달맞이공원은 차로 슥 지나치며 보는 것보다 훨씬 드넓고 잘 꾸며졌다.
[사진설명 : 나무 울타리를 따라 빙 돌면 연꽃 핀 호수 투어가 가능하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호수를 그득 채운 초록 연잎. ‘비야, 비야 오너라. 좍좍 오너라. 호박잎을 따다 우산을 받고~’ 동요 ‘호박잎 우산’의 가사를 ‘연잎 우산’으로 바꿔야 할 만큼 넙적한 연잎이 호수를 덮고 있다.

움푹한 연잎 안에는 맑은 빗물이 ‘도르르’ 미끄럼 탄다. 초록 연잎 사이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새하얀 수련이 눈에 들어온다. 연꽃을 두고 ‘대낮에도 밝아 있는 저 등불 하나’라고 표현한 시인 이외수의 표현이 어찌나 적확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대접보다 더 큰 수련은 어찌나 하얀지 멀리서 보면 달이 풍덩 호수에 빠진 줄 알겠다.

나무 울타리를 따라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빙 돈다. 어느새 잦아든 비가 우산을 때리며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연과 함께 호수에 사는 올챙이도 이따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통통’ 소리를 낸다. 호수를 가로질러 난 나무다리에서는 연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혹 함평 달맞이공원을 찾을 계획이면 꼭 도시락을 준비하자. 초록 호수를 배경으로 원두막에 앉아 먹는 도시락의 맛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달맞이공원에서 돌머리해수욕장까지는 약 25km. 세상의 먼지를 비가 다 씻어간 덕에, 날은 흐려도 시야는 밝다. 세상의 색들이 더 선명하다.
[사진설명 : 돌머리해수욕장 가는 길 마을 담장에 핀 능소화에 벌이 앉았다.]

돌머리해수욕장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함평읍에서 석두마을을 거쳐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는 길과 그 마을을 지나쳐 주포 방면으로 가는 들어가는 길. 주포 방면으로 가면 바다와 가까운 해안도로를 탈 수 있다.

돌머리해수욕장은 석두(石頭)마을에 위치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한쪽에 기암괴석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사진설명 : 비가 와 못 놀았던 것까지 놀 요량인지 흐리고 쌀쌀할 텐데도 아이들은 바다에서 공놀이를 즐긴다.]

비가 와서인지 해수욕장은 한적하다. 하지만 이른 피서를 온 이들이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춥지도 않은지 아이들 몇은 바다 속에서 공놀이를 하며 깔깔대고, 또 몇몇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열중이다. 비가 와서 제대로 못 놀았으니 이때라도 재미나게 놀아야겠다는 각오에서인지 표정이 유난히 밝다.
[사진설명 : 검은 구름을 뚫고 해가 든다.]

이곳은 갯벌체험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해수욕장 중 갯벌이 가장 넓어, 갯벌 생태학습장이 따로 있다. 다음 달 중순까지 갯벌여행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되는데 갯벌 생물도 관찰하고, 갯벌 생태계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비가 와서인지 바닷물이 맑지 않다. 흙탕물이 섞인 바다는 뿌옇다. 저 멀리 수평선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바다 특유의 짠내도 진하지 않다. 바람도 바다도 파도도 잔잔하다.
[사진설명 : 어느 새 검은 구름 사이로 조금씩 해가 비친다. 서둘러 바다로 내려가 사진을 찍는 이들.]

그 고요 속에 언뜻 해가 든다. 검은 구름 사이로 은빛 해가 들어온다. 해가 들기 시작하면 저 멀리 수평선도 선명하게 보인 테고, 바닷물도 파래지고, 갯벌체험장에는 아이들 소리로 온 바다가 쩌렁쩌렁해질 테다. 바싹 마른 해변에는 바다 짜내가 진동할 테고 파도 소리도 더 우렁차겠지.

허나 그 광경은 다음에 보기로 한다. 서둘러 길을 나선다. 쨍하게 바다로 들이치는 해를 보면 그 다음에는 붉은 저녁 해넘이가 보고 싶어질 것 같아서.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